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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줍다가 車로 아내 쳤다는 50대, 살인미수된 결정적 증거

[이슈추적]

전주지법, 살인미수 50대 징역 6년 선고

이혼소송 중 아내 차로 치어 중상 입혀

남편 "운전중 안경 줍느라…아내 못봐"

재판부 "진술 오락가락…살해 의도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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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소송 중이던 아내를 자신의 승용차로 치어 중상을 입힌 50대에 대해 법원이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며 징역형을 선고했다. 양쪽 눈의 시력 차이가 심한 남편은 "운전 중 조수석에 떨어진 안경을 줍다가 사고를 냈다"고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안경에 대한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점 등을 이유로 유죄 판단을 내렸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형사1부(부장 김성주)는 지난 10일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50)에 대한 첫 심리를 열었다. 아내를 차로 치어 살해하려 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5월 7일 징역 6년을 선고받은 A씨에 대한 항소심 첫 재판이었다. A씨는 지난해 9월 9일 오전 10시6분쯤 전주지법 정문 맞은편에서 택시를 잡기 위해 기다리던 아내 B씨(47·여)를 자신의 벤츠 승용차로 들이받아 살해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일로 B씨는 14주간 병원 치료가 필요한 척추 골절 등 상해를 입었다.


1998년 2월 결혼한 A씨 부부는 2015년 11월 아내 B씨가 가출하며 별거 상태로 지냈다. 2017년 6월 B씨가 동거남 C씨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자 C씨 친생자(부모와 혈연관계가 있는 자식)로 출생 신고를 하기 위해 A씨를 상대로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했다. 등록된 아버지의 친생자가 아닌 경우 법률상 부자 관계를 부정하는 소송이다.


이에 A씨는 2017년 9월 27일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A씨 부부는 사건 당일 9시40분쯤 전주지법에서 열린 이혼소송 1심 판결 선고 전 조정 절차에 참여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B씨)와 동거남은 피고인(A씨)에게 위자료로 1700만원을 지급하고,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재산 분할로 3700만원을 지급하되 이를 상계해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검찰은 A씨가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B씨에게 외려 본인이 돈을 줘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범행한 것으로 보고 그를 재판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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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재판 내내 혐의를 부인했다. "운전 중 조수석에 떨어진 안경을 줍느라 전방을 주시하지 못했을 뿐 피해자가 아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서다. "살인이 아닌 업무상과실이고, 살인의 고의도 없었다"는 취지다.


하지만 1심을 맡은 전주지법 형사12부(부장 김유랑)는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해하기 위해 본인 차량으로 피해자를 들이받은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며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가 A씨 주장을 거짓으로 본 까닭을 판결문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①아내인 줄 몰랐다?


A씨는 전주지법 근처 골목길에 주차한 차량을 몰고 나와 큰 도로에 합류하는 지점에서 15~18초간 대기했다. 당시 B씨는 A씨 차량과 50~6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두 장소 사이에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은 없었다. 재판부는 "20여 분 전 법원에서 B씨와 함께 조정에 참여한 A씨가 옷차림 등을 통해 B씨를 쉽게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②사고 지점서 4배 빨라진 車속도


도로교통공단 전북지부가 사건 당일 도로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분석한 결과 A씨는 사고가 일어난 횡단보도에 이를수록 차량 속도를 시속 11.9㎞→17.7㎞→41.3㎞로 지속적으로 높였다.



③충돌 직전 아내 쪽으로 차 꺾은 남편


A씨는 B씨와 충돌하기 1.7초 전 차를 B씨 방향으로 85도 틀었다. 재판부는 "A씨 차량 속도 증가 및 충돌 무렵 조향 장치(앞바퀴의 회전축 방향을 조절하는 장치) 방향 전환은 A씨가 충돌 직전 B씨가 사고 장소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④목격자 "술 취한 줄…" "사람 치고도 안내려"


사고 현장을 지켜본 목격자는 경찰에서 "사고 차량이 갑자기 술 취한 사람이 운전하는 것처럼 인도 쪽으로 진행하다 사람을 충격했다"고 진술했다. 반대편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다른 목격자는 "운전자가 피해자의 부상 상태는 확인하지 않은 채 현장 주변만 맴돌다가 없어져 '뺑소니를 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A씨 차량은 사고 직후 35m를 더 가다 멈춘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를 일으킬 만한 고장이나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교통사고를 일으킨 경우 차량을 가까운 곳에 세운 후 피해자 상황을 살펴보는 게 일반적인 행동인 점에 비춰 보면 사고 직후 A씨 행동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A씨도 사고 직후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사실을 인정했다.



⑤"안경 바닥에 떨어졌다고 믿기 어려워"


A씨는 수사기관에서 "일상생활에선 안경이 필요 없으나 운전할 때는 원근감 문제로 안경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사건 당일에 대한 진술에선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내려 안경에 습기가 차 이를 조수석 가방 위에 올려 놓고 운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여러 사정을 열거하며 "믿기 어렵다"고 했다. 안경착용 시점 등 안경을 둘러싼 진술은 A씨가 과실에 의해 사고를 냈다는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인데도 진술이 오락가락해서다. A씨는 수사기관에서 "사건 당일 법원에서 나오면서 안경을 쓰고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수사관이 "법원에서 나올 때 안경을 쓰지 않았다"고 반문하자 "차 타러 가면서 썼다"고 말을 바꿨다. 수사관이 다시 "비가 내려 한 손으로는 우산, 다른 한 손으로는 가방을 들었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안경을 썼냐"고 묻자 "차 근처에 도착해서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며 진술을 또 번복했다.


재판부는 A씨가 차에 탄 후 안경을 쓰지 않은 경위에 대한 진술도 일관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조사 과정에서 그는 "안경이 비에 젖어 조수석 의자에 올려놨다"→"차에 성에가 껴서 안경을 습관적으로 벗어놨다"→"비가 와서 안경에 성에가 껴 쓰지 않았다"→"조수석에 올려놨던 성에 낀 안경이 의자 밑으로 떨어졌다"며 진술을 계속 바꿨다.


A씨는 사고 직후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2차로로 주행 중이었는데 처음에는 보행자를 보지 못했고 보행자가 갑자기 차도로 진입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정작 이때는 A씨가 "안경을 줍느라 전방을 주시하지 못했다"고 언급한 사실은 없었던 점에도 주목했다.


재판부는 "속칭 '짝눈'이라는 A씨 주장대로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써야 운전할 수 있다면 사건 당일 시야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안경을 쓰지 않은 채 운전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습기가 찬 안경이라 운전에 도움되지 않아 벗어놓았다면서 운행 중 이를 무리하게 주우려 한 점 ▶안경이 떨어진 후 15~18초간 대기했는데도 안경을 줍지 않고 큰 도로에서 본격적으로 주행하는 상황에서야 주우려 한 점 등도 수상한 정황으로 꼽았다.


A씨는 사건 당시 "진료 예약을 위해 병원에 가는 중이었다"면서도 사고 직후 경찰 조사에서는 병원 이름을 잘못 댔다. 재판부는 "예약하기 위해 병원에 전화하는 대신 직접 병원에 갈 예정이었다는 설명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피고인이 이혼소송 중이던 배우자인 피해자를 자신이 운전하는 차량으로 들이받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것"이라며 "죄질이 상당히 불량하다"고 밝혔다. 다만 "1990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사실 외에 전과가 없는 점, 피고인이 피해자의 귀책사유로 인한 이혼소송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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