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점, 부은 발목, 질질 끌리는 발···피부·신장·뇌 질환 경고
[건강한 가족]
발톱에 까만 줄 생기면 흑색종 의심
신장 기능 저하 땐 다리에 쥐 잘 나
당뇨발 상당수, 작은 상처서 비롯
발이 품은 '건강 나침반'
몸의 가장 낮은 위치에서 주인을 위해 매일같이 동분서주하느라 바쁜 부위가 ‘발’이다. 그만큼 발은 고마운 부위이지만 평소 신발에 가려 있어 유심히 살펴볼 시간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알고 보면 발은 전신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나침반’일 수 있다. 때로 생각지 못한 질환을 암시해 주기도 한다. 요즘처럼 발 노출이 잦을 때 자신의 발을 집중해 살펴보는 건 어떨까. 발이 보내는 대표적인 건강 신호를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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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종
발바닥 점 커지고 발톱 줄 생길 때
발바닥에 검은 점이 새로 생겼거나 발톱에 까만 줄이 나 있다면 모양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검버섯·반점으로 착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뒤늦게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으로 진단받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서양에서는 자외선이 주원인인 ‘표재 확산 흑색종’이 흔해 햇빛에 노출되는 등·다리에 잘 발병하는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자외선과 관련 없는 ‘말단 흑자 흑색종’이 흔하며 신체 말단인 발바닥·발톱에 많이 발병하는 게 특징이다. 한양대병원 피부과 김정은 교수는 “말단 흑자 흑색종은 외상, 화학물질에의 노출, 체중 부하로 인한 압력·자극 등이 주요 위험 인자”라며 “발은 이들 위험 인자에 노출되기 쉬워 흑색종이 잘 발병하는 부위”라고 설명했다.
흑색종은 피부암 중에서도 잘 전이되고 사망률이 75%로 치명적인 암이다. 하지만 조기에만 발견하면 수술을 통해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한양대 구리병원 피부과 서현민 교수는 “발톱에 까만 줄이 겹쳐 생겼거나 발톱 주위 피부로 검은 병변이 퍼진 경우, 발바닥 점 폭이 6㎜ 이상이거나 모양이 비대칭이고 점 경계가 불규칙한 경우, 발바닥 점의 색·크기가 변하는 경우 조직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병변이 국소 부위에 한하면 병변을 도려내는 완전 절제를 시행한다. 원격전이가 있거나 4기로 진행했다면 전신 약물치료를 시행한다. 표적항암제·면역항암제를 적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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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전
부종 부위에 손가락 자국 남을 때
발과 발목이 유독 붓는다면 신장의 경고일 수 있다. 만성 콩팥병(신부전)의 대표 증상이 부종이다.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 몸속 노폐물이 쌓이고 수분·전해질의 균형이 깨지면서 부종이 생길 수 있다. 발·발목·종아리가 잘 붓는 건 중력이 더해져서다. 부종 부위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눌린 자국이 깊고 오래 남으면 콩팥병을 의심할 수 있다. 신장이 걸러내지 못한 노폐물, 즉 요독이 신경에 쌓이면 순간적으로 양쪽 다리에 쥐가 날 수 있다. 원인 모를 피로감, 식욕 감퇴, 수면장애, 야간뇨도 콩팥병의 증상이다. 한양대병원 신장내과 이창화 교수는 “신부전 환자 가운데 이런 증상이 장기간 조금씩 진행하다 보니 몸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고 말기 콩팥병 직전까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경고했다.
