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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범 쫓는 형사 이정현…올해 딸 낳고 영화 보니 “미쳐버릴 것 같아”


중앙일보

아동 유괴 범죄 영화 '리미트'는 이정현(사진), 진서연, 문정희 등 중견 여성 배우들의 호흡이 돋보이는 스릴러다. [사진 TCO(주)더콘텐츠온,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아이가 죽어서 돌아온다면? (유괴범을) 죽여야죠, 엄만데.”


아동 유괴 사건을 그린 영화 ‘리미트’(31일 개봉)는 주인공 소은(이정현)의 이 대사를 엔진 삼아 달려나가는 스릴러다. 유괴 아동의 엄마(진서연)도, 그 범인(문정희)도, 그를 쫓는 경찰도 모두 여성.


특히 주인공 소은은 한국영화에 없던 경찰이다. 소은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초등학생 아들, 친정엄마와 악착같이 살아왔다. 수사 지원을 나간 곳이 하필 연쇄 유괴 사건 피해자의 집. 피해아동 엄마 연주의 대역을 하다가 범인에게서 자신의 아들도 납치했다는 협박 전화를 받는다. 그 증거로 보내온 아들의 절단된 신체 일부에 눈이 뒤집힌 소은은 범인이 시키는 대로 경찰을 따돌린 다음 단독 수사에 뛰어든다. 화려한 액션, 치밀한 두뇌 작전은 없지만 맞고 쓰러져도 좀비처럼 일어나는 집요한 추격전이 흡인력 있게 펼쳐진다.


‘명량’(2014)의 말 못하는 정씨 여인,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의 짠한 주부 수남, ‘반도’(2010)에서 좀비에 맞서 딸을 지킨 엄마 민정 등 이정현의 전작들은 무엇 하나 쉬운 캐릭터가 없었다.


“첫 영화가 ‘꽃잎’(1996)이어선지 강인하고 깡 있고 고생스러운 캐릭터가 많이 와요. ‘군함도’(2017)도 그랬죠. 힘들지만, 촬영하면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하다 보니 익숙해진 것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26일 인터뷰에서다.

다단계 투잡하는 아줌마 경찰 그렸죠

기미투성이에 부스스한 외모의 소은은 아들을 영어학원에 보내기 위해 석류즙 다단계 판매까지 하는 생활밀착형 캐릭터다. 일본 추리 작가 노자와 히사시의 소설을 토대로 한 시나리오의 설정을, 이정현이 이승준 감독(‘스파이’)에게 제안해 바꿨다. “원래 쿨하고 무술 잘하는 경찰이었는데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아줌마로 바꿨어요. 세상 물정 모르고 운 좋게 공무원 시험 붙어서 경찰했는데 같이 경찰이던 남편이 사고로 죽고 많은 빚을 물려받아 혼자 아들 키우며 다단계 ‘투잡’하는 거로요.”


머리도 막 볶은 ‘막 파마’에 손수 기미까지 그려 넣었단다. 더 악착같이 보이기 위해 의상은 왜소해 보이는 잠바를 고집했다. 최대한 예쁘지 않게 보이는 게 목표였다고. 진서연‧문정희와 “서로 더 못생기게 나오려고 경쟁까지 붙었다”고 소개했다.


어느덧 중견 배우인 세 명이 한 작품의 주연을 나란히 맡은 것도 처음이다. “열 작품을 같이 한 사이처럼 잘 맞았다”고 했다. “문정희 언니는 영화 ‘숨바꼭질’을 잘 봤고, 진서연 배우는 ‘독전’에서 너무 멋졌거든요. 따로 리딩도 안 하고 현장에서 슛 들어가도 잘 맞아서 신기했죠. 진짜 아이를 잃어버린다면 어떤 감정일지 이야기도 많이 나눴어요.”

올해 득녀 후 영화 보니 "미쳐버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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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유괴 범죄 영화 '리미트'는 이정현, 진서연, 문정희(사진) 등 중견 여성 배우들의 호흡이 돋보이는 스릴러다. [사진 TCO(주)더콘텐츠온, 제이앤씨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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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유괴 범죄 영화 '리미트'는 이정현, 진서연(사진), 문정희 등 중견 여성 배우들의 호흡이 돋보이는 스릴러다. [사진 TCO(주)더콘텐츠온, 제이앤씨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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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첫 딸을 얻은 이정현에겐 남다를 수밖에 없는 영화다. 최근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한해 아동 실종 건수는 2만 건이 넘는다. 1년 이상 실종사례도 870여 건에 달한다. 워낙 조카가 많아 촬영 당시 ‘엄마’라고 상상하며 연기했다는 이정현은 막상 엄마가 된 후 완성된 영화를 보고 “미쳐버릴 것 같이 속이 상했다. 요즘은 아이와 관련된 소재만 보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아기가 생긴 뒤 매일 아침 큰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아기 보다 항상 10분씩 지각한다”고 했다.


이정현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독특한 아내 정안을 연기했다. 차기작을 연상호 감독의 일본 만화 원작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로 정했다. "일을 안 하면 너무 힘든” 성격이라고 했다. 엄마가 된 뒤 일 욕심은 더 커졌단다. 출산 직후부터 연 감독과 ‘기생수’ 캐릭터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정도다. “열정을 보이다 보니 산후 회복이 더 빨랐던 것 같다”며 씩 웃었다.

"남자 배우보다 여자 배우 열악…꾸준히 하고파"

이정현은 “남편이 팬이어서 맨날 작품 하라고 등 떠민다. ‘반도’의 내 대사를 다 외우더라. 아직도 신기하게 쳐다보며 ‘이정현이 옆에 있네’ 한다”고 했다. 그는 “결혼 전엔 뭔가 어수선했는데 평생을 같이할 동반자가 있고, 아이가 생기니까 달라졌다. 일에 더 집중하고 이해심도 많아졌다”며 “작품을 꾸준히 하고 싶다”고 했다. “남자 배우보다 여자 배우가 열악해요. 남자 배우들은 나이 들어도 꾸준히 할 수 있지만, 여자 배우 중엔 많지 않죠. 꾸준히 좋은 작품 하는 게 꿈입니다. 아기가 건강하면 제일 행복할 것 같아요.”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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