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사망 8시간뒤, 은행 달려간 모녀…5억 인출사기 전말
사건추적
[사건추적]
A씨(83)는 아들 김모씨가 사망한 당일인 2018년 8월 8일 딸과 함께 은행에 가 아들 명의 통장에서 5억여원을 인출했다. 김씨의 사망 시각은 8일 오전 1시 4분이고 A씨와 그의 딸(52)이 은행에서 돈을 찾은 건 이날 오전 9시 27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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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8시간 후…수억원 나갔다
14일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검찰은 A씨가 사망한 김씨의 도장과 서류를 위조해 금융당국을 속였다고 판단했다. A씨는 아들 김씨가 사망한 날 오전 경기도의 한 은행에 방문한다. 딸이 동행했다. 그는 예금거래신청서 서류에 아들과 딸의 계좌를 각각 작성하고 성명란에 아들인 김씨의 이름을 기재한다. 챙겨 온 아들의 도장으로 날인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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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이체 금액란에 기재한 액수는 4억4500만원이다. 이 돈은 김씨의 누나이기도 한 A씨의 딸 계좌로 입금됐다. 이날부터 약 3주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총 5억 4800만원이 김씨의 계좌에서 빠져나갔다. 4억 4500만원을 처음 이체한 후 1000만원, 5000만원, 2200만원 등 이체한 액수가 모두 달랐다.
공소장에 따르면 A씨 모녀는 경기도의 은행뿐 아니라 서울에 위치한 같은 은행의 지점에서도 김씨가 생존해 있는 것처럼 서류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계좌에 들어있던 돈을 이체하거나 인출했다. A씨가 정당한 인출 권한이 있는 것처럼 은행 직원을 속였다는 게 검찰에서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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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엔 “아들 생존한 것처럼 행세”
검찰은 A씨를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수원지법에서 진행 중인 A씨에 대한 재판은 국민참여 재판으로 넘어갔다. 19일 열리는 재판에서 국민 배심원이 검찰 측의 공소사실과 증인 신문을 보고 판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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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A씨의 딸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기소유예는 범죄 혐의가 충분하지만 피해와 반성 정도 등을 검사가 종합적으로 판단해 기소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김씨의 사망으로 인한 법정 상속인은 초등학생인 김씨의 딸이었다. 딸에게 돌아가야 할 상속 재산을 A씨 모녀가 가져간 셈이다.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가해 유·무죄를 판단하는 국민참여 재판엔 7명의 증인이 신청됐다. 앞서 열렸던 공판준비기일 내용 등에 따르면 김씨의 전 부인 B씨가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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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원 상속세는 딸에게로
증인 신문을 통해 B씨가 이 사건 사기 혐의로 어떤 피해를 봤는지 질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B씨는 사망한 김씨와 2018년 6월 이혼했다. 김씨 사망 2개월여 전이고, 김씨가 의식불명에 있던 시기이다. B씨는 의식불명 사실을 모른 채 김씨의 소송대리인과 법원조정을 거쳐 이혼했고, 그의 딸에 대한 양육비를 김씨가 부담하기로 했다. 자녀 양육비로 사용되거나 자녀에게 직접 상속됐어야 할 재산이 김씨 계좌에서 모두 빠져나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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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은 사망 시점을 기준으로 상속재산을 정하고 상속세를 책정한다. 김씨가 사망한 시점에서 계좌에 있다가 그날 인출되어버린 5억여원에도 상속세가 붙는다. 상속인인 김씨의 초등학생 딸이 이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김남훈 세무사는 “피상속인이 사망 당일 가지고 있던 재산을 기준으로 상속세가 부과된다”며 “김씨 사망 당시 계좌에 있던 5억여원이 다른 가족에게 이체됐더라도 세법상 상속인이 세금을 내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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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매도 의혹도 수사
한편 김씨가 2018년 6월부터 의식 불명 상태에 빠져 병원에 입원해있을 당시 A씨에 의해 아파트 매도가 이뤄졌다는 의혹은 혐의없음 처분이 내려졌다. 김씨의 아파트 매매계약서상 작성 일자가 같은 해 5월이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재판 결과가 재수사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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