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쓰리’ 패션 탐구…그들은 왜 90년대 스타일을 선택했을까
복고풍 스타일의 진수, ‘싹쓰리’ 패션 탐구
2020년 유행템으로 돌아온 90년대 패션
개성 강조, 자기 주장 강한 Z세대와 코드 맞아
요즘 주말마다 안방극장이 1990년대 패션으로 물들고 있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의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SSAK3)’ 덕분이다. 이효리·비·유재석의 ‘부캐(부 캐릭터)’ 린다G‧비룡‧유두래곤으로 구성된 90년대풍 혼성 댄스 그룹 싹쓰리는 오는 25일 정식 데뷔를 앞두고 커버 곡과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90년대 감성이 짙게 묻어나는 노래와 스타일이 볼거리인데, 특히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2020년대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패션이 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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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정조준, '뉴트로 패션'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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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색 아이 섀도로 눈물샘에 포인트를 준 린다G(이효리)의 90년대식 메이크업은 푸른색 야구 유니폼 , 망사 토시, 커다란 링 귀걸이와 세트처럼 잘 어올린다. 검정 베레모와 이보다 더 까만 선글라스, 무릎까지 벨트를 길게 내려트린 유두래곤(유재석)에게선 옛날 뮤직비디오 스타같은 친근함이 느껴진다. 앞섶을 모두 풀어헤쳐 복근을 과다하게 드러낸 올 화이트 ‘오버’ 스타일에 황금 룡 조각 지팡이까지 짚은 비룡(비) 역시 온몸으로 90년대를 표현한다. 지난 4일 방송된 싹쓰리의 커버 곡 ‘여름 안에서’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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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90년대 패션 콘셉트는 지난달 27일 ‘슈스스’ 한혜연 스타일리스트를 만나면서 구체화했다. 한혜연 스타일리스트는 “싹쓰리 스타일링을 위해 멤버별로 개성 있는 스타일을 연출했던 90년대 미국의 3인조 혼성 댄스 그룹 ‘디-라이트(Deee-Lite)’ 스타일을 참고했다”며 “홍일점 린다G는 가장 튀고 에너제틱하게, 유두래곤은 베레모 등으로 복고풍 느낌을 강하게, 체격이 좋고 춤을 많이 추는 비룡은 90년대 힙합 스타일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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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싹쓰리는 총 3컷의 앨범 화보 사진을 찍었다. 린다G는 깅엄 패턴의 집업 드레스에 벨트 백을 허리에 두르고 미래적인 분위기의 선글라스를 써 60년대 영국에서 유행했던 ‘모즈룩’을 90년대식으로 연출했다. 손으로 직접 짠 듯한 니트 스커트, 흰색 크롭티(배꼽티), 통굽 플랫폼 슈즈, 초록색 그래픽 패턴의 쫄바지와 반다나(홀치기 염색) 손수건 역시 톡톡 튀는 90년대 패션을 보여줬다. 비룡은 컬러 블록 재킷에 오버사이즈 셔츠, 버뮤다 팬츠, 벙거지로 힙합 꾸러기 룩을 연출했다. 유두래곤은 나팔바지와 패턴 블라우스, 라펠이 큰 재킷 등으로 펑키한 분위기를 살리는가 하면, 헤어밴드와 점프슈트로 90년대 스트리트 패션을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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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입은 90년대 스타일의 옷들이 실제로는 모두 2020년 봄여름을 겨냥해 출시된 신제품이라는 사실이다. 린다G의 깅엄 패턴 집업 드레스는 루이 비통, 초록색 그래픽 쫄바지는 몽클레르, 비룡의 컬러 블록 재킷은 프라다, 봄버 재킷은 디올 옴므 제품이다. 유두래곤의 복고풍 슈트는 구찌 2020 봄여름 컬렉션이다. 싹쓰리의 패션이 30년 전 스타일을 추구하면서도 전혀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 이유다.
최근 패션계의 가장 큰 트렌드는 ‘90년대로의 회귀’다. 럭셔리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시도는 아카이브를 뒤져 90년대 유행했던 아이템을 현대식으로 다듬어 새로운 디자인을 내는 작업이다. 이는 30‧40대에게는 친밀감을, 10‧20대에게는 새로움을 준다는 전략이다. 한혜연 스타일리스트는 “프린트나 패턴이 과거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면 실루엣은 요즘식으로 재해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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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90년대 패션인가
패션은 돌고 돈다지만 왜 하필 90년대로 돌아간 걸까. 트렌드 전문가들은 90년대 패션의 다양성에 주목했다. 이정민 ‘트렌드랩 506’ 대표는 “90년대엔 단순한 패션부터 전위적이고 과장된 패션, 모던한 패션과 포스트모던 패션 등이 모두 섞여 있었다”며 “지금 보면 ‘오버스러운’ 패션도 과감하게 시도하고 각자의 개성을 중시했던 패션의 황금기”라고 설명했다. 개인의 취향을 강조했던 시대적 분위기가 현대의 소비 주체이자 자기 주장이 강한 Z세대의 코드와 잘 맞아 떨어진다. Z세대가 낯선 90년대 패션 스타일에 호감을 갖는 현상이 자연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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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90년대 역시 경제 활성화로 ‘오렌지족’ ‘X세대’ 등 젊은 소비 주체를 지칭하는 유행어까지 등장했던 시기다. 한혜연 스타일리스는 “슈트부터 스트리트 패션까지 다양한 디자인 시도와 실험이 이루어졌던 시기”라며 “3040세대에겐 화려했고 풍요로웠던 그때 그 시절 패션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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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시차도 한 몫 했다. 10년 전 스타일은 그닥 새롭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년 전 스타일은 전혀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정민 대표는 현재 가장 왕성하게 활동 중인 디자이너들의 나이도 주목했다.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72년생)를 제외하곤, 루이 비통의 버질 아블로(80년생), 디올 옴므의 킴 존스(79년생), 보테가 베네타의 다니엘 리(86년생),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81년생) 등 80년대생 디자이너들이 패션계를 주도하고 있다. 이 대표는 “그들이 10대 때 보고 자랐던 패션이 바로 90년대 스타일”이라며 “기억과 경험으로 자연스레 90년대 패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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