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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 봄동, 분홍 노루귀, 초록 파래… 알록달록 물든 진도

남녘 섬 봄맞이 여행


찬바람 이겨내고 달게 여문 봄동

숲속 길섶 야생화 지천으로 피어

알 찬 꽃게 올라오는 활기찬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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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좀처럼 가실 기미가 안 보인다. 하늘이 막혀 있으니 봄나들이 기분도 안 난다. 그래도 남쪽으로 튀었다. 남도의 봄은 낱개의 풍경이 아니어서다. 푸릇한 땅의 기운이고, 갯가의 펄떡거림이고, 봄나물 캐는 아낙의 한줄기 땀이고, 들꽃의 고운 얼굴이다. 시방 남도는 풍경 전체가 봄기운으로 넘실거린다. 미세먼지로 흐려도 봄이 만져진다.

전남 진도는 마침 수확이 한창이었다. 봄동이며 물김이며 꽃게며, 온갖 봄것으로 그득했다. 숲길엔 야생화도 지천으로 있었다. 어느 식당에 가든 봄 먹거리가 한 상 가득 들려 나왔다. 들녘을 누비고, 갯가를 기웃거리며 봄을 담아왔다. 진도의 봄은 이미 익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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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꼬박 6시간을 달려 진도로 들어가는 길. 진도대교를 건너니 금세 마음이 놓였다. 대파를 산더미처럼 실은 용달차, 푸릇푸릇하게 빛나는 보리밭…. 눈길 닿는 곳마다 정겨웠다. 오일장에선 할머니들이 좌판을 깔고 냉이·달래 같은 봄나물을 팔았다. 금방 뜯어왔는지 축축한 흙이 묻어 있었다. 점퍼를 벗고 걷기로 했다. 완연한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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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땅에서 나는 봄 채소는 죄 야무지고 굳세다. 혹독한 추위와 해풍을 맞고도 기어코 열매를 맺는 악바리다. 이맘때 진도 들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봄도 그렇다. 농부가 지난 9월 씨를 뿌려 놓으면 남도의 찬 기운이 봄동을 키운다. 얼었다 녹기를 거듭하다 달짝지근하게 여문다. 1∼2월 봄동은 아삭아삭해서 쌈용으로, 3월 봄동은 부드러워 겉절이나 나물용으로 제격이다. 어떤 요리를 하든 간은 최소한으로 한단다. 그래야 봄동 특유의 아삭한 맛이 죽지 않는다. 시장에서 만난 할매가 맛있는 봄동을 찾는 비결을 귀띔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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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봄동은 납작하고, 쫙 벌어진 놈일수록 더 맛있제.”

고군면 연동리로 드니, 막바지 봄동 수확이 한창이었다. 금방 뜯은 봄동은 연둣빛과 노란빛 이파리가 어우러져 꽃처럼 고왔다. 겨울 추위가 덜했던 모양인지 올해는 봄동 인기가 예전만 못하단다. 그래서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 한창땐 1.5㎏에 2만원이 넘었는데, 요즘은 1만원 아래로 떨어질 때도 잦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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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도는 진도 남쪽 끄트머리에 매달린 섬 속의 섬이다. 접도는 키가 작다. 높은 곳이라고 해봐야 해발 164m의 남망산이 전부다. 이 야산이 품은 ‘접도웰빙길’은 그러나 초라하지 않다. 일출이나 일몰 풍경에 목매지 않는다면, 요맘때 남망산은 해가 중천일 때 오르는 게 좋다.

“햇볕 쏟아질 때 가야지요. 봄 야생화는 해를 봐야 더 곱게 잎이 벌어져요.”


11㎞ 길이의 접도웰빙길을 일군 장재호(69) 해설사와 함께 오전 11시부터 숲길을 걸었다. 수품항~여미재~쥐바위~동백숲을 왕복하는 약 3㎞ 길이의 코스는 대부분 순한 흙길이었다. 20여 분 오르니 어느새 해발 159m의 쥐바위가 나왔다. 360도 거칠 것 없는 다도해 풍경. 가까운 황범도부터 모도, 금호도까지 진도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괜히 남쪽(南)을 바라보는(望) 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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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앞만 보고 걷는 사람은 야생화를 볼 수 없어요”

장 해설사가 땅을 가리켰다. 병풍바위 아래 양지바른 길섶에 용케도 춘란과 현호색이 자라고 있었다. 밤새 꽃부리를 오므렸다 날이 밝으면 여는 산자고(까치무릇), 긴 솜털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노루귀도 보였다. 앙증맞고도 경이로웠다. 이 손톱만 한 것들이, 잔바람에도 휘청거리는 것들이 어찌 찬바람을 이겨내고 꽃을 피웠을까. 허리를 구부리다 못해 털썩 주저앉아 한참 동안 들꽃을 들여다봤다. 꽃 내음이었을까. 막혔던 숨통이 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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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망산 아래 수품항은 아침부터 북적였다. 새벽 바다에서 물김을 따온 배로 부두가 가득 찼다. 자고로 김은 찬 바다에서 큰다. 김 농사가 고된 이유다. 어부들이 손수 엮은 김발을 진도 앞바다에 내리면, 김의 홀씨가 발에 붙어 겨우내 살을 찌운다. 5월까지 물김이 나오는데, 수확량은 3월이 가장 많다.

