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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 열대어 성형, 1억 6천만원 버섯…'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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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앞둔 신부는 친구들을 전용기에 태우고 가족 소유의 리조트가 있는 인도네시아의 섬으로 떠납니다. ‘브라이덜 샤워’를 하려는 거죠. 신랑의 친구들은 공해에 떠 있는 유조선을 통째로 빌려 ‘총각 파티’를 엽니다. 폭죽 대신 바주카포를 쏘아올리면서요. 제목 그대로 ‘미친 부자들’의 이야기,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s)’의 한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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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출신 미국 작가 케빈 콴 원작에, 100% 아시아계 배우들만 출연하는 할리우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지난 여름 미국에서 개봉 후 3주 연속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킨 화제작입니다. 총제작비로 3000만 달러를 썼는데, 이미 전 세계서 2억 30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대성공을 기록했죠.

영화가 흥행하면서 작품 속에 그려진 아시아 부자들의 실제 삶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가디언, 파니낸셜타임스(FT) 등 유럽 언론들은 ‘세계의 부가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는 주제의 기획 기사를 내놓는가 하면 일본 아사히 신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중국계 부자들의 생활상을 직접 취재해 “영화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들의 실제 삶보다 덜 화려하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돈 자랑’이 난무하는 영화가 실제보다 소박하다니, 이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 [ 고 보면 모 있는 기한 계뉴스- 알쓸신세]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사실 뻔하기 그지없는 신데렐라 스토리입니다. 미국 뉴욕에서 교수로 일하는 여주인공 레이첼 추(콘스탄스 우)가 남자 친구 닉 영(헨리 골딩)의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싱가포르로 향하는데 알고 보니 남친의 가문은 어마어마한 부자였다, 는 내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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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재미는 퇴근 길에 보석 가게에 들러 120만 달러(약 13억 원)짜리 귀걸이를 사고, 결혼식에 4000만 달러(약 451억 원)를 쓰는 싱가포르 초상류층의 삶을 엿보는 데 있습니다. “영화에는 우리의 생활이 그대로 묘사돼 있어요. 단, 현실이 조금 더 화려하겠네요.” 17세에 자신의 회사를 차려 현재는 미국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싱가포르 상류층 출신 케인 림(29)은 영화를 보고 이런 감상을 밝혔네요.

그는 아사히 신문 인터뷰에서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백화점이 보낸 전용기를 타고, 이틀 간 쇼핑 투어를 했다고 말합니다. 싱가포르 부자들 20여 명이 함께 했는데, 이 쇼핑에서 그가 쓴 돈은 수십억원 대라고 합니다. 주말이면 전세기를 타고 세계 곳곳의 카지노 순례를 다니는 게 일과이고, 연인과의 이벤트를 위해 대형 여객기의 모든 좌석을 구입한 친구도 있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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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부유층들에게 인기 있는 애완동물은 아로와나(arowana)라는 희귀종 물고기입니다. 열대어 판매를 하는 유진 운씨는 “(싱가포르에는) 돈을 어디에 써야 할 지 몰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웃습니다. 주말이면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고급 차가 늘어서는 그의 가게에서는 아로와나 성형수술을 합니다. 또렷한 눈매을 위해 눈꺼풀을 잘라 내고, 꼬리와 지느러미를 아름답게 정돈하고, 전체적인 비늘의 톤을 밝게 만드는 수술 등 다양합니다.

아로와나는 약 1억 3000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았다고 알려진 고대어의 일종인데,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아로와나는 행운과 부의 상징으로, 색깔과 종류에 따라 수백만원에서 수억원대까지 거래된다고 합니다. 펜트하우스에서 30마리의 아로와나를 키운다는 한 50대 사업가는 “아로와나를 돌보는 데 수억원을 들였다”고 말합니다.


싱가포르의 유명 사교계 인사 제이미 추아(44)는 자신이 경험한 부유층의 생활을 소개하는 리얼리티 쇼를 제작 중인데요. 20만 싱가포르 달러(약 1억 6000만원)짜리 송로 버섯으로 만든 요리를 먹고, 교통체증을 피하려 헬기로만 이동하며, 파티에서 현금을 뿌리며 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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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아는 보통 가정 출신이지만, 전 남편과 함께 시작한 사업이 성공하며 사교계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보석과 자동차, 명품 옷과 가방을 과시하는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88만 명에 달한다네요. 그는 “싱가포르 초상류층의 세계는 아주 배타적이라 쉽게 접근할 수 없다”며“하지만 요즘 전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들은 어떻게 이런 엄청난 부를 쌓았을까요. 현재 5000만 명의 화교가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데 이들 중 70%는 동남아시아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17~20세기 중국 남부에서 바다를 건넌 ‘쿨리(苦力·육체노동자)’의 후손들이라고 하죠.

