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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도 식후경… 경주는 한우·참가자미·버섯 천국

참가자미 최대 어장 경주 바다

전국 3위 안에 드는 한우 고장


젊음의 열기 뜨거운 황리단길

경주 사람의 사랑방 ‘도솔식당’

스님이 즐기는 탕수육 ‘탕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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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경주의 역사는 BC 57년 시작됐다. 진한의 도시국가 중 하나인 사로국의 수도가 서라벌, 즉 경주였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사로국 사람이다. 그러니까 경주는 올해로 2075년 묵은 도시인 셈이다. 천년고도라는 수식어가 경주 앞에서는 차라리 초라하다.

하여 경주에 들면 사람이 잘 안 보인다. 영겁의 세월을 거친 도시가 주인공 노릇을 하고 있어서다. 경주에 들면 어제의 경주, 다시 말해 신라가 먼저 눈에 띈다.


오늘의 경주를 보고 왔다. 경주의 산과 바다, 강과 들에서 거둔 산물로 오늘을 사는 사람을 만나고 왔다. 다른 도시에선 깊이 들어가야 세월의 흔적을 마주하지만, 경주에선 깊이 들어갈수록 오늘을 조우한다. 경주에도 사람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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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도 바다가 있다. 포항과 울산 사이 바다가 경주 바다다. 그러나 우리는 경주 바다를 잊고 산다. 문무대왕릉의 전설을 아는데도, 경주와 바다는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경주시가 뒤늦게 경주 바다 100리 길을 알리는 참이다. 경주시의 해안선 길이가 44.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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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있으니 항구도 있다. 감포항. 신라 4대 탈해왕의 전설이 내려오는 유서 깊은 갯마을이다. 일제 강점기 큰 배 드나드는 항구로 개발됐고, 지금도 새벽마다 동해 남쪽 바다 최대의 잡어 어판장이 열린다. 경주시 수협 이길형(59) 판매과장은 “감포 앞바다에서 한류와 난류가 만나 어종이 풍부한 천연 어장이 형성된다”며 “포항·대구·울산 등 외지 상인도 경매에 참가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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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미. 다른 포구에서는 잡어로 취급되지만, 감포 앞바다에서는 대표 어종이다. 경주시가 이태 전 시어(市魚)로 지정했을 정도로 경주 바다에서 흔하다. 30년 넘게 참가자미를 잡았다는 ‘연등호’ 박홍배(57) 선장을 감포항에서 만났다.

“참가자미는 수심 150m에서 살아. 사는 바다가 정해져 있어. 감포 앞바다에 몰려 있지. 물론 나만 아는 포인트도 있고. 여름에 알 낳고 나면 살이 딴딴해져요. 가을부터 맛있지.”


참가자미는 도다리랑 비슷하게 생겼다. 대신 주둥이가 쥐처럼 뾰족하다. 도다리는 50㎝ 넘는 녀석도 숱하지만, 참가자미는 30㎝ 정도밖에 안 큰다. 1993년 문을 연 ‘명성회센타’에서 참가자미회(3인분 6만원)를 먹었다. 졸깃한 살이 달았다. 매운탕에서도 단맛이 우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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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 경주에서 가장 뜨거운 골목이 있다. 이름하여 황리단길. 경주 황남동과 이태원 경리단길을 합한 신조어다. 이름난 청춘 거리를 본뜬 만큼 최신 취향을 겨냥한 카페와 식당이 늘어서 있다.

누가 그리고 언제 맨 처음 황리단길이라고 이름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2년쯤 전만 해도 한옥 게스트하우스 ‘황남관’에서 내남 네거리까지 약 1.5㎞ 거리의 왕복 2차선 도로를 황리단길이라 일렀다는데, 도로 양옆 골목으로 상점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경계가 모호해졌다. 점집 골목으로 알려졌던 3∼4년 전의 낡은 거리를 기억한다면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2∼3년 뒤에는 또 어떻게 바뀔지 상상도 안 된다. 금·토요일 저녁에는 자동차 운행이 어려울 정도로 전국에서 모여든 청춘이 도로를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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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리단길의 여러 핫 플레이스 중에서 카페 ‘아덴’을 들렀다. 인스타그램에서 30만 개가 넘는 게시물이 검색되는 인증샷 명소다. 한옥 3채를 헐어 기와 얹은 카페를 들였다는 윤홍규(37) 대표는 “주말 하루 5000명이 방문한다”며 “긴 줄을 못 기다리고 돌아가는 손님도 많다”고 말했다. 커피에 생크림을 얹은 ‘투모로우(6000원)’가 인기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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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마을. 황리단길 구석, 그러니까 대릉원 담장을 마주 보는 황남동 변두리의 소담한 한식당이다. SNS에서 황리단길 맛집으로 종종 등장하지만, 도솔마을은 여느 맛집과 차원이 다르다. 사연이 곡진하다. 사연은 ‘마지막 신라인’으로 불렸던 경주의 큰 어른 고청(古靑) 윤경렬(1916∼99) 선생이 돌아갔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청의 빈소에서 궂은일을 마다치 않던 여인 강시금(66)씨가 있었다. 그녀를 지켜본 김윤근(75) 현 경주문화원장이 밥장사를 권했다. 고청을 따르던 인사들이 돈도 모아 줬다. 고(故) 조필제 화가, 이임수 전 동국대 교수, 법명 스님, 김준철 목사, 정성혜 신부, 이태희 화가 등 종교와 분야를 뛰어넘은 후원 모임이 꾸려졌다. 식당 이름 ‘도솔마을’도, 그녀의 예명 ‘무심화(無心花)’도 후원 인사들이 지어줬다. 이후로 도솔마을은 경주의 사랑방이 되었다.


