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참전군인 손녀가 한국군 양민 학살 다큐로 찍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 손녀 이길보라 감독
한국군 양민학살 다큐 '기억의 전쟁'
개개인 전쟁 상흔 비추며 국가적 질문
부산영화제 "대담, 우아한 접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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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의 리뷰가 인상적이었어요. 자기한테 베트남의 기억은 그 당시 월남전 참전용사였던 아버지가 가져온 달콤쌉싸래한 초콜릿, 미제용품, 산요 라디오 같은 것이었는데 그걸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그때 베트남 현지에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 영화를 통해 마주하게 됐다고 했죠.”
2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을 만든 이길보라(30) 감독의 말이다. 그는 1971년 봄 베트남전에 장교로 파병된 참전용사의 손녀다. 그런 그가 “베트남전 당시 약 80개 마을에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카메라를 들었다.
“1955년 베트남전이 발발하고 1964년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으로 참전했다. 1973년까지 32만5000여명의 한국군이 베트남에 다녀갔다. 한국은 베트남 전쟁특수로 한국전쟁 이후 급속한 경제도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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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막으로 시작된 영화는 이길 감독이 베트남전 당시 퐁니‧퐁넛 마을 학살사건의 생존자 응우옌 티 탄 아주머니를 만난 2015년부터, 2018년 한국에서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모의재판이 열리기까지 3년여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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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한 베트남의 기억
“어릴 적 할아버지가 월남전에 참전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집안의 훈장과 표창장들이 제겐 베트남의 전부였죠. 할아버지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암투병하시다 제가 20대 초반에 돌아가셨어요. 그러고서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란,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던 베트남전과는 상반된 기억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난생처음 이게 뭐지, 알아봐야겠다,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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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는 베트남에 가서 민간인 학살에 의해 가족을 잃은 생존자들을 만났다. “참전국에서 온 참전군인의 손녀라는 죄책감”에 짓눌렸던 그에게 탄 아주머니는 따뜻한 밥을 지어줬다. “밥 한 숟갈을 먹고 나니 마음에 엄청난 큰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고 이길 감독은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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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에 가족 몰살…제사 지내려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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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이 있던 1968년 1월 13일 마을 전체는 무덤이 됐다. 그날, 겨우 8살이던 탄 아주머니는 총을 맞아 창자가 튀어나온 배를 안고, 이미 죽은 엄마를 찾아 헤맸다. 간신히 목숨 건진 아이 중엔 응우옌 럽 아저씨도 있었다. 당시 가족을 잃은 그는 한국군 주둔지에 남아있던 지뢰에 두 눈까지 잃었다. 영화는 이런 개개인의 내밀한 상처로 출발해 국가의 책임을 묻는 질문으로 나아간다.
2년 전 영화를 처음 공개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정치적 문제를 다룬 대담함과 동시에 우아한 접근법을 보여줬다”는 심사평과 함께 비프메세나상 심사위원 특별언급의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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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부모, 소외된 목소리 듣게해
청각장애 부모에게서 장애 없이 태어난 이길 감독은 말문이 트이면서부터 세상과 가족 사이의 통역 역할을 했다. 그런 가족사를 다큐 데뷔작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5)과 동명 책으로 펴내 주목받았다. 역사에서 소외된 이들을 담아내는 그의 시선은 이번 영화에서도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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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모님이 농인이다 보니 공식적인 언어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이 간다”면서 “이번 영화 세 주인공을 여성,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으로 잡은 건 그들의 방식으로 학살을 기억했을 때 (기존 역사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흥미가 가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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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본 적 없는 어린 여성이 뭘 알아
영화사와 인터뷰에서 그는 “감독, 프로듀서, 스태프 등 전원 여성들로 구성된 제작진이었기에 완성할 수 있었던 영화”라고도 했다. “베트남에 갔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군대에 가본 적도 없는 어린 여성인 네가 전쟁에 대해서 뭘 알아?’였다”면서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에서 가장 많이, 먼저 죽는 건 여성과 장애인, 아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날의 트라우마로 인해 여전히 한국 남성을 두려워하던 탄 아주머니는 이길 감독과 제작진을 딸처럼 여기며 그간 꺼내지 못한 속내를 전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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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내 삶은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의 제사를 챙기기 위한 거였던 것 같아.” 전쟁 고아로 살며 죽고 싶은 순간이 무수히 많았다는 탄 아주머니가 담담히 들려줬던 얘기다.
