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일하고, 엄마는 수영장에?…‘핑크퐁’의 엄마 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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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퐁’은 아이 가진 집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브랜드이자 캐릭터다. 중독성 강한 핑크퐁의 ‘아기 상어’ 동요는 대중에게도 익숙하다. ‘아기 상어’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아이에게 사랑받는 핑크퐁 노래 중에는 ‘자동차 가족’이 있다. 1분 정도의 이 노래는 다섯 자동차를 각각 아빠, 엄마, 언니, 형, 아기 자동차로 그리고 한 가족으로 재미나게 표현한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듣다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가사를 살펴보자.
“아빠, 엄마, 형아, 언니, 난 아기, 우리는 자동차 가족, 아빠 자동차 회사에 간다 붕붕치치 붕붕치치, 엄마 자동차 수영장 간다 붕붕다이빙, 붕붕다이빙” 이 가사에 맞춰 영상에는 머리에 서류 가방을 이고 회사로 향하는 보라색 아빠 자동차와 수영모에 선글라스를 끼고 튜브를 낀 채 수영장에 가는 하늘색 엄마 자동차가 등장한다. 아빠는 일하는 존재로 그리는 대신, 엄마는 아빠가 일하는 동안 그저 수영장에 가 여유를 즐기는 모습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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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2016년 하반기 지역별 고용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는 전체 가구의 44.9%다. 이 통계 수치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육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는 경단(경력단절) 엄마가 주위에 숱하다. 이들이 회사에 가지 않는다고 집에서 여가를 즐기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엄마’를 대표하는 그림이, 선글라스를 낀 채 수영장 가는 장면이 되는 건 엄마와 전업주부에 대한 폄하가 전제된 기존 편견과 고정관념이 작용한 결과다. 핑크퐁의 또 다른 동요 '상어가족의 하루'에서도 아빠 상어는 바쁘게 청소하는 데 반해 엄마 상어는 그저 화장하며 겉을 치장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이처럼 아이들의 콘텐트에서 성 편견을 조장하는 일은 적지 않다. 매주 수요일 EBS에서 방영 중인 ‘꼬마버스 타요’의 캐릭터 소개를 보자. 캐릭터 그림을 가리고 캐릭터 소개 글만 봐도 성별을 알아맞힐 만큼 기존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을 답습하고 있다. 여성 캐릭터의 소개 글에는 하나같이 ‘상냥하다’라거나 ‘섬세하다’는 표현이 들어간다. 남성 캐릭터에 대해서도 ‘용감하다’라거나 ‘책임감이 강하다’, ‘우직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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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핑크퐁’과 ‘꼬마버스 타요’ 뿐일까. 과거 고정적 성 역할을 반복해서 보여주거나(‘엄마 까투리’, ‘와글와글 꼬꼬맘’), 주도적 역할을 하는 능동적 캐릭터를 주로 남성으로 그리는 콘텐트(‘뽀롱뽀롱 뽀로로’, ‘로보카 폴리’)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은 통상 18개월에서 3세 사이 성에 대해 인지하며 성 역할을 정립하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이 시기 접하는 콘텐트가 잘못된 성 편견을 반영하고 있다면 이는 치명적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편견이 고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적 속성과 여성적 속성(이 표현도 맞지 않지만)을 동시에 가질 경우 전통적 성 역할을 고수하는 이보다 환경의 다양한 요구에 대한 대처력이 높고 더욱 유연하다는 연구도 있다(Shaffer, 2005). 굳이 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콘텐트를 현실인 양 보여주는 건 그 자체로 구시대적이다.
“젊은 세대의 감수성은 성 평등뿐 아니라 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높아지고 있는데 콘텐트를 만드는 기성세대는 그렇지 못하다. 어린이 콘텐트를 만드는 이들은 어린이가 가져야 할 가치관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를 더욱 세심하고 공부하고 반영해야 한다.”(이나영 중앙대 사회학 교수) 그저 동요·만화의 가사 한 줄, 에피소드 한 장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한 장면이 쌓이고 쌓여 평생의 편견을 만들 수 있다. 아이들 콘텐트라고 가볍게 보면 안 되는 이유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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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진호의 이나불]은 누군가는 불편해할지 모르는 대중문화 속 논란거리를 생각해보는 기사입니다. 이나불은 ‘이거 나만 불편해?’의 준말입니다. 메일, 댓글, 중앙일보 ‘노진호’ 기자페이지로 의견 주시면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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