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도, 외국인 예약도 줄취소…'계엄 직격탄'에 연말 멈췄다
내수 부진 상황에서 계엄 사태까지 더해져.. 자영업자 및 여행업 종사자들 위기, 국내 주식 가치 급락으로 개인 투자자들 울상.
9일 오후 2시쯤 서울 종로구 피맛골 근처 중식당. 한 층이 통째로 텅 비어있어 불을 꺼둔 모습. 전율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뒤숭숭한 정국이 이어지면서 연말 대목을 기다렸던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는 등 시민들의 일상도 흔들리고 있다. 특히 계엄 이후 매일 집회가 열리는 서울 광화문‧여의도 일대 식당들은 각종 송년 모임으로 붐비는 대신 줄줄이 예약 취소 문의를 받고 있다. 불안한 외국인들의 발길도 끊기며 관광업계에선 코로나19 이후 또다시 찬바람이 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점심 영업이 끝나가는 9일 오후 1시쯤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 낙지음식점 사장인 안모(50대‧여)씨는 식당 입구 계산대에 가만히 서서 탁상용 달력에 수정 테이프를 그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식사 중인 손님은 3명뿐이었다. 안씨는 “계엄 선포 이후 전화가 와서 5팀 있던 송년회 예약이 전부 취소됐다”며 “이쯤이면 평일에도 송년회를 위한 단체 손님이 하루 평균 5팀은 되는데 지금은 텅 비었다. 작년 비슷한 시기보다 60~70%가량 매출이 줄었다”고 했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낙지음식점 사장 안모(50대)씨가 사용하는 탁상용 달력 곳곳에 수정테이프로 예약 취소된 흔적이 남아 있다. 전율 기자 |
인근 디타워 내 레스토랑 점장인 조영근(30대)씨도 “탄핵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지난 토요일(7일) 예약 인원 283명 중 258명의 예약취소 또는 노쇼로 1000만원 가량 매출 손해를 봤다”며 “교통통제 등 시민 불편이 커지기 때문에 집회를 하면 할수록 매출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증권·금융회사 등이 밀집해 연말연시엔 직장인으로 붐비던 여의도 식당가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의도역 인근 한 호프집 매니저인 문성현(47)씨는 “계엄 사태가 터진 다음 날부터 손님이 거의 없다. 근처 투자회사 두 곳은 아침 5시부터 자정까지 대기하면서 일하고 있다고 하는데 술 마시러 올 사람이 있겠나”라며 “이번 주 토요일엔 안전 문제 때문에 아예 가게 운영을 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등에도 취소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광화문 근처 한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정모(20대‧남)씨는 “계엄 선포 이후 어제까지 총 7건의 예약이 취소됐다”며 “이맘때면 하루 2, 3건씩 외국인 관광객 예약이 있어야 하지만 크리스마스부터 8박을 예약했던 외국인도 예약을 취소하는 등 문의조차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회의사당역 3분 거리 한 호텔 직원 유모(35‧여)씨도 “여의도 근처 호텔은 4분기 매출이 연중 가장 높은데 3일 이후 매출이 꺾였다”며 “계엄 당일 밤 묵던 일부 외국인 관광객들이 뉴스를 보고 중도 퇴실을 신청했고 지난 7일엔 여의도에 차량 진입이 막히면서 30인 참석 기업 행사도 취소됐다”고 했다.
여의도와 광화문 인근 예식장에서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오는 28일 광화문 한 예식장에서 결혼식 예정인 김모(29)씨는 “우리는 한국·영국 국제 커플이라 일부러 역사적 의미가 깊은 광화문을 예식 장소로 선택했는데 해외 하객들이 한국이 안전한지 많이 불안해하신다”며 “예식장 위약금이 어마어마해 장소 변경도 못 하고 불편을 겪으실까 걱정”이라고 했다.
9일 오후 1시 50분쯤 비어있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정식집 내부. 사장 강모(59·여)씨는 ″계엄 선포 다음날인 수요일부터 예약이 줄줄이 취소됐다″고 말했다. |
정치적 불안 상황으로 환율이 요동치며 달러 수요자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내년 3월 결혼 예정인 예비 신랑 김묘섭(31)씨는 “여행사를 통해 몰디브 호텔 숙박비 등 신혼여행 비용을 달러로 결제해야 하는데 환율이 너무 많이 올라 예상 금액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 들 것 같다”고 걱정했다.
시민들은 치솟는 환율에 송금을 미루거나 수수료가 낮은 상품을 찾는 등 꿀팁을 공유했다. 해외여행 온라인 커뮤니티 등엔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환전 수수료가 낮은 해외 송금 상품을 찾는다” “탄핵 여부 나올 때까지 계속 오를 테니 실시간 환율을 보고 조금씩 환전해두는 걸 추천한다” 등 글이 올라왔다.
‘떡락’한 국내 주식 시장에서 개인 투자들, 이른바 ‘개미’들도 울상이다. 국내 주식에 수천만원을 투자 중인 직장인 김모(33)씨는 “계엄령 발포 이후 보유한 주식 가치가 15% 급락했다”고 토로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뜩이나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정상적인 일상을 사는 것에 죄책감을 갖고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등 계엄 이후 경제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 계엄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절차에 따라 하루빨리 상황을 수습해야 조금이나마 자영업자 등 시민들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람·김서원·오소영·전율 기자 lee.boram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