Q :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영화가 달라졌을까?
A : “글쎄. 할아버지 이야기를 조금 더 들었을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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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당신이 얼마나 미웠는지 몰라요
“제가 알지 못 했던 이야기를 베트남에서 듣고난 이후 당신이 얼마나 미웠는지 몰라요.” 영화 개봉에 맞춰 이길 감독이 할아버지에게 쓴 편지 일부다. 편지 말미에서 그는 “할아버지, 이젠 우리가 함께, 50여 년간 흩날려 버린 사과의 인사를 전할 수 있을까요?”라고 청했다. 영화 전체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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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엔 그의 할아버지와 같은 베트남전 참전군인들도 나온다. 탄 아주머니가 학살 증언을 위해 한국을 찾았을 때, 또 2018년 김영란 전 대법관의 주심으로 열린 ‘베트남전 시민평화법정’ 모의재판 때도 굳은 얼굴의 참전군인들이 자리해 있었다.
이길 감독은 “처음 촬영할 땐 무서웠다. 카메라 들고 다니면 욕하고 화내고 소리 지르는 참전군인이 대부분이었다”면서 그러나 “오래 마주하다 보니 그분들이 왜 집회현장에 나와 소리를 지르는지 조금씩 알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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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군인 억울함, 오래 보자 이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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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자리가 없기 때문에, 자기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잃어버린 젊음에 대해 큰 보상을 못 받는 것에 대해서요.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진상규명이 정확히 이뤄지지 않아 모든 참전 군인이 가해자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요. 그래서 억울하고, 이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나오셨다는 걸 영화 찍으면서 이해하게 됐죠. 가해자면서 동시에 피해자구나….
당시 모의재판에서 재판부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의 책임이 대한민국 정부에 있음을 선고했다. 이런 판결엔 베트남 양민 편에 선 실제 참전군인의 증언도 몫을 했다.
이길 감독은 “시민평화법정에 왔던 참전군인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면서 “베트남에서 온 분들의 이야기를 엄숙하게 듣는 경험이 처음인 것 같았다. 어떤 부대가 어떻게 학살했고 어떻게 덮었는지, 국가가 먼저 샅샅이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불명예스러운 가해자가 된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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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세월호 그리고…
2015년, 2018년 두 차례 한국에 온 탄 아주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정기 수요시위를 찾아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도 만났다. “전쟁의 피해자로서 할머니들을 응원한다”면서다. 이길 감독은 탄 아주머니가 광화문 세월호 추모 천막을 지나가다 현수막에 새겨진 희생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본 순간도 기억했다. 베트남 학살 피해마을의 위령비에 135번째 희생자 이름 아래 누군가 돌로 새긴 136이란 숫자를 오래도록 카메라에 담았던 이유다.
“이름조차 적히지 않은 137, 138번째 희생자도 있었을 텐데,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생존자 102명과 함께 청와대에 진상조사 및 공식사과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청원했던 탄 아주머니는 현재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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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은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 문제
예술가로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고민 끝에 3년 전 네덜란드 영화학교에 입학했던 이길 감독은 최근 학업을 마쳤다. 20일 개막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워크숍 프로그램 ‘베를리날레 탤런트’에 초청돼 차기작 피칭을 하게 됐다. 차기작 제목은 ‘아워 바디즈’,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자신과 어머니, 할머니의 삶을 토대로 낙태 이야기를 풀어낸다.
“처음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만들 즈음엔 거시적이고 사회, 정치적인 담론을 다뤄야지 왜 개인사, 가족 이야기를 찍느냐는 폄훼하는 시선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네덜란드 영화학교에선 자기의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쳤죠. 그러면서 위로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누가 감히 객관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겠어요. 가족, 나의 이야기, 내밀한 개인적 정치 이야기를 해나가려 합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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