이들 중 일부는 영국 식민지 시절 획득한 아편 전매권으로 돈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번 돈으로 동남아시아는 물론, 영국과 호주의 부동산을 사들였죠. 자산 119억 달러(약 13조 4000억 원)로 2017년 싱가포르 최고 부자로 꼽힌 부동산 개발업체 ‘파 이스트 오거나이제이션’의 경영주 로버트&필립 응(Ng) 형제 역시 중국서 온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부동산을 물려받은 케이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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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딧스위스의 ‘글로벌 자산 보고서(Global Wealth Report) 2017’에 따르면 싱가포르에는 15만 2000명의 백만장자가 살고 있으며, 이는 560만 인구의 2.7%에 달합니다. 하지만 진짜 엄청난 부자들은 자산가 랭킹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비밀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케빈 콴(45) 역시 증조 할아버지가 싱가포르 은행 설립자에, 삼촌이 ‘호랑이 연고’로 불리는 ‘타이거 밤’의 개발자인 초부유층 자제인데요. 그는 미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의 진짜 부자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떻게 돈을 쓰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주변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편집자에게 ‘사람들이 거짓말이라 생각할 수 있으니 너무 사치스런 묘사는 자제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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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은밀한 삶을 추구하게 건 냉전의 영향입니다. 공산 세력이 강했던 동남아시아에서 부유층들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생존법이었습니다. 싱가포르 부자들의 경우 일제 점령기 기부를 강요당해 울며 겨자먹기로 상당한 재산을 내놓아야 했죠. 하지만 요즘엔 부를 과시하는 데 경계심을 갖지 않는 세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이 영향을 줬죠,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싱가포르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상속세를 폐지하는 등 자본친화적인 정책을 폅니다. 2004년 리센룽 총리는 싱가포르를 ‘메트로폴리탄을 위한 도시’로 만들겠다며 카지노를 갖춘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등을 짓기 시작하죠. 자본소득세·부동산세도 없어졌습니다. 에두아루도 세이버린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등 세계적인 부자들이 싱가포르로 이주한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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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부자들을 위한 나라’에서 더 이상 부는 감춰야 하는 것이 아니라 뽐내야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특히 중국 경제 개방 이후 등장한 중국 신흥부유층들과의 교류도 ‘부 과시’ 경향을 강화합니다.

싱가포르·홍콩·대만·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의 중국계 재벌들은 오랜 세월 혼맥(婚脈) 등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고, 상부상조하며 부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중국 후룬(胡潤)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화권 지역 자산 1억 위안(약 163억1500만원) 이상의 자산가는 13만 명에 육박해 1년 사이에 9.9%나 늘어났죠. FT가 “세계의 슈퍼 리치는 동양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화 속 ‘재벌 남친’의 가족들도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죠. 서민 집안 출신 여주인공 추 역시 당연히 동남아 중국계 재벌의 자제일 거라 추측한 한 사촌이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말레이시안 패키징 그룹의 추인가요? 아니면 타이완 전기 집안의 추? 아니면 중국 라면회사의 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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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속의 싱가포르는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지난 6월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싱가포르의 매력을 전세계에 알렸다’고 평가 받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정작 싱가포르 정부와 국민들은 이 영화를 반기지 않는다니 왜일까요.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부국이지만, 빈부격차 문제가 심각합니다. 2014년 기준으로 상위 10%의 월평균 소득이 3만 1000싱가포르달러(약 2500만 원)인 데 비해 하위 10%의 월평균 소득은 1700 싱가포르 달러(약 140만 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난데없는 ‘부유층 돈자랑 영화’가 반가울 리 없죠. 야당은 “빈부 격차의 문제가 국가의 단결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연일 정부를 비판하고 있고, 리센룽 총리도 국회에서 “축복 받은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자랑하는 것을 그만두게 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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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인종차별에 도전한 이 영화에서 정작 싱가포르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인도계와 말레이계를 전혀 등장시키지 않은 것도 비판의 이유가 됐습니다. 싱가포르 항공은 영화 촬영에 협조하는 것을 거부했고, 정부계 신문 스트레이트 타임즈도 “격차 사회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는 가운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불편한 영화였다”는 기사를 실었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흥행에 힘입어 벌써 속편 제작이 결정됐는데요. 2편에선 전통적 부자가 아닌 중국 신흥 부자들의 생활상을 그릴 예정이라고 하네요. 30일 중국에서 어렵사리 개봉하는 이 영화가 과연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해집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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