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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게임에 빠진 패션계…“이상한 옷이 단조로움을 깨운다”

6일(현지시각) 프랑스 명품 패션 브랜드 발렌시아가가 2021 가을·겨울 컬렉션을 비디오 게임으로 발표했다. 패션쇼가 아닌, 직접 제작한 비디오 게임으로 총 50벌의 의상을 선보인 것. 이 비디오 게임의 제목은 ‘애프터 월드: 더 에이지 오브 투머로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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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가는 '2021 가을겨울 컬렉션'을 비디오 게임 형식으로 발표했다. 사진 발렌시아가 홈페이지

게임의 형식 자체는 단조롭다. 한 구역당 정해진 시간 20분 동안 화살표를 따라 길을 걷기만 하면 된다. 총 1~5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구역마다 배경이 달라 마치 사이버 세계를 산책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그 길에는 발렌시아가의 2021 가을·겨울 컬렉션 의상을 입은 아바타들이 곳곳에 서 있다. 배경은 2031년. 매장에서 시작된 모험은 버스와 드론이 날아다니는 길거리, 어두운 콘크리트 도시, 숲을 지나 산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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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쾌감은 상당하다. 발렌시아가의 사이버 세계에 초대된 이들은 간단한 조작만으로 구석구석을 감상할 수 있다. 각 구역의 배경은 하나하나 공들인 티가 역력하고, 발렌시아가 의상을 입은 캐릭터들 역시 정교한 편이다. 전체 거리를 모두 탐색하는 데는 20~30분 정도가 걸린다. 길거리를 걷다가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은 캐릭터를 발견하면 근처까지 가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발표된 의상들은 2031년 길거리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미래 느낌의 옷들이다. 거대한 망토 코트, 과장된 어깨의 우주복, 찢어진 청바지, 갑옷을 연상시키는 롱부츠 등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뎀나 바잘리아 특유의 전위적 패션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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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1년 길거리에서 볼법한 전위적인 패션을 선보인 발렌시아가 2021 가을겨울 컬렉션. 사진 발렌시아가 홈페이지

게임은 주인공이 황량한 산에서 검을 찾아 바위에 꽂는 것으로 끝난다. 발렌시아가는 보도자료를 통해 “극복해야 할 도전, 영웅의 여정”이라고 게임의 서사를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팬데믹 시대,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만으로 영웅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뎀나 바잘리아는 지난 9월 WWD와의 인터뷰에서 “3월부터 우리가 살아가는 종말론적인 삶에서 패션이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물었다”며 “그러다 일상의 단조로움을 잊기 위해 집에서 괴상하게 옷을 입어보기 시작했고 패션도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패션쇼는 수십 년 간 패션업계의 관행으로 이뤄졌지만 앞으론 더 많은 청중이 볼 수 있도록 다른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비디오 게임 형식의 쇼가 탄생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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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어깨의 오버사이즈 의상이 주를 이룬다. 사진 발렌시아가 홈페이지

새로운 시즌의 의상을 입은 모델이 런웨이를 걸어 나오는 형식의 전통적 패션쇼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 많은 사람이 한 데 모이기 힘든 코로나 19 시대를 맞아 세계적 패션 하우스의 디자이너들은 보다 혁신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옷을 발표하길 원하고 있다. 지난 여름 ‘구찌’는 광고 제작 현장을 실시간 생중계로 보여주면서 새로운 시즌의 의상을 선보였고, ‘조나단 앤더슨’은 박스 속 종이 인형에 자신의 새 의상을 입히는 것으로 패션쇼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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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규칙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비디오 게임 역시 패션계가 선호하는 컬렉션 공개 방식이 될 전망이다. 이미 ‘버버리’는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에서 가장 최근 쇼를 방영했고, ‘루이 비통’은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위해 커스텀 스킨과 트로피 케이스를 디자인했다. 구찌도 글로벌 모바일 게임 ‘테니스 클래시’에 게임 캐릭터의 옷과 신발을 디자인해 선보인 적이 있다.


비디오 게임은 디자이너의 세계관을 보다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꽤 효과적이다. 패션쇼 무대를 제작하는 것보다 더 극적인 몰입 환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길거리를 거니는 방식의 게임이라도 관객으로 하여금 머무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되어 발렌시아가가 만든 세계에 직접 뛰어드는 강렬한 체험을 하게 만든다. 뉴욕타임스는 “게임은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아주 명확한 방식으로 보여준다”며 “(발렌시아가는) 실제 옷을 가상의 거리에 올려놓음으로써 옷이 얼마나 멋질지 직접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명품을 소비하는 연령층이 점차 어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게임을 즐기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공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앞으로 패션계에서 비디오 게임 형식의 컬렉션 공개가 뉴노멀이 될지 눈여겨 볼만하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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