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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아담의 첫 여자 릴리트, 악마의 연인이 된 사연

백성호의 현문우답

지난 편에서 깜짝 놀랐어요. 구약성경에서는 아담의 첫 여자가 이브잖아요. 그런데 유대 신화에서는 아담에게 이브 말고 숨겨진 여자가 있었다니 말이에요. 성경 바깥의 신화 이야기도 너무 흥미로운데요. 유대 신화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의 숨겨진 부부의 세계’.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정희윤 기자가 묻고, 백성호 종교전문기자가 답합니다.



Q : ‘릴리트’는 정말 뜻밖의 인물이었어요.


A : “그렇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신이 창조한 첫 인류가 ‘아담과 이브’로 나오는데,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던 유대 신화에는 이브 이전에 릴리트라는 여성이 있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신이 창조한 첫 남자와 첫 여자가 ‘아담과 이브’가 아니라 ‘아담과 릴리트’라는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릴리트는 전혀 예상 밖의 인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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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신화 속의 릴리트는 항상 뱀의 이미지와 함께 그려진다. [중앙포토]

Q : 지난 편에서 릴리트가 아담의 가부장적 태도에 질렸다고 했잖아요. 결국 릴리트는 아담의 곁을 떠났다고요. 그럼 에덴동산을 떠난 릴리트는 어디로 갔나요?


A : “릴리트는 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홍해 근처로 갔어요. 그곳에 동굴이 있었는데, 거기서 아주 뜻하지 않은 상대를 만나게 됩니다.”


Q : 그게 누구에요?


A : “‘루시퍼’라는 악마예요. 릴리트는 루시퍼를 만나서 그와 연인이 됩니다.”


Q : 릴리트와 루시퍼는 어떤 사이였나요? 잠시 사귀다가 헤어졌나요? 아니면 둘이 깊은 사이였나요?


A : “ 루시퍼의 연인이 된 릴리트는 아이를 낳게 돼요. 루시퍼의 아이를 낳는 거니까, 다시 말해 악마의 자식을 낳게 되는 거죠. 악마의 자식이니까, 그들이 누구겠어요? 맞아요. 악마예요. 이제 실리트는 악의 생산 기지, 즉 악녀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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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지난 편에서 본 릴리트는 아주 매력적인 여성이었어요. 남자와 여자가 다 흙으로 창조됐다.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으로 평등하다.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 아담의 곁을 떠나버렸잖아요. 그런 릴리트가 왜 악마의 연인이 되고, ‘악의 생산 공장’이 돼버린 걸까요?


A : “저는 거기에 릴리트를 바라보는 당시의 시대적 관점, 사회적 관점이 녹아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런 유대 신화가 널리 퍼졌을 때는 모계 중심 사회에서 부계 중심 사회로 넘어가는 단계가 아니었을까. 릴리트처럼 가부장적인 태도를 가진 남성에게 저항하는 여성을 ‘악마’로 단정 짓지 않았을까. 남성 중심의 고대사회에서는 독립적인 여성, 남자를 상대로 본질적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다. 일종의 ‘사회악’으로 본 거죠. 그래서 선과 악의 이분법 선상에서, 릴리트를 악의 편으로 못 박아 버린 게 아닐까요.”


Q : 그럼 에덴동산에는 아담 혼자 남게 됐잖아요. 그 후에는 어떻게 됐나요?


A : “릴리트가 아담의 곁을 떠나자, 아담이 너무 심심하고,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유대 신화에서는 하느님이 두 번째 여자를 창조했어요. 아담이 잠들어 있을 때, 아담의 갈비뼈를 떼서 이브를 만들었습니다. 이 대목이 참 재밌어요. 릴리트는 아담과 똑같이 흙으로 동시에 창조됐잖아요. 출발점부터 둘이 동등한 거예요. 본질적으로 동등한 겁니다. 그런데 이브는 어때요? 흙에서 나온 게 아니라 아담의 갈비뼈로 창조가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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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에덴 동산에 홀로 있는 아담을 위해 이브를 창조했다. [중앙포토]

Q : 왠지 불길한 이 느낌은 뭐지? 아담과 이브는 동등하지 않다는 건가요?


A : “맞습니다. 이 대목을 근거로 고대 유대 사회에서는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게 됩니다. 남자와 여자가 출발점부터 달랐다는 겁니다. 남자는 흙에서 태어났지만,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에서 태어났다는 거죠. 그래서 태생적 상하관계, 태생적 종속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게다가 릴리트와 이브는 캐릭터가 많이 달랐어요.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릴리트와 달리, 이브는 아주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캐릭터로 자리를 잡습니다. 당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고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상이었던 거죠.”


Q : 지금도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정서가 있나요?


A :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 근처에 초정통파 유대인 마을이 있어요. 저도 이스라엘에 갔을 때 그 마을을 돌아다녔어요. 초정통파 유대인 사회는 지금도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무척 심합니다. 그 마을에서 만난 여성들의 상당수가 헤어 스타일이 다 똑같은 거예요. 알고 보니 그게 다 가발이었어요. 초정통파 유대 사회에서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머리를 삭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건을 쓰거나, 가발을 쓰고 다녀야 돼요. 일종의 관습적 구속이죠.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그중 하나는 기혼 여성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외간 남자에게 보여주는 건, 자기 신체의 은밀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해석하는 유대 학자도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관습적 차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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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이런 식의 남녀 차별이 유대교에만 있는 건 아니죠?


A : “물론입니다. 유대 문화의 관점이 나중에는 기독교 사회로도 옮겨갔습니다. 기독교 문화에서도 이브가 먼저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었다. 그러니 여성이 남성보다 죄의식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정서가 오랫동안 지배했습니다.”


Q : 릴리트는 현대 사회에 더 잘 어울리는 여성 같아요.


A : “맞습니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릴리트는 페미니즘의 깃발을 올린 최초의 여성입니다. 성경 안에서만 바라보면 릴리트는 거짓이고, 허구고, 신화에 불과한 거죠. 그런데 성경 밖의 유대 신화에서는 새롭게 생각할 거리를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저는 우리가 좀 더 열려있고, 좀 더 유연하게, 성경이 기록된 역사적 과정은 물론이고 그 시대의 문화까지 함께 들여다보면 더 많은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에덴동산에 ‘아담과 이브’ 말고 ‘아담과 릴리트’도 있었다. 비록 신화이지만, 새롭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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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종교전문기자ㆍ정희윤 기자 vangogh@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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