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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하면 죽을 것 같다" 장관에서 배우로 돌아온 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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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의 유봉, 전 문화관광부 장관 김명곤(68)이 다시 무대에서 바빠졌다. 지난달 22∼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연극 ‘흑백다방’에 출연한 데 이어 오는 14일 초연을 앞둔 국립극장 70주년 기념 창극 ‘춘향’의 극본ㆍ연출도 맡았다. 서울 장충동 국립창극단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팔팔한 현역이었다. “불후의 명작 하나 이 세상에 남겨놓고 죽으면 좋겠다는 꿈을 아직 못 이뤘다”면서 “해야될 게 많다”고 했다.


Q : 국립창극단과는 20년 만의 협업이다. 춘향전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창극으로 공연됐던 작품인데, 이번 신작은 어떻게 다른가.


A : “춘향전은 우리 판소리 중 음악적으로 가장 백미인 작품이다. 베르디ㆍ푸치니 오페라보다 훨씬 더 잘 작곡이 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수백 년 동안 수백 명의 명인 명창들이 갈고 닦은 전통 가락의 선율은 최대한 살렸다. 하지만 가사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싹 손질을 했다. 또 봉건시대에 그려진 인물들을 완전히 현대적인 캐릭터로 바꿔 요즘 20, 30대 젊은이들도 자기들의 사랑 이야기처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는 10여년 간 명창 박초월(1917∼1983)에게 판소리를 배운 소리꾼이기도 하다. 대학 연극반 시절 빠져든 판소리는 그의 예술인생에서 중요한 축이 됐다. 1986년부터 극단 ‘아리랑’을 꾸리며 “가난한 연극쟁이”를 자처했던 그가 대중 스타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도 판소리 영화 ‘서편제’(1993)의 성공 이후다. 그가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을 맡았던 ‘서편제’는 서울 단성사 단관 개봉으로 한국영화 사상 첫 100만 관객 돌파란 대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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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인생의 명대사’도 ‘서편제’에서 찾아냈다. 소리를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한 비정한 아버지 유봉이 “야 이놈아, 쌀 나오고 밥 나와야만 소리 하냐? 지 소리에 지가 미쳐가지고 득음을 하면 부귀공명보다도 좋고 황금보다도 좋은 것이 이 소리속판이여, 이놈아!”라고 호통치는 대목이다. 그는 이 대사에 대해 “평소 내 생각”이라며 “내 삶과도 진하게 연결돼 있는 대사”라고 말했다. “예술가가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대해 미치지 않고서는 뭔가를 이룰 수 없다. 그러는 동안 돈도 못 벌고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기의 세계에 자기가 미쳐서 꾸준히 하다보면 예술가로서 느끼는 행복이 그 속에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Q : 예술의 가치가 부귀공명보다 좋다고 ‘서편제’ 대사를 썼는데, 이 작품으로 얻은 명예와 경제적 보상이 크지 않았나.


A : “대본을 쓸 때만 해도 이 영화로 부귀공명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안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인생이 변화됐다. 과거 내가 소극장 연극을 하거나 판소리 공부를 하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할 때 명예나 인기나 돈을 생각했을까? 안한 것 같다. 그냥 열심히 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생겨난 것 같다. 그렇다고 그 결과적으로 생겨난 것들이 그 뒤로 내 인생을 지배했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조금 나를 도와주기는 했고 나를 풍성하게는 했지만 결국 나는 다시 가난한 연극배우다.”


Q : 그렇다면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A : “작품에 대한 꿈이다. 어려서부터 셰익스피어나 괴테처럼 불후의 명작 하나 이 세상에 남겨놓고 죽으면 좋겠다는 꿈을 꿨다. 아직 그 꿈을 못 이뤘으니까 그 꿈이 늘상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처럼 내 인생이 다 담긴, 그것이 또 인류에게도 공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남기면 좋겠다.”


그가 추구하는 예술론의 키워드는 ‘광대’다. “춤 추면 춤 광대, 소리 하면 소리 광대, 줄 타면 줄 광대라고 하듯 특정 예술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넓을 광(廣)’ ‘큰 대(大)’의 ‘광대’를 표방한다. “배우다, 연출이다, 작가다 이런 구분 없이 그냥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고 싶다”는 그는 이번 신작 ‘춘향’을 두고서도 “창극이다, 오페라다, 하는 구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Q : 인생의 가치를 예술에 두게된 이유가 있나.


A : “나는 연극을 할 때 가장 살아있는 느낌을 받고 행복하다. 대학 졸업 후 잡지사 기자 1년, 독일어교사 2년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연극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지 못하겠구나, 연극 아닌 다른 삶은 견딜 수 없구나, 라는 체험을 했다. 실제 그 때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고 위병에 걸리기도 했다. 돈을 벌든 못 벌든, 남이 알아주든 말든, 연극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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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왜 좋은 학교(전주고-서울대) 나와 좋은 직장 다니다가 다 때려치고 연극을 하냐, 미친 놈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돌아왔던 무대를 잠시 내려와야 했던 시간도 있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시절 국립극장 극장장(2000∼2005)과 문화관광부 장관(2006∼2007)을 역임했던 기간이다. 그는 “그 7∼8년 동안 인생의 소중한 경험을 했지만, 창작자로서는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숨어있던 시간이었다”며 “지금 뒤늦게 하려다보니 하고 싶은 작품들이 쌓여있다”고 말했다.


그에겐 배우로서 직접 연기를 펼치고 싶은 바람도 크다. “기회가 있으면 배우로 계속 활동하고 싶다”면서 “그런데 배우는 남이 하자고 해야 할 수 있는 수동적인 존재 아닌가. 기회가 없어 못하는 건 내가 작가로서, 연출가로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건강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결연하기까지 했다.


“어쨌든 절제하고 틈 나는 대로 운동을 하죠. 배우로서 촬영을 하고 무대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데, 건강을 잃으면 바로 끝나는 거니까요. 건강을 지키는 건 내 직업상 아주 필수적인 거죠.”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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