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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50년 안병경·김형자 “70대 고민도 결국 성문제”

연극 ‘아버지의 다락방’서 부부로

TBC 탤런트 출신, 찰떡 호흡 자랑

가족내 왕따 된 가장의 현실 그려

“노인이라고 치매만 다룰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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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경력 반세기의 두 배우가 부부로 무대에 선다. 안병경(72)과 김형자(69). 두 사람은 오는 19일 서울 정동 세실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아버지의 다락방’의 주인공 부부 박형준·안주자 역을 맡았다. TV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얼굴인 이들은 권태기를 넘어 바싹 메말라버린 황혼 부부의 일상을 실감 나게 보여주면서 재화합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지난 7일 서울 월계동 인덕대 조형관에서 연습 중인 이들을 만났다. “뭐라카노! 이놈의 여편네, 안 닥치나” “고만 좀 해라고! 입에 거품 물고 핏발 세우는 사람이 뉜데?”라며 적나라한 부부 싸움을 연기하고 있었다.


연극 ‘아버지의 다락방’은 소설가 김춘복의 중편 ‘조지나 강사네’가 원작이다. 7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성 문제를 중심에 내세웠다. 성기능 보조제까지 거침없이 등장한다. 안병경은 “진솔한 얘기”라며 “노년 부부에게도 제일 중요한 건 성 문제”라고 말했다. “노인 얘기라면 치매 걸리고 아픈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주제가 신선해 출연을 결정했다”는 김형자는 “주변을 보면 부부지간에 성관계가 좋은 사람들이 끝까지 행복하게 산다”고 전했다. 작품 속에서 신혼 시절을 떠올리며 극적 화해를 한 두 사람은 “성 문제 극복은 부부 사이 갈등 해소를 위한 본질”이라고 의견 일치를 봤다. “성(性)이 제일 성(聖)스럽다”는 결론도 냈다.


연극은 젊은 시절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었던 남편이 나이 들어 가족 내 ‘왕따’가 돼버린 현실도 그린다. 집수리를 하며 남편의 작업실인 다락방을 없애는 문제를 아내와 아이들끼리만 의논해 결정해버리는 식이다. 극 중에서 “내가 무늬만 가장인 바지가장이구만”이라고 한탄했던 안병경은 무대에서 내려와서도 “집안 경제를 지탱하고 나라 발전에도 기여한 남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소외당하고 갈 곳이 없어진다. 가정에서까지 도외시 당하면 엉뚱하게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 나이 먹은 남자들은 아내가 무조건 ‘예스’하던 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산다”고 털어놨다.


반면 김형자는 아내의 입장을 대변했다. “여자가 갱년기가 되면 골병이 다 들어 정말 아프다. 맨날 큰소리만 치는 남편이 ‘삼식이’처럼 집에만 있으니 얼마나 괴롭겠냐”면서 “그러니 ‘정말 냄새나고 싫다’란 생각이 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사랑으로 감싸주지 않으면 백년해로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 모두 이혼의 아픔을 겪었던 터라 이들의 충고가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연기하며 그동안 아내에게 무의식적으로 지시하거나 상의하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 자기반성을 했다”는 안병경은 “젊은 남성들도 이 공연을 꼭 봤으면 좋겠다. ‘젊어서 잘못하면 이렇게 당한다’는 걸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모두 TBC 공채 탤런트 출신이다. 안병경은 1968년, 김형자는 1970년 TBC 탤런트로 데뷔했다. 이들이 한 무대에서 연극 공연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함께 출연한 드라마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들은 “연기 호흡이 잘 맞는다”며 서로를 치켜세웠다.


2013년 ‘엄마의 소풍’ 이후 6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김형자는 “대사 외우는 게 걱정이었다”고 말했다. “2011년 교통사고 이후 다섯 번이나 전신 마취 수술을 하고 나니 기억력이 너무 떨어져 겁이 났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원로배우 이순재(84)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했다. 올 들어서만도 ‘장수상회’ ‘그대를 사랑합니다’ ‘앙리할아버지와 나’ 등의 연극에 연이어 출연하고 있는 배우다. 김형자는 “선생님이 ‘자꾸 하면 된다’고 하시더라”면서 “끊임없이 맞춰보며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오랜만에 돌아온 연극계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내비쳤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라고 하는데 연극계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배우들이 개런티 생각 안 하고 놀이터 삼아, 트레이닝 삼아 출연해야 한다”면서 “2월 초부터 배우들이 모여서 연습을 하고 있지만 한 번도 제작사 예산으로 밥을 못 먹었다. 배우들이 알아서 먹을 것을 사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마당극 ‘놀부 아리랑’ 등으로 꾸준히 공연 무대에 서온 안병경은 “무대에 서면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든다”고 했다. “행복지수도 높아진다. 공연 중 땀이 등줄기에서 흘러내릴 때의 쾌감은 배우로서 최고의 행복 아니겠냐”면서 “다시 무대에서 연기의 꽃을 피우고 싶다”고 말했다. 공연은 31일까지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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