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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인가...북악산과 인왕산 품은 이 곳

박나니의 한옥 이야기(13)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옥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일고 있다. 회색빛 바다와도 같은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가 이런 주거 방식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훨씬 더 개방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지닌 우리의 전통 한옥에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이다. 전통적이라고는 하나 요즘 한옥은 한옥의 외관은 유지하되 내부는 현대적인 생활방식에 맞춰 변한 한옥이 많다. 한옥 이야기는 지난 2019년 발간된 책『한옥』에서 다루고 있는 한옥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중앙일보

전통 한옥 양식인 사랑채와 연결돼 있는 2층의 망루형 양옥. 붉은 벽돌로 지어진 조적조 건물과 목재로 지어진 한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사진 이종근]

부암정

북악산과 인왕산이 품고 있는 부암동은 예부터 무계동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기로 소문난 동네다. 무릉도원의 계곡과도 같은 곳이라는 의미가 무색할 만큼 부암동의 오래된 고택과 성곽길, 그리고 뒤편으로 펼쳐지는 인왕산의 풍경은 여러 선인들이 감탄했던 대관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탄생시킨 안평대군에게 이 일대는 무릉도원이었고, 『운수 좋은 날』의 소설가 현진건에게는 삶의 터전이었다. 이와 같은 훌륭한 경치를 따라 부암동주민센터 뒷골목을 걸어 오르면 부암정 또는 반계 윤웅렬 별장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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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의 조적조 건물은 문화혁명 이전 중국 상해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것으로, 양옥을 전통 건축에 접목시키고자 한 시도이다. [사진 이종근]

개화파 무신 윤웅렬 또한 이 풍광에 반했는지 구한말 별장의 터를 이곳으로 잡았다. 1906년 첫 건축 당시에는 2층 벽돌 건물만 서 있었는데, 이는 일찍부터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 양옥과 접목시킨 중국 상해의 건축물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건축됐다. 이후 윤웅렬의 셋째 아들 윤지창이 한옥을 증축해 오늘날의 부암정이 탄생했고, 2005년도에 현 집주인의 소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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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정의 내부로 방문자를 초대하는 문. 이곳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다워 현 집주인이 부암정을 매입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진 이종근]

매입 당시 폐가 수준이었던 별장은 현 집주인에 의하여 복원되었고, 구한말 도입된 서구의 건축 양식과 우리나라 전통 건축 양식이 공존하는 사례 중 현재까지도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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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열고 부지 내로 들어서면, 거대한 바위가 방문자를 가장 먼저 맞는다. 아이를 점지하는 이 바위 옆으로 놓인 돌길을 따라 올라가야만 비로소 부암정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사진 이종근]

고택의 우람한 대문을 들어서면 특이하게도 집보다 연륜이 훨씬 오랜 거대한 바위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 바위는 만지면 아이를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 낙엽수들이 가득한 마당을 지나 본격적으로 부암정 내부로 들어가면 오른편에는 기역(ㄱ)자 모양의 안채, 안채의 왼쪽으로는 광채와 사랑채가 중정을 나란히 품고 있고, 기역자 모양의 사랑채 끝부분에 예의 2층 붉은 벽돌 건물이 있다. 이를 모두 뒤로 한 채 뒤뜰로 난 길을 걷다 보면 인왕산 열차바위가 눈에 들어오는데, 특히 비가 내린 뒤의 치마바위 전경은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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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정의 행랑채 내부에는 현대적인 생활방식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과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위한 공간이 공존하고 있다. 입식문화 공간 한편에 좌식문화의 전통적인 가구들을 배치했다. [사진 이종근]

사랑채는 특이하게 기와지붕 위에 테라스가 설치되어 있고 인접한 2층 양옥과의 조합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서까래와 대들보가 드러나 있는 천장 가장자리에 등을 설치하여 역광을 줌으로써 분위기는 평온하고 담백한 사랑채의 멋이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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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보이는 서까래와 현대적인 생활 방식에 맞춰 지어진 부엌의 조합이 어색할 법도 하지만, 가구의 색깔을 목재와 맞추어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사진 이종근]

비록 많은 변형을 겪어 원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만, 창호를 액자로 삼아 이를 통해 보는 바깥 풍경은 어떤 미술품보다도 아름다워 우리나라 옛 한옥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집은 한 달에 2회 무료 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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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정의 뒷마당. 집주인이 부암정을 복원하면서 땅도 가꾸어 다양한 약초들을 심어놓았다. 장독대와 한옥의 기와지붕, 주변 자연이 어우러져 서울 한복판 부암동이 아닌 시골집에 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이종근]

박나니 작가 puzzlet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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