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수영장 그림이 1000억…호크니가 사랑받는 이유 뭘까


[더,오래] 박보미의 아트 프리즘(2)

어렵게만 느껴지는 미술관 안팎의 작품. 어떻게 친해지면 좋을까?미술을 전공한 필자가 낯선 예술 이야기를 편안한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82)의 한국 첫 회고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작품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 1967년 작)도 만날 수 있다. 호크니는 일생에 걸쳐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만들었는데 유난히 이 그림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말 미술관은 인산인해인 터라 평일 오전 작정하고 서소문을 찾았다. 전시장 2층 한쪽 벽면을 통째로 차지한 작품 앞에 섰다.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이 진지하게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림에는 캘리포니아의 건조하고 강렬한 햇빛이 가득하다. 작은 간이 의자 아래 드리운 그림자 정도를 제외하면 바람도 그늘도 찾아볼 수 없는 뜨거운 정오다. 쨍한 햇살이 건물과 수영장을 향해 내리쬔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1937년 영국 요크셔주 브래드포드에서 출생했다. 소설 ‘폭풍의 언덕’의 배경이 요크셔다. 축축한 회색 구름 아래 풍경이 익숙했던 그가 만난 캘리포니아는 습기 먹은 영혼이 마침내 뽀송하게 마르는 것 같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강렬한 빛 아래 반사되는 미니멀한 건물들, 언제라도 뛰어들 수 있는 수영장이 있는 풍경은 그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거의 모든 아티스트들처럼 그는 평생 화가로서 세상을 해석하는 자신만의 표현방식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1950년대 후반 미국은 겉으로 보이는 개성이나 감정을 철저하게 없애는 미니멀리즘과 화가의 정신성은 표현하되 대상을 똑같이 묘사하는 것에 반대하는 추상표현주의가 대유행이었다. 그런저런 대세에 영향을 받으며 갈등하는 호크니의, 어찌 보면 격렬한 고민의 시절에 그려진 그림이 바로 이 작품이다.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니멀하긴 하지만 완전히 형태를 없앤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자세히 재현한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적당히 생략하고 적당히 자세히 그렸다. 마치 여행 엽서처럼 산뜻하며 명쾌하다. 온갖 질척한 기분과 지리멸렬 변화무쌍한 마음 따위쯤이야. 태양에 바짝 구워진 반듯한 건물과 정돈된 야자수들을 보면 산란했던 마음까지 정돈되는 기분이다.


그런데 누군가 방금 파란 수영장 물속으로 첨벙 뛰어든 모양이다. 큰 물보라가 생겼다. 누가 뛰어들었는지는 비밀이다. 옷을 입었는지 벗었는지 애인인지 그냥 친구인지 우린 알 도리가 없다. 좀 궁금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순간에 튄 물줄기와 물방울들의 모양일 것이다. 호크니는 그 첨벙하는 물보라만 상대적으로 자세히(?) 그렸으니까.


아마도 그는 강렬한 태양광선과 투명한 물이 만드는 매혹의 순간에 마음을 빼앗겼나 보다. 이 작품 외 수영장 시리즈는 각각 그림 속 물의 모습이 모두 다른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고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하기 위한 고민이 담긴 습작도 많다.


그는 그렇게 수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일렁일렁 움직이는 물웅덩이가 왜 이렇게 흥미로운 걸까. 어쩌면 그 당시에 엄청나게 가치가 올라가 있던 잭슨 폴록의 터프한 물감 흩뿌림을 연상했을 수도 있다. ‘글쎄….’ 그는 붓을 들고 생각한다. 뜨거운 정오 수영장의 물결의 규칙성. 그 고요함을 깨뜨리는 물의 파열. 높이 튀어 오르는 물줄기의 우연성.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규칙이 보이는 것 같다. 추상표현주의자들처럼 우연히 물방울이 튀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난 이 우연처럼 보이는 현상의 비밀을 분석할 수 있을 것 같아.’


호크니는 잭슨 폴록처럼 우연성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았다. 애당초 회화의 강점은 내가 내 의지대로 화면을 왜곡할 뿐 아니라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 그는 물의 동선을 추적하는 자기 시각의 움직임을 그렸다. 그리고 배경은 평면적으로, 물의 움직임은 입체적으로 자세히 묘사했다.



가볍게 찰랑이는 수면 뒤에 숨은 모종의 불안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제 다섯 살 된 아들은 나에게 묻곤 한다. 엄마, 유령이 나타나서 내 장난감을 가져가면 어떡하지? 응가를 하다가 변기 속에 내가 빠져 사라져버리면? 유령은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를 해칠 힘도 없단다, 변기 구멍은 작아서 빠질 염려가 없단다. 라고 설명해주면 이해하려 애쓰는 녀석의 표정이 진지하다. 점점 자라 세상을 알아가는 만큼 막연한 불안은 줄어들 것이다. 그만큼 흥미진진한 신비의 세계도 사라지겠지만.


그림자 하나 없이 밝은 호크니의 그림에서 즐거움과 가벼움만을 읽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나처럼 본질적인 불안에 민감한 자들은 어디에서든 그 암시를 발견하곤 한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막연한 불안처럼 도처에 숨어있다. 왜일까? 작품 속 풍경은 더없이 평화로운데. 명백한 청량함을 방해하는 것들은 눈 씻고 봐도 없는데도 말이다.


예를 들면 으레 수영장 표면에 떠 있는 하루살이나 이끼 낀 낙엽, 벗겨진 페인트 같은 것들. 심지어 가장 드라마틱한 요소인 거친 물 튀김조차 명료한 움직임으로 화면에 영원히 고정되었다. 모호한 것이 없으니 불안할 것도 없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이 불안함을 가중한다. 현실을 닮은 비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철저히 제한된 비현실을 반복해서 그리는 마음은 아마도 작가 스스로 결핍된 평화와 쉴 곳 없는 마음의 반어적인 표현일 거라고, 무리하게 짐작하는 것이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이 절제된 평화로움을 깨고 산산이 부서지는 물방울들은 더욱 차갑고 날카롭다. 그것은 영원하면서 순간적이고, 가볍고도 무거운, 위태로운 평화다.


박보미 아트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실시간
BEST
joongang
채널명
중앙일보
소개글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