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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로는 부티가 안나요" 찐부자들이 탐내는 '진짜 럭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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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 들어가기 위해 고객들이 줄 서 있는 모습. 뉴시스

“혹시 노숙런(매장 앞 밤샘 대기) 했니?”


직장인 박모(32)씨는 결혼을 앞두고 예물로 샤넬백을 장만했는데 막상 주변에서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말로만 듣던 오픈런(매장문이 열리자마자 쇼핑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나 노숙런을 했냐며 놀림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박씨는 “1주일 휴가 기간에 백화점에 아침마다 출근 도장을 찍고 대기표를 받아 겨우 가방 하나를 구매했다”며 “그런데 마치 내가 매장 앞에서 텐트라도 치고 노숙을 한 것처럼 회사에 소문이 나 속상하다”고 말했다.

“백화점 좀비런·노숙런 보면 불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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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의 가격 인상 소식에 롯데백화점 본점에 모인 고객들의 모습. 뉴스1

한국에서 명품 산업이 성숙기에 진입하고 명품 재화가 대중화되면서 샤넬백 착용만으로 재력을 과시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시절은 지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히려 백화점 오픈과 동시에 뛰어가는 ‘좀비런’, 길바닥에 주저앉아 매장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노숙런’의 모습이 각인돼 해당 브랜드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의견도 있다.


백화점 VIP(우수고객)인 강모(42)씨는 “명품이란 게 결국 남들보다 월등한 재력 또는 지위를 과시하려고 구매하는 건데 가방 하나 얻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어딜 봐서 상류층처럼 보이겠냐”며 “소위 ‘되팔이 업자(리셀러)’, 멋모르고 달려드는 소비자 때문에 매장 방문이 꺼려지고 해당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불쾌해졌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명품의 가치는 누구나 가질 수 없는 희소성에 기인한다”며 “부와 지위는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길에서 많이 보이는 브랜드일수록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샤넬백 2년 만에 60% 가격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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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브랜드 샤넬의 클래식 플랩백은 지난 2년간 가격이 60% 뛰었다. [샤넬 홈페이지 캡처]

이러한 이유를 앞세워 샤넬은 끊임없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 진입 장벽을 높여 희소성을 키우기 위해서다.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는 지난해 12월 샤넬이 2019년 말부터 잦은 가격 인상으로 주요 제품의 가격을 2년 만에 60% 올렸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샤넬 측은 가격 인상에 대해 환율·생산비 변동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에르메스를 따라잡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샤넬의 대표 제품인 ‘클래식 플립백’의 경우 지난해 말 1000만원을 넘어서며 에르메스의 ‘버킨백’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판매되는 샤넬 클래식 플립백 중간 사이즈는 지난해 12월 기준 7800유로(약 1050만원)로, 에르메스 ‘버킨백30(토고가죽)’ 보다 100유로 저렴한 수준이다.


흔히 ‘명품 3대장’으로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을 묶어 ‘에루샤’라고 부르는데, 샤넬은 루이비통보단 에르메스와 결을 같이하겠다는 전략이다. 에르메스와 까르띠에·파텍필립·쇼메·위블로·오데마피게·브레게·바쉐론 콘스탄틴·반 클리프 앤 아펠·해리 윈스턴 등은 소위 ‘명품 위 명품’으로 여겨지는 위버 럭셔리(Uber luxury) 브랜드다. 영어로 최고를 뜻하는 위버(Uber)와 럭셔리의 합성어로, 제품 평균 가격이 일반 명품 가격의 수십 배에 달한다. 미국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 ‘리백’의 찰스 코라 최고경영자(CEO)는 “샤넬은 루이비통이나 구찌보다 에르메스와 같은 부류가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에르메스, 5000만원 써야 대기명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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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의 '버킨백'은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가방으로 꼽힌다. [에르메스 홈페이지 캡처]

그렇다면 높은 가격 외에 에르메스가 루이비통·구찌와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일까. 바로 높은 희소성이다.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진입 장벽이 높다. 에르메스의 버킨백 또는 켈리백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매장 내 구두·팔찌·그릇 등 다른 제품을 최소 5000만원 이상은 구매한 이력이 있어야 한다. 이 실적 조건을 채운다 한들 버킨백 구매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릴 뿐, 몇 년을 기다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에르메스와 같은 최상위 브랜드는 이미 수천만 원을 쓴 고객도 버킨백을 구경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진입 장벽이 높다”며 “매장 입장에 성공해도 주요 상품을 살 수 없으니 되팔이 업자가 꼬이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샤넬이 이러한 에르메스 희소성 전략을 따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 파리에서 근무하는 샤넬 매장 직원에 따르면 고객당 가방 한 개만 구매할 수 있고, 또 다른 제품을 사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달의 텀을 둬야 한다. 미국 뉴욕의 경우 특정 디자인의 가방에만 구매 제한이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10월부터 일부 제품의 연간 구매 한도를 1인당 한 개로 제한했다. 홍콩과 중국 상하이 매장에는 이러한 구매 제한이 아직 없다.


샤넬이 제품의 질적 향상 없이 가격만 올릴 경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블룸버그는 “과거 리치몬트그룹의 시계 브랜드 IWC는 시계 가격을 크게 올리면서 진입장벽이 높아지자 소비자가 브랜드를 기피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저렴한 버전의 스틸 시계를 따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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