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 욕먹고, 왕조현 이민…추석 단골 홍콩스타들 지금은
저우룬파·청룽, 홍콩 시위에 극과극
'책받침 여신' 왕쭈센은 캐나다 이민
리롄제, 국적 문제로 활동에 빨간불
"서울의 추석 극장가를 한국·홍콩·미국이 3분할한다…미국 영화의 공백을 급격하게 메무고 들어온 홍콩영화는 특히 10대 관객들 사이에 주윤발, 왕조현 등 '홍콩 스타' 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종전 3만~4만 달러 수준이던 수입가격이 15만~20만 달러로 껑충 뛴 것은 흥행가의 홍콩영화 붐을 대변해주고 있다." (한겨레 1989년 9월 2일자)
저우룬파, 장궈룽 주연의 영화'종횡사해' [중앙포토] |
한류(韓流)가 휩쓸고 다니기 전 동아시아를 사로잡은 것은 홍콩 영화였다.
저우룬파(周潤發·주윤발)·왕쭈센(王祖賢·왕조현)·장궈룽(張國榮·장국영)·류더화(劉德華·유덕화)·린칭샤(林靑霞·임청하) 등 무협·느와르로 대표되는 80·90년대 홍콩 영화의 주인공들은 한국의 젊은층을 사로잡았고, 책받침, 브로마이드의 단골 모델을 넘어 식음료의 CF까지 진출했다. 그런 만큼 추석이나 설 명절 연휴 기간에 극장가나 TV 브라운관에서 이들을 보는 것이 당연시됐다.
"롯데칠성과 해태가 홍콩 배우를 CF모델로 내세워 한판 광고전을 벌였다. 롯데칠성은 영화 '영웅본색'으로 국내에 알려진 홍콩배우 주윤발을 내세워 밀키스를, 해태는 역시 홍콩 여배우인 왕조현을 내세워 크리미를 광고한 것. 특히 주윤발이 모델로 출연한 '싸랑해요! 밀키스' CF는 국민학교(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까지 '싸랑해요' 열풍을 일으킬 정도로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쓸어모았다." (동아일보 1989년 12월 9일자)
1989년 4월 당대 최고의 홍콩 배우였던 저우룬파가 출연한 밀키스 광고의 한 장면. [사진 롯데칠성음료] |
영화로운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기점으로 쇠락하기 시작한 홍콩 영화는 2000년대 한국 영화의 성장 속에 무대 뒤편으로 자연스레 밀려났다. 80·90년대 한국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스타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스크린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이들이지만 현재 상황은 중국 정부와의 관계, 홍콩 시위 견해 등으로 처지가 달라졌다.
◇親 시위대 vs 親 중국
▶저우룬파 (周潤發·66세, 대표작 '영웅본색'(1986))
"홍콩은 세계 두 번째의 영화 메카. 뛰어난 기획력과 걸출한 스타발굴로 80년대부터 동남아를 석권했고, 93년 이후 할리우드까지 진출했다…80년대 후반을 풍미한 것은 이른바 '홍콩 느와르'. 오우삼·주윤발 콤비의 '영웅본색'이 테이프를 끊었다." (조선일보 1996년 7월 22일)
'영웅본색'에서의 저우룬파 [사진 네이버 영화] |
'영웅본색'으로 잘 알려진 저우룬파(주윤발)는 리샤오룽(李小龍·이소룡), 청룽(成龍·성룡) 등의 무협영화 위주로 한국시장에 알려진 홍콩 영화에 '홍콩 느와르'라는 새 메뉴를 추가한 배우다. 선글래스를 쓰고 성냥개비를 씹는 모습은 10대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저우룬파는 홍콩 영화가 내리막길을 걷던 2000년대에도 '와호장룡'(2002), '황후화'(2006) 등으로 활동했지만, 전성기였던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작품 수는 확연히 줄었다.
2009년 2월 17일 저녁 홍콩의 세계적 영화 스타 주윤발이 영화 ` 드래곤볼 에볼루션 (Dragonball Evolution, 2009) ` 홍보 차 내한했다. 주윤발이 부인 손을 꼭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 나가고 있다. [중앙포토] |
2014년에는 '우산시위'로 명명된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시위대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며 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중국 언론이 이를 맹렬히 비난하며 퇴출을 주장하자 저우룬파는 영화 '도성풍운2' 기자회견에서 "그럼 돈을 조금 덜 벌면 되겠다"고 웃으며 받아쳐 화제가 됐다. 중국 정부는 이 영화의 상영을 불허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중국 당국의 견제로 활동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도성풍운 2'(2015) 이후에도 '코드네임: 콜드 워'(2016), '도성풍운 3'(2016), '무쌍'(2018) 등을 찍으며, 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MBC 예능 '실화탐험대'의 저우룬파 [사진 방송화면 캡처] |
2018년 MBC 예능 '실화탐험대'의 인터뷰에 응했던 그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첩혈쌍웅'을 꼽았으며 "8100억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청룽(成龍·67세·대표작 '폴리스 스토리')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홍콩 스타였으며, 최근 정치적 행보로 많은 구설에 오르고 있는 배우다.
