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50년 안병경·김형자 “70대 고민도 결국 성문제”
연극 ‘아버지의 다락방’서 부부로
TBC 탤런트 출신, 찰떡 호흡 자랑
가족내 왕따 된 가장의 현실 그려
“노인이라고 치매만 다룰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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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월계동 인덕대 조형관에서 연습 중인 이들을 만났다. “뭐라카노! 이놈의 여편네, 안 닥치나” “고만 좀 해라고! 입에 거품 물고 핏발 세우는 사람이 뉜데?”라며 적나라한 부부 싸움을 연기하고 있었다.
연극 ‘아버지의 다락방’은 소설가 김춘복의 중편 ‘조지나 강사네’가 원작이다. 7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성 문제를 중심에 내세웠다. 성기능 보조제까지 거침없이 등장한다. 안병경은 “진솔한 얘기”라며 “노년 부부에게도 제일 중요한 건 성 문제”라고 말했다. “노인 얘기라면 치매 걸리고 아픈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주제가 신선해 출연을 결정했다”는 김형자는 “주변을 보면 부부지간에 성관계가 좋은 사람들이 끝까지 행복하게 산다”고 전했다. 작품 속에서 신혼 시절을 떠올리며 극적 화해를 한 두 사람은 “성 문제 극복은 부부 사이 갈등 해소를 위한 본질”이라고 의견 일치를 봤다. “성(性)이 제일 성(聖)스럽다”는 결론도 냈다.
연극은 젊은 시절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었던 남편이 나이 들어 가족 내 ‘왕따’가 돼버린 현실도 그린다. 집수리를 하며 남편의 작업실인 다락방을 없애는 문제를 아내와 아이들끼리만 의논해 결정해버리는 식이다. 극 중에서 “내가 무늬만 가장인 바지가장이구만”이라고 한탄했던 안병경은 무대에서 내려와서도 “집안 경제를 지탱하고 나라 발전에도 기여한 남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소외당하고 갈 곳이 없어진다. 가정에서까지 도외시 당하면 엉뚱하게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 나이 먹은 남자들은 아내가 무조건 ‘예스’하던 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산다”고 털어놨다.
반면 김형자는 아내의 입장을 대변했다. “여자가 갱년기가 되면 골병이 다 들어 정말 아프다. 맨날 큰소리만 치는 남편이 ‘삼식이’처럼 집에만 있으니 얼마나 괴롭겠냐”면서 “그러니 ‘정말 냄새나고 싫다’란 생각이 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사랑으로 감싸주지 않으면 백년해로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 모두 이혼의 아픔을 겪었던 터라 이들의 충고가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연기하며 그동안 아내에게 무의식적으로 지시하거나 상의하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 자기반성을 했다”는 안병경은 “젊은 남성들도 이 공연을 꼭 봤으면 좋겠다. ‘젊어서 잘못하면 이렇게 당한다’는 걸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모두 TBC 공채 탤런트 출신이다. 안병경은 1968년, 김형자는 1970년 TBC 탤런트로 데뷔했다. 이들이 한 무대에서 연극 공연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함께 출연한 드라마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들은 “연기 호흡이 잘 맞는다”며 서로를 치켜세웠다.
2013년 ‘엄마의 소풍’ 이후 6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김형자는 “대사 외우는 게 걱정이었다”고 말했다. “2011년 교통사고 이후 다섯 번이나 전신 마취 수술을 하고 나니 기억력이 너무 떨어져 겁이 났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원로배우 이순재(84)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했다. 올 들어서만도 ‘장수상회’ ‘그대를 사랑합니다’ ‘앙리할아버지와 나’ 등의 연극에 연이어 출연하고 있는 배우다. 김형자는 “선생님이 ‘자꾸 하면 된다’고 하시더라”면서 “끊임없이 맞춰보며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오랜만에 돌아온 연극계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내비쳤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라고 하는데 연극계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배우들이 개런티 생각 안 하고 놀이터 삼아, 트레이닝 삼아 출연해야 한다”면서 “2월 초부터 배우들이 모여서 연습을 하고 있지만 한 번도 제작사 예산으로 밥을 못 먹었다. 배우들이 알아서 먹을 것을 사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마당극 ‘놀부 아리랑’ 등으로 꾸준히 공연 무대에 서온 안병경은 “무대에 서면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든다”고 했다. “행복지수도 높아진다. 공연 중 땀이 등줄기에서 흘러내릴 때의 쾌감은 배우로서 최고의 행복 아니겠냐”면서 “다시 무대에서 연기의 꽃을 피우고 싶다”고 말했다. 공연은 31일까지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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