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의 레저터치] 팔순 노인과 마흔 살 소, 저승까지 이어진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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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레저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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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를 기억하시는지. 팔순 농부와 마흔 살 소의 소소한 일상을 지켜보다 눈시울 붉혔던 일 생각나시는지. 그 정겨웠던 장면이 경북 봉화의 산골 마을에 빛바랜 사진처럼 남아 있는 건 아시는지.
경북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 722번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워낭소리’의 현장이다. 벌써 12년 전 영화여서 무슨 흔적이 남았을까 싶지만, 나란히 놓인 농부 부부의 묘와 바로 아래 놓인 소 무덤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저린다. 마침 올해는 ‘워낭소리’가 개봉했던 2009년처럼 12년 만에 돌아온 소의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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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노인과 마흔 살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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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55) 감독의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2009년 1월 15일 개봉했다. 약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순수 제작비는 1억 원이 안 되는데, 극장 매출만 190억 원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영화 줄거리는 단순하다. 고(故) 최원균(1929∼2013)·이삼순(1938∼2019)씨 부부가 봉화 산골 마을에서 늙은 소와 농사짓고 사는 일과가 전부다. 소가 죽으면서 영화도 끝난다.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인듯싶은데, 들여다보면 세상에 둘도 없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소는 마흔 살이 넘었다. 소 평균 수명이 15년이라는데, 팔순 노인이 키우는 소는 평균 수명보다 세 배 넘게 살았다. 소 무덤 앞 비석에도 이렇게 적혀 있다. ‘누렁이(1967∼2008).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 최 노인이 30년을 부려온 소.’ 최 노인의 장남 영두(67)씨의 기억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1954년생이오. 내가 고등학교 때 소가 들어왔어요. 그때부터 아버지 쫓아 쇠꼴 베러 다녀서 똑똑히 기억해요. 정확한 나이는 몰라도 얼추 40년은 산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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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룩절룩 느릿느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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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 감독은 어떻게 이 심심산골에 마흔 살 소가 산다는 걸 알았을까. 이 감독은 2000년부터 소를 찾아다녔다. 축사에서 사육하는 소가 아니라 논밭 일구는 일소. 이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묵묵히 일하는 소를 통해 아버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혹시나 해서 전국 축협 홈페이지에 사연을 올렸더니 세 곳에서 연락이 왔다. 다른 소는 조건이 안 맞았고, 마지막에 찾은 소가 여기 최 노인의 소였다. 2004년 겨울 어느 날 오후. 밭일 마치고 ‘나란히’ 들어오는 최 노인과 소를 보고서 이 감독은 운명 같은 만남을 직감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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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란히’라는 부사는 중요하다. 최 노인이 소가 끄는 수레에 타지 않고 걸어서 오고 있었다는 뜻이어서다. 다리가 불편한 최 노인은 절룩절룩, 늙어서 기력이 달리는 소는 느릿느릿. 그렇게 둘은 사이좋게 걸어오고 있었다. ‘워낭소리’는 인간과 가축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의 생명과 또 하나의 생명에 관한 이야기다. 이를테면 이들 생명은 이런 관계다.
최 노인은 귀가 어두웠다. 그래도 워낭 소리만큼은 귀신같이 알아들었다. 그렇게 고기반찬을 좋아했는데, 소고기만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노인이 수레에서 잠들면 소는 혼자 집을 찾아왔고, 소는 죽는 날도 한가득 땔감을 끌고 왔다. 최 노인은 매일 쇠꼴을 베고 쇠죽을 써 소를 먹였다. 고추에 농약도 안 쳤다. 고추 따고 나면 소에게 먹여야 해서다. 하여 할머니는 맨날 투덜거렸다.
“아이고 답답해… 사료를 사서 멕이면 되는데 사료를 안 멕이고… 맨날 이래 짚 갖고 썰어가지고 죽 끓여 멕여야 되제… 아이고 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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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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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읍내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 최 노인의 옛집 어귀에 ‘워낭소리 공원’이 있다.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깜짝 놀란 봉화군청이 5억8700만원을 들여 지었다.
공원 한복판에 소와 수레에 탄 할아버지 조각상이 보인다. 영화에서 봤던 예의 그 모습이다. 비쩍 마른 소와 구부정한 할아버지. 영화에서 봤던 ‘고물 라디오’도 보인다. 할아버지가 웃는 얼굴이어서 좋다. 봉화군청 김규하 문화관광체육과장은 “영화 개봉 직후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몰려왔는데 지금은 거의 찾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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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2008년 겨울 초입 죽었다. 할아버지는 2013년 한여름에, 할머니는 2019년 초여름에 돌아갔다. 하나씩 헤어졌다가 할머니가 돌아가고서 다시 만났다. 워낭소리 공원에서 자동차로 2분 거리, 야트막한 산 아래 사람 두 명과 소 한 마리가 누워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묘가 나란히 있고, 바로 아래 소 무덤이 있다. 영락없는 가족묘다.
무덤 뒤로 이어진 밭이 농약 안 친 바로 그 고추밭이고, 무덤 아래 펼쳐진 논이 할아버지가 소작 부쳤던 그 논이고, 큰길에서 무덤까지 이어진 흙길이 소가 수레 끌고 터벅터벅 걸음 옮겼던 그 길이다. 저 논두렁 어디에서 세 식구가 막걸리에 참을 먹었었지…. 딸랑딸랑 워낭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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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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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살던 집은 예전 모습이 없다. 2019년 6월 할머니가 돌아가고서 한두 달 뒤 불이 나서 타 버렸다. 지금은 장남 영두씨가 옛 집터에 들인 컨테이너에서 혼자 살고 있다. 마당 여기저기에 놓인 조각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영두씨는 미술 교사를 퇴직한 화가다.
“영화가 나오고선 뜻밖의 고생도 많았어요. 아무 때나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나. 늙은 소를 죽기 전까지 부려 먹었다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고, 9남매나 되는데 늙은 부모 고생시킨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도 아버지 엄마가 영화에 나온 건 잘된 일이었어요. 그렇게 고생하다 가신 걸 세상이 알아봐 준 것도 고맙고, 자식 입장에선 언제든 당신들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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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Partner. 영화 ‘워낭소리’의 영어 제목이다. ‘워낭소리’라는 한국어 제목에선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읽히고, 영어 제목에선 소처럼 일만 하다 늙어버린 아버지가 떠오른다. 달력을 보니 다음 주가 벌써 설이다. 올 설에는 소처럼 늙은 아버지의 손을 슬쩍 잡아봐야겠다.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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