2014년 '폴리스 스토리 2014'의 내한 레드카펫 행사에서 자신을 "반(半)한국인"이라고 소개했을 정도로 대표적 친한(親韓)파로 꼽힌다. 통영시 명예시민 겸 홍보대사다.
중국영화 '취권'에서의 청룽 [중앙포토] |
1970년대부터 영화 촬영차 한국을 드나들었고 MBC 예능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서 한국 여성과의 연애를 소개하는 등 많은 한국 관련 에피소드를 갖고 있다. 1990년대 명절 연휴 때는 'TV에서 청룽 영화 한 편은 반드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명절 손님'으로 꼽혔다.
하지만 2014년 홍콩의 '우산시위'에서 시위대에 자제를 촉구하는 한편 정부 측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며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2019년 8월엔 홍콩 시위와 관련한 중국중앙방송(CCTV) 인터뷰에서 “나는 국기(오성홍기)의 수호자다. 한 명의 홍콩인이자 중국인으로서 기본적인 애국심을 표하고 싶다”고 말했으며, 2020년 5월엔 홍콩 국가보안법 지지 선언에 동참해 비난을 받았다.
지난해 2월 청룽(가운데)과 탄융린 등의 홍콩 스타들이 크리스 탕(오른쪽에서 두번째) 홍콩 보안장관과 회식을 가진 모습. 이날 이들은 우정의 노래를 부르면서 끈끈한 유대감을 과시했다. [SCMP=뉴스1] |
지난해 9월 2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건국 70주년 기념 대형 문예공연 공식 기념 사진. 무대 정중앙에 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왼쪽에 마오쩌둥 전문 1급배우 탕궈창(唐國强)이 오른쪽에 홍콩 배우 청룽(成龍)이 포즈를 취했다. [신화통신] |
또 지난 7월에는 베이징에서 열린 좌담회에서는 “공산당이 약속한 것은 100년까지 갈 것도 없이 수십 년 만에 반드시 실현된다. 공산당의 위대함이 보인다. 나 또한 공산당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가 전했다.
◇ '느와르'와 '무협'을 대표한 스타
▶류더화 (劉德華·60세·대표작 '지존무상')
"1991년에는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내한 콘서트를 가진 적도 있는 유덕화는 지난해 연말 KBS '지구촌 영상음악'에서 팬들의 엽서집계 결과 '아시아 최고 인기가수'로 선정될 정도로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조선일보 1993년 5월 22일자)
1990년 방한 당시 롯데월드에서 팬 사인회를 가진 류더화 [중앙포토] |
'지존무상'·'천장지구' 등을 통해 저우룬파에 이어 '홍콩 느와르'를 알린 대표적 스타였던 류더화(유덕화)는 가수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참고로 배우 이영애는 류더화가 CM송을 직접 부른 1990년 '투유' 초콜릿 CF에서 류더화의 상대역으로 데뷔했다.
그는 2000년대 이후에도 50여편이 넘는 작품을 찍으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특히 2002년 개봉한 '무간도'는 '홍콩 느와르의 부활'이라는 호평을 얻으며 제2의 전성기를 열기도 했다. 다만 '무간도' 이후로 한국 관객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한때 저우룬파 등과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해 중국 활동이 어려워졌다고 알려졌지만, 중국에서 1억5000만달러를 들여 만든 '그레이트 월'(2016)에도 출연하며 이런 소문을 일축했다.
홍콩영화 '지존무상'에서의 류더화 [중앙포토] |
광고모델 출신 주리첸과 결혼해 딸 류샹후이를 두고 있다. 이 사실은 2009년 대만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올해도 영화 '당인가탐안 3'에 출연했다.
▶리롄제(李連杰·58세·대표작 '황비홍')
"'황비홍', '동방불패' 등 이연걸 주연의 홍콩 영화들이 잇따라 빅히트를 기록하자 국내 수입업자들간에는 '이연걸 영화잡기 붐'이 일고 있는 실정…"(동아일보 1992년 4월 11일자)
리롄제(이연걸)는 앞선 배우들에 비해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늦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데뷔는 1979년작 '소림사'지만,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황비홍'(1991)이다. 그는 이를 통해 한동안 '홍콩 느와르'에 밀려있던 무협 영화의 붐을 다시 이끌었다. 황비홍 시리즈는 12편이 제작되고 모두 한국에 수입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리롄제가 출연한 '영웅' [사진 네이버 영화] |
리롄제는 2000년대 이후 할리우드로 보폭을 넓혀 '포비든 킹덤'·'미이라 3: 황제의 무덤'(2008), '익스펜더블 2'(2012) 등에 출연했다. 하지만 2013년 갑상선 기능 항진증 진단을 받아 치료에 전념하면서 이후로는 작품 활동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해 9월 국내 개봉한 '뮬란'에서 황제 역으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등장했다.
