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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 “자기 손으로 짐싸서 정신병원 걸어들어간 슈만, 이제 이해”

9일부터 9개 도시 돌며 슈만 연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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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1810~ 1856)은 1854년 꿈에서 한 음악을 들었다고 회고했다. 이를 적어내려간 작품이 ‘유령 변주곡’. 이 곡을 쓰던 슈만은 라인 강에 뛰어들었다가 구조된다. 극심한 정신분열에 시달린 끝의 선택이었다. 죽음을 면한 슈만은 닷새만에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유령 변주곡’을 완성한다. 출판이 되지 못해 작품번호도 없는, 슈만의 마지막 작품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74)는 1년 여를 슈만에 바쳤다. 지난해부터 슈만을 연구해 올 5월 경남 통영에서 슈만의 작품들을 녹음했고 이달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을 시작으로 수원·부천·인천·통영 등 총 9개 도시에서 슈만으로 전국 투어를 한다.


6일 온라인으로 연 기자간담회에서 백건우는 “젊었을 때는 슈만이 불편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고 어떠한 심정이었는지 이해한다”고 했다. “자기가 짐을 싸서 정신병원으로 걸어들어간 슈만의 마음을 알겠다.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와 아이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게 자기 자신이 집에서 혼자 걸어나온 거다.”


백건우는 슈만이 스무 살에 내놓은 첫 곡 ‘아베크 변주곡’으로 공연을 시작해 ‘유령 변주곡’으로 마친다. “슈만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그렇지만 사실 낭만주의를 이해하게 되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극과 극을 왔다갔다 했는데, 마지막 작품을 보면 모든 음이 살아있다. 이번 기회에 나도 슈만을 재발견했다.” 이번에 백건우가 슈만을 바라보는 두 키워드는 초창기와 마지막 해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인생의 쓰라림이 공존한다. 모든 이의 아픔을 대변하는 작곡가다.”


독주회에서 첫 작품으로 시작해 후기 작품을, 다시 초기와 후기 작품을 교차해 연주한다. 백건우는 “이같은 슈만의 심정을 들을 수 있도록 청중의 마음을 인도하는 것이 제일 큰 숙제”라고 했다. “청중의 심리적 흐름을 최대한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1970년대 라벨 전곡 연주로 시작해 한 작곡가를 인간으로서 들여다보는 피아니스트다. 그동안 라흐마니노프·베토벤·스크리아빈·리스트·쇼팽 등을 파고들었고 이번에는 슈만이다. 백건우는 “이상하게 때가 되면 꼭 한 작곡가의 음악을 다뤄야 했다. 내가 대변인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슈만의 심정을 대신해서 느꼈고 특별히 표현하고 싶은 세계가 있었다”고 했다.


생존 당시에 이미 영향력있는 작곡가였던 슈만은 법학도로 시작해 음악에 빠져들었다. 문학에도 전문적인 식견이 있었고 음악비평지를 만들어 평론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백건우는 슈만에 대해 “참 복잡한 인생”이라고 했다. “작가가 되려다 음악가가 됐고 부상으로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조롭게 이뤄진 게 하나도 없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많은 곡을 그런 고통 속에서 어떻게 썼는지 알 수가 없다.”


코로나19의 팬데믹 시대에 음악과 음악가의 역할도 강조했다. “살면서 살아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늘 있지 않다. 음악이 진실된 순간을 만날 수 있도록 한다. 음악은 꼭 살아있어야 한다.” 슈만을 끝낸 백건우는 또 어떤 작곡가의 ‘대변인’ 역할을 하게 될까. “글쎄. 누가 나타날까. 정말로 마음에 끌리는 작품이 나타날 거다. 하는 데까지 해야지.”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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