“곱게 찍어주소. 오늘 갑부될라니께.”


물김을 얼굴까지 뒤집어쓴 어부가 외친다. 오늘 수확이 좋은 모양이다. 물김은 이파리가 길고 풍성할수록 좋은 값을 받는단다. 김 한 포대(120㎏)는 10만원 안팎. 어선 한 척에 족히 1000만~3000만원어치의 물김이 실린다. 작업은 고되지만, 어민들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수확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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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부터 진도 밥상에는 파래가 자주 오른다. 무쳐 먹고, 끓어 먹고, 전으로 부쳐 먹는다. 연안 바위에 붙어사는 파래는 김만큼 제철이 길지 못하다. 3월이 지나면 뻣뻣해져 먹기에 좋지 않다. 수품항 옆 황모마을에 마침 초록빛 바다가 열렸다. 물이 빠진 틈에 파래가 훤히 드러난 것이다. 갯내 진동하는 초록 바다, 이맘때 진도의 바다색이다.

“탐나면 한 바구니 뜯어가요.”


물가에서 봄나물을 다듬던 아주머니가 말했다. 김·굴에 비해 돈이 안 되는 파래는 아무나 들어가서 뜯어도 문제 삼지 않는단다. 동네 어르신 한 분이 소쿠리를 끌고 갯벌로 나갔다. 아침볕이 파래밭으로 쏟아졌다. 포근한 바람이 불었다. 모든 게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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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도 진도 봄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이다. 전국 꽃게 생산량의 약 25%를 진도가 책임진다. 꽃게는 남해와 서해를 오르락내리락 옮겨 다닌다. 3월 중순께 남해안에서 먼저 잡히기 시작해, 4월이면 서해 곳곳에서도 꽃게가 발견된다.

가을에도 꽃게가 많이 잡히지만, 으뜸은 단연 봄 꽃게다. 산란을 앞둔 암게가 대거 잡히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는 3월 중순부터 5월까지 잡히는 놈을 최상품으로 친다. 이 시기 암게는 두꺼운 배딱지 전체가 붉게 비칠 정도로 알이 가득하다.


진도 남서쪽 서망항에 꽃게잡이 배가 모인다. 여기서 관매도·추자도 방향으로 2~3시간 거리의 먼바다까지 나가 꽃게를 잡는다. 한 배에는 대개 200~500개의 통발이 실린다. 통발에 고등어 따위를 미끼로 넣어 바다에 내리면 통발 가득 꽃게가 올라온다. 배 위로 건져낸 꽃게는 즉시 양 집게발을 잘라낸다. 서로 상처 내는 걸 막기 위해서다. 그만큼 사납고 건강하다. 통발 조업을 하는 김영서(63) 선장도 며칠 전 첫 꽃게를 낚았단다.


“문어·우럭·낙지만 올라오더니, 꽃게가 하나둘 걸리네요. 봄이 왔나 부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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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서 이름난 맛집 ‘신호등회관’에서 봄 꽃게를 영접했다. 내장과 살만 발라 밥에 비벼 먹는 꽃게살비빔밥, 알이 꽉 찬 간장게장, 그리고 갖은 봄 반찬으로 상이 가득 찼다. 봄 꽃게는 향긋하고 보드라웠다. 밥 두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식욕이 되살아났다. 지금도 계속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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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진도는 한반도 남서쪽 끄트머리에 있다. 서울시청에서 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린다. 주말을 이용해 2∼3일 일정을 짜길 권한다. 진도 남바다가 바라보이는 임회면 소산(154m) 기슭에 국립 진도자연휴양림이 있다. 숙박시설은 거북선과 판옥선을 본떠 만들었는데, 모든 객실에서 바다 전망을 누릴 수 있다. 1박 5만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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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아리랑의 고장답게 주말 민속 공연도 풍성하다. 국립남도국악원이 봄을 맞아 15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금요 국악 공감’ 공연을 연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진도 향토문화회관에선 ‘진도 토요 민속 여행’이 열린다. 두 공연 모두 무료다. 남도 들노래, 진도 다시래기(진도의 장례 풍속으로 상주를 위로하는 놀이), 진도 씻김굿 등을 들려준다. 남도 소리를 대대로 보전하고 있는 소포리 주민의 소포걸군농악(전남 무형문화재)도 부정기적으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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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상설시장, 진도 수산시장, 진도아리랑시장 등에서 싱싱한 봄 먹거리를 살 수 있다. 날짜 끝자리가 2, 7로 끝나는 날엔 읍내 조금리에서 진도 오일장이 열린다. 요즘은 대파·김·달래·톳·파래·꽃게·간자미·숭어 등이 흔하다. 오는 21~24일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열린다.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 사이 약 2.8㎞ 길이의 바다가 기적처럼 열린다.

진도=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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