도솔마을에는 수많은 그림과 글씨가 걸려 있다. 모두 단골이 남긴 것이다. 서너 해 전까지는 별난 이름의 술이 있었다. 이를테면 고청주. 생전의 고청이 고량주를 좋아해 붙인 이름이다. 법명주는 사이다였다. 법명 스님이 즐겨 마시던 음료다. 지금은 관광객 손님이 대부분이라 메뉴판에서 옛날 이름을 지웠다. 도솔마을은 매달 마지막 수요일의 매출 모두를 기부한다. 월 300만원꼴이라고 한다. 10월 마지막 날에는 음악회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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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에는 반찬이 모두 18개 오른다(1인 1만원). 여기에 불고기·파전(각 1만5000원) 등을 추가 주문할 수 있다. 집밥처럼 맛이 편안하다. 월·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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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평창 같은 명성 자자한 한우 고장에선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지 않는다. 반면 경주에서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경주는 93년 한우 사육두수 전국 1위를 차지했던, 지금도 전국 3위 안에 드는 한우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경주의 한우 사육 규모는 현재 6만4533두에 이른다. 경주시가 육성하는 ‘1+ 등급’ 이상의 고급 브랜드 ‘천년한우’는 전체 두수의 60%에 이른다. 양도 많고 질도 좋다. 그러나 경주에서 한우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우 단지도 경주시 곳곳에 조성돼 있다. 천북면·산내면·외동읍 등 경주시 외곽에 ‘불고기단지’라는 이름으로 한우 단지가 들어서 있다. 단지 이름에서도 오해가 빚어진다. 숯불구이 집인데, 불고기가 먼저 떠올라서다.


천북면 화산1리 이장이자 93년 한우단지가 조성될 때부터 자리를 지킨 ‘화산숯불’의 문성천(52) 대표는 “한때 27곳이었던 단지 내 고깃집이 지금은 10곳 정도로 줄었다”고 털어놨다. 단지 분위기는 휑해도 고기 맛은 빼어나다. ‘1+ 등급’ 이상 암소 한우 갈비만 쓴다는 갈빗살구이(100g 1만6000원)가 주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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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둘러싼 마지막 오해를 풀 차례다. 경주는 버섯의 고장이다. 남산이 경주 바깥에서는 지붕 없는 박물관일지 몰라도, 경주에서는 대대로 내려오는 송이밭이었다. 지금은 남산 송이가 드물다지만, 버섯 고장의 전통만큼은 아직도 유효하다.

고속철도 신경주역이 있는 건천읍이 경주시에서도 버섯 산지로 유명하다. 버섯 농가 대부분이 모여 있다. 여기에서 경북 생산량의 90%, 전국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는 양송이가 재배된다. 현재 경주의 대표 버섯은 양송이·새송이·느타리버섯 등이다.


건천의 버섯 농가 5곳이 결성한 광명협동조합의 강인숙(53) 이사장은 “조합에서 버섯으로 장아찌·잼·차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광명협동조합은 송이 맛이 나는 표고 종류 ‘백송고’를 주로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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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을 재료로 한 음식으로 ‘탕수이’가 있다. 목이버섯 ‘이(?)’ 자를 써 탕수육이 아니라 탕수이다. 무열왕릉 어귀의 사찰음식 전문점 ‘연화 바루’가 잘한다(1만5000원). 절집에서 4년 머물며 사찰음식을 배운 고향숙(58) 대표가 여동생과 같이 “맛없는 밥상”을 차린다. 주문이 들어와야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므로 일찌감치 예약해야 한다.

경주=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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