다른 홍콩 영화 스타들이 대개 홍콩이나 대만 출신인데 반해 리롄제는 중국 랴오닝성 출신이며, 미국(2003)→싱가포르(2009)로 국적을 바꿨다. 이때문에 최근 국수주의 바람이 거센 중국에서 도마 위에 올라있다. 중국 국가광전총국은 9월 외국인 연예인에 대한 ‘국적 제한령’을 추진하면서 당분간 중국에서 활동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배우 출신 부인 리지와 1999년 결혼했으며, 전처에서 얻은 두 딸을 포함 4녀를 두고 있다.
2017년 근황 사진이 공개된 리롄제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
최근 공개된 홍콩배우 리롄제 [사진 웨이보 캡처] |
▶80년대 여신 vs 90년대 카리스마
◇왕쭈센(王祖賢·54세·대표작 '천녀유혼')
"아스라한 미모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홍콩 여배우 왕조현양이 자신의 출연영화 '천녀유혼 2'의 한국 상영에 때맞춰 19일 내한했다. 음료 광고 출연 이후 두번째 한국에 온 그녀는 20, 21일 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사인회를 갖고 MBC TV에 출연할 예정."(경향신문 1990년 7월 2일자)
섭소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천녀유혼’ [중앙포토] |
'일장춘몽' 같은 귀신과 선비의 사랑 이야기 '천녀유혼'으로 심금을 울린 왕쭈센(왕조현)은 80년대 후반 국내에서 브룩 쉴즈·피비 케이츠·소피 마르소 등과 더불어 '책받침 여신'으로 통했던 여배우. 하지만 3편까지 제작된 천녀유혼' 외에는 딱히 내놓을만한 히트작을 내지 못했다. '동방불패 2' 등에 출연한 1993년 이후로는 3편의 영화만 찍었을 정도로 활동이 급감했으며, 2004년 마지막 영화 '미려상해'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미려상해'를 끝으로 캐나다로 이민해 밴쿠버에서 살고 있으며, 미혼이다.
간혹 파파라치의 사진이나 SNS를 통해 온라인에 최근 모습이 비쳐지고는있지만 연예계와는 선을 그은 모양새다. 대만 출신이며 양안 관계나 홍콩 문제 등에 대해서는 일절 나서지 않고 있다.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왕쭈렌 셀카 [페이스북 캡쳐] |
◇린칭샤 (67세·林靑霞·대표작 '동방불패')
"국내 영화팬들 사이에 홍콩 여배우 '임청하 붐'이 일고 있다…주윤발-유덕화-왕조현 등 많은 홍콩 스타가 국내에서 인기를 누려왔으나, 임청하는 좀 특이하다. 그는 젊고 아리따운 여배우가 아니라 경력 20년에 출연작이 80여편이나 되는 올해 나이 39세의 중년 여인이다… 대만 출신인 그의 매력은 찬 바람이 감도는 듯 입가에 머금은 고혹적인 미소에 온 몸에서 풍기는 기품있는 분위기다."(조선일보 1993년 2월 20일자)
린칭샤 주연의 홍콩영화 '동성서취' [중앙포토] |
1980년대가 왕쭈센이라면 1990년대는 린칭샤(임청하)의 시대였다.
'동방불패'(1992)를 통해 중성적 카리스마로 이름을 떨친 린칭샤는 리롄제와 함께 저우룬파·왕쭈센 등을 대신해 90년대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이어갔다.
대만에서 1973년 데뷔해 이미 스타 배우였던 그녀는 '동방불패'가 개봉될 당시 38세였다. 대만에서는 청순한 이미지로 로맨스물에서 이름을 날렸지만 홍콩으로 무대를 옮긴 뒤엔 '백발마녀전', '녹정기' 등 무협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에서 차가운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인기가 한창이던 1994년 홍콩 '뉴웨이브' 시대의 스타였던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마지막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했다. 이후 예능 프로그램 등에 얼굴을 비치기는 했으나 연기 활동 재개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1994년 6월 홍콩 재벌 싱리위안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으며, 결혼 24년 만인 2018년 이혼했다. 둘 사이에는 딸 2명이 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