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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 RM도 달려간 전시…정작 작가는 "오글거리고 후회" 왜

■ 추기자의 속엣팅

중앙일보

하태임 작가가 지난달 24일 경기도 양평 작업실에서 '색띠'(컬러밴드)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2017년 공황장애가 극심할 때 캔버스를 눕혀서 정결하게 그렸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캔버스를 세워 물감이 흘러내리게 했다. 하태임은 "순리를 전복시키고 망쳤다고 생각했을 때 쾌감이 있더라"라고 했다. 김현동 기자

지난해 한 예능에서 배우 신현준의 집에 걸려 있던 그림이 화제가 됐다. 얼핏 보면 몇 가지 색으로 휙휙 그은 것 같지만, 갤러리에선 비싼 값에 거래되는 작품 ‘색띠’(컬러밴드)다. 이 작품을 그린 하태임(49) 작가는 치솟는 인기만큼 더 바빠졌다. 몰려드는 주문에 작업에만 몰두하자 남편이 그를 데리고 2주간 강제 휴가를 떠났을 정도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양평에 갓 완공된 작업실에서 하태임을 만났다.

아버지의 죽음, 소통의 단절

하태임은 한국 1세대 추상화 거장 하인두(1930~89)와 한국화가 류민자(80)의 딸이다. 1998년 프랑스 명문 ‘에콜 데 보자르’를 졸업하고 ‘모나코 왕국상’을 받은 수재다. 그런 그는 사실 “콤플렉스 덩어리였다”고 했다. 5살 위인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서 남자처럼 자랐다는 그는 “남자가 아니어서”, “오빠와 동생보다 손재주가 없어서” 위축됐다. 플루트를 전공하려다 고등학교 때 미술을 뒤늦게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오빠와 동생을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발전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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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임 작가의 등 뒤로 빛그림을 그렸다(light painting). 빛이 교차하고 중첩되면서 만들어진 색띠가 그의 시그니처 컬러밴드(color band)를 닮았다. 김현동 기자

그런 그에게 오빠와 동생은 “아버지는 딸을 가장 예뻐했다”고 항변한다. 아버지 하인두는 음악을 하려는 딸을 “재능을 왜 썩히냐”고 나무라고, 하태임의 고등학교 선생님에게 “졸업 후엔 파리에 유학시킬 계획”이라며 “(딸의) 천부적인 자질을 부모로서 못다 한 것까지 여식에게 저의 꿈과 기대를 걸고 있다”는 편지를 써서 자율학습 면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딸과 함께 프랑스에서 살아보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암 투병 끝에 1989년 곁을 떠났다.


하태임은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소통하고 싶은 사람이 없어진, 완벽한 단절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소통하고 싶어 알파벳 등 문자를 분해해 그리고, 홀로 떠난 유학길에 불어도 열심히 배웠다. 하지만 불어가 유창해지고 현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도 소통에 대한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소통은 문자나 언어의 문제도, 문화의 문제도 아니더라”라며 “색과 느낌, 분위기만으로도 그 대상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시그니처 ‘색띠’가 나온 배경이다.

문자 지우니 색띠 나왔다

‘색띠’는 문자를 지우는 작업에서 나왔다. 자신이 그렸던 문자에 색을 칠했다가 마르면 그 위에 또 덧칠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니 곡선의 띠 모양이 나왔다. 그는 “그리겠다는 의도가 없을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선이 곡선(호)”이라며 “무심하게 직선을 그리기는 불가능하다. 내 몸의 구조와 궤적대로 그림에 담아낼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2005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색띠’는 그의 시그니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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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임 작가는 한국 1세대 추상화의 거장 '하인두의 딸'이라는 꼬리표조차도 콤플렉스였다. 그는 이제 "다른사람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며 "영감이 끊어질까 봐 두렵다"고 말한다. 김현동 기자

유명 화가 집안에서 걱정 없이 자랐을 것 같지만, 그는 생계형 작가였다. 유학 중 IMF로 집안의 지원이 중단됐고, 프랑스에서 딸을 낳은 후 3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와 통역부터 기간제 교사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했다. 청담동 유학 전문 미술학원도 차리고 기업 컨설팅과 아트 디렉터 등 다양하게 일했다. 그러다 5년 전 공황장애를 겪으면서 미술을 관둘 뻔도 했다. 삼육대 교수직을 관두고 밤낮 그림에만 매달렸다. 회전근개 파열로 작업이 어려울 정도로 어깨가 아팠지만, 그것도 문제가 안 됐다.

“영감 끊길까 두려워”

하태임은 “인생에서 가장 낙담한 순간 색채의 끄트머리를 잡고 살아났다”고 했다. 그가 “컬러 수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는 “예전엔 다채로워야 색을 잘 쓰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요란스럽게 느껴졌다”면서 “인생이 페이지마다 바뀌듯 색채도 한색에서 다른 색으로 시선을 돌리면 또 다른 세계관이 펼쳐지더라”라고 했다. 전시회도 아예 색채를 주제로 한다. 2020년 ‘블루가 핑크를 만나면’부터 지난 6월 열린 ‘옐로우, 그 찬란한 기억’ 등이다. 지난 1월 아버지와의 첫 공동 전시회 ‘부전여전’(父傳女傳))도 아버지가 즐겨 쓰던 ‘블루’를 오마주해 꾸몄다.


그는 사실 ‘하인두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싫었다고 한다. “아무리 잘해도 부모님 그늘에 묻히는 느낌” 때문이다. 그의 또 다른 콤플렉스였다. 오래전부터 부녀 공동 전시회 제의를 받을 때마다 고사했던 이유다. 지난 1월 처음 연 부녀전은 개막하기도 전에 그림 18점이 다 팔렸고, 그룹 BTS의 리더 RM도 찾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하태임은 “후회될 만한 전시회”라고 했다. “거장 옆에 내 그림을 걸어놓으니 오글거렸다”면서다. “RM은 아빠 그림을 보러 온 것”이라고도 했다. 내년 9월 첫 뉴욕 개인전을 앞둔 그는 여전히 “좋은 작업”을 꿈꾼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아요. 영감이 끊어질까 봐 항상 두렵죠.”

[에필로그]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은 2005년쯤 직원의 소개로 알고 지내던 ‘태임이’의 전시회를 찾았다가 첫눈에 한 작품에 반했다고 합니다. ‘색띠’가 나오기 전 작품이었죠. 자택에 이 그림을 걸어두고 있다는 박 전 회장은 “얼핏 보면 화려하고 강렬한데 자세히 보면 그 안에 다채로운 세계가 있었다”며 “그 그림을 보고 ‘참 착하고 순수한 작가의 내면에 저런 세계가 들어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 요즘 '쪽방촌' 출근하는 박용만..."3년전 뇌졸중, 내 삶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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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총수에서 경제단체 수장까지 15년 가까이 ‘회장님’으로 살아온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은 요즘 쪽방촌으로 출근한다. 은퇴 전 건물을 사들여 세운 일터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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