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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가정부, 내게 가장 큰 사랑을 가르쳐준 사람"

'그래비티'로 이름난 알폰소 쿠아론 감독

17년 만에 멕시코 돌아가 만든 '로마'

넷플릭스 영화 최초 베니스 대상 수상

"멕시코와 한국, 독재 맞서 싸운 것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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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2013)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2004) 같은 영화로 이름난 감독 알폰소 쿠아론(57)의 말이다. 멕시코 출신인 그는 1970년대 멕시코 배경의 새 영화 ‘로마’로 한국 취재진과 화상 기자회견을 가졌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해온 그가 모국어로 영화를 만든 건 ‘이 투 마마’(2001) 이후 17년 만이다.


'로마'라는 제목은 멕시코시티의 작은 동네 이름이다. 주인공은 젊은 가정부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 분). 영화는 그의 시선을 따라 이혼으로 깨져버린 주인집 가족의 상처, 클레오 자신이 겪는 쓰라린 실연에 더해 아픈 시대상을 섬세한 흑백영상으로 그려낸다.







이상적으론 극장에서 '로마' 봐주길 원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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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아버지가 집을 떠나며 우리 가족이 해체된 이야기가 영화의 초점이지만, 70년대는 멕시코에 민주화 노력이 거세게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하다”며 “안타깝게도 당시의 실패 이후 멕시코는 여전히 민주화 과정에 있지만 이 시기 형성된 멕시코의 시대정신은 후대에도 계승됐다”고 했다. 또 “현대의 유령이 과거로 돌아가 그 당시를 관찰하는 듯한 관점을 구현하고자, 과거 흑백 영화들과 구분되는 현대적인 디지털 흑백화면으로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평범한 일상에 자연스레 새겨지는 시대상, 비극을 관통하는 삶의 철학, 또 영화가 빛과 사운드의 예술임을 아름답게 입증하는 장면들을 보노라면 이 감독에 새삼 놀라게 된다. 이 영화를 두고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9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 영화는 넷플릭스 공개(14일)에 앞서 12일 소규모로 국내 극장가에 개봉했다.


감독은 “이 스토리에 제일 먼저 관심을 가져준 넷플릭스와 손잡은 것인데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극장 개봉보다 큰 주목을 받게 됐다. 이상적으론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봐주길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소규모 작품을 즐기기 위해선 넷플릭스 같은 신규 플랫폼이 맞지 않나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모국어로 창작, 카메라 들고 직접 촬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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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나고 자란 집과 동네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던 바람을 15년 만에 성사했다고.


A :

“나로선 꼭 해야만 했던 작품이다. ‘그래비티’를 마무리할 무렵, 드디어 멕시코로 돌아가 영화를 찍을 때라고 다짐했다. 모든 사고와 창작 과정이 모국어였기 때문에 무척 자유로웠다. 나는 스페인어 중에도 칠랑고를 쓴다. 멕시코시티 출신임을 알려주는 액센트다. 꿈도 칠랑고로 꾼다. 오랫동안 해외에서 여러 언어로 연출을 해왔지만 이번엔 어떤 필터도 없이 감성적 뿌리라 할 만한 이야기를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사운드를 잘 활용해 영화에 비친 시공간의 미묘한 느낌들을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관객에게 온전히 체험시키는 게 이 작품의 목표였다.”


Q : 이름난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가 하차하면서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


A :

“제가 원래 촬영으로 시작했다. 영화학교에서도 촬영을 전공했고 TV에서 촬영 일을 할 때부터 루베즈키가 내 어시스턴트로 손발을 맞춰왔다. 그가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서 나보고 직접 촬영하라고 설득하더라. 이전 작품도 초반 며칠은 제가 직접 촬영하곤 했기 때문에 오히려 재밌게 했다. 각본 쓸 때 쏟아 부은 제 모든 생각을 다른 이에게 설명할 필요 없이 곧바로 촬영할 수 있어 이번 영화엔 더 잘 맞았다.”


Q : 가정부 클레오를 주인공으로 삼았는데.


A :

“우리 가족의 상처, 멕시코란 사회가 안은 상처, 전 인류가 안은 상처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캐릭터라 생각했다. 클레오의 실제 모델인 가정부 리보 로드리게즈는 어릴 적 내게 가장 큰 사랑을 가르쳐준 사람이기도 하다.”





시위대 학살된 현장서 촬영…한국 태권도 나온 이유는

그는 핵심 세트인 가족의 집을 실제 자신의 가족이 당시 쓰던 물건과 가구로 채웠다. 배우들도 멕시코 전역을 뒤져 실제 인물과 같은 모습을 찾았다. 베테랑 연기자도 있지만 주인공 클레오 역의 얄리차 아파리시오는 연기가 처음인 교사 지망생.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도록 극 중 친구 역 역시 그의 동네 친구를 캐스팅했다.

“사전 리허설된 장면이란 개념을 뒤집고 싶었다”는 쿠아론 감독은 촬영 기간 동안 누구에게도 전체 각본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침마다 그날 분량을 간단히 설명했을 뿐. 하루하루 펼쳐지는 실제 인생을 카메라에 담아내듯 108일간의 촬영을 이어갔다.


70년대는 멕시코에서 학생시위가 한창이었던 시기. 정부 지원을 받은 우익무장세력 로스 알코네스가 시위대 120명을 학살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영화는 사건이 벌어졌던 교차로에서 실제 시위 장면을 촬영했다. 거리 풍경도 꼼꼼히 고증했다. 도로와 노점상의 고유한 소리까지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로 밀도 높게 구현했다.




Q : 한국에서 온 태권도 사범이 훈련을 시키는 장면도 나오는데.


A :

“당시 멕시코에서 반정부 시위를 제압하는 군사 훈련의 일부로 태권도가 활용됐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통제하고 사회를 억압하는 틀이기도 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그려냈다.”





대작이 장악한 극장가, 작은 영화 선택 폭 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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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쿠아론 감독과 같은 어린 아이들은 영화 속에서 죽어가거나,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며 고통스런 역사의 현장을 똑똑히 목격한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갑작스런 지진의 공포를 맞닥뜨리는 것도, 양수가 터진 산모가 시위 진압의 아수라장 속에 갇혀 울부짖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아이들이다. “전 아기가 태어나길 원치 않았어요.” 영화 클라이맥스에 들려오는 누군가의 외마디가 더 사무치게 다가오는 이유다.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다. 그럼에도 쿠아론 감독의 말처럼 “전 세계적으로 극장이 할리우드 대작영화에 장악당한 현실”에서 극장에서 개봉했다면 과연 얼마나 봤을까. 답하기가 쉽지 않다.


칸영화제가 넷플릭스 영화의 경쟁부문 출품을 거부하고, 국내 멀티플렉스체인들이 넷플릭스의 온라인 동시 개봉 정책에 반발해 상영을 보이콧하는 상황을 감독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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