신장 기능이 감소해 만성 콩팥병으로 진행하면 염분·수분 조절 능력이 급감해 부종은 물론 심하면 호흡곤란까지 나타날 수 있다. 염분 섭취 제한은 필수다. 부종 치료 시 처방하는 이뇨제도 소변으로 나트륨을 내보내 부종을 완화하는 원리다. 이 교수는 “일상에서 국물·찌개·젓갈 등을 적게 먹어 나트륨 섭취를 줄이면 이뇨제를 복용할 때와 맞먹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단백질도 과량 섭취하면 단백질 분해 산물이 체외로 배설되지 못하고 체내 쌓여 요독증을 일으킬 수 있고, 신장 기능을 떨어뜨린다. 단백질 필요량은 환자 몸무게 1㎏당 0.6~0.8g이지만, 개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어 주치의와 상의한다. 신장 기능이 나빠지는 주요 원인 질환은 당뇨병·고혈압이다. 당뇨병 환자의 20~30%는 신장 기능이 저하된다. 당뇨병·고혈압을 치료하면서 매년 한 번씩 신장 기능, 단백뇨 검사를 받는 게 권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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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발
발 시리고 다쳐도 안 아플 때
당뇨병 환자 가운데 발이 시리고 굳은살이 많아지거나 발에 난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다면 당뇨발을 의심할 수 있다. 당뇨발은 당뇨병 환자에게 생기는 족부 질환을 통칭한다.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정형외과 조재호 교수는 “당뇨발 초기엔 발이 시리고, 저리고, 화끈거리다가 심해지면 발에 뭔가 붙어 있고 걸을 때 모래 위를 걷는 듯한 이상 감각을 호소한다”고 언급했다. 신경이 파괴되면 발 감각이 둔해져 발을 다치거나 발에 고름이 생겨도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한다. 운동신경의 이상으로 발가락의 작은 근육이 마비돼 발가락이 갈퀴처럼 변형되고 굳은살·상처가 잘 생긴다. 자율신경 이상으로 발에 땀이 잘 안 나며, 혈액순환 장애로 발이 시리거나 차갑고, 발가락 끝이 검게 변하기도 한다.
당뇨발 상당수는 작은 상처에서 비롯한다. 발에 난 상처를 방치하면 발을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선 매년 약 2000명이 당뇨발로 발을 절단한다. 당뇨병 환자가 바닷가에서 맨발로 돌아다니는 건 금물이다. 날씨가 더워도 외출할 때 양말·운동화를 신어 발을 보호해야 한다. 신발을 신기 전 신발 속에 자갈 같은 이물질은 없는지 확인한다. 발이 붉거나 검게 변했거나, 수포·궤양이 생기면 바로 병원을 찾는다.
당뇨발에 진단되면 조직 재생을 돕는 상피세포 성장인자(EGF), 혈관 확장제, 고압산소 치료 등을 이용해 상처 회복을 촉진하는 보존적 치료, 감염돼 죽은 조직을 제거하거나 상처 조직을 다른 부위의 살로 덮는 수술적 치료 등을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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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발 끌거나 종종걸음할 때
발의 움직임은 신경 질환을 가늠하는 척도일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과 달리 종종걸음을 걷는다면 파킨슨병을 의심할 수 있다. 파킨슨병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하는 흑색질의 신경세포가 죽어가면서 도파민이 부족해져 나타나는 신경 퇴행성 뇌 질환이다. 도파민은 몸이 정교하게 움직이도록 돕는다. 도파민이 부족하면 발을 끌면서 걷거나, 보폭을 짧게 해 종종걸음을 걷는 등 보행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편안한 자세에서도 발을 떨거나 온몸이 뻣뻣해지는 증상, 표정이 없고 침을 잘 흘리기도 한다. 문제는 이 같은 운동 장애가 노화로 인한 증상이나 뇌졸중(중풍)과 비슷해 조기 진단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파킨슨병센터 조사에 따르면 파킨슨병 환자가 증상 발생부터 파킨슨병에 진단받기까지는 18개월이나 걸렸다.
걸음걸이가 파킨슨병으로 의심된다면 10년 전을 떠올려 보자.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성영희 교수는 “파킨슨병은 주요 증상이 발생하기 10년 전부터 뇌가 퇴화해 세 가지 전구 증상을 보인다”고 강조했다. 첫째는 심한 잠꼬대다. 꿈을 꾸다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심하게 발길질을 한다. 둘째는 후각 장애다. 파킨슨병이 발병하면 후각신경이 가장 먼저 손상돼 냄새를 잘 못 맡는다. 셋째는 변비다. 섭취한 음식과 무관하게 변비가 잦아진다. 보행 장애가 생기고 전구 증상도 있다면 신경과 진료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치료 시 도파민성 약물을 복용해 도파민을 보충하는데, 약물치료 효과가 떨어지거나 이상운동증이 나타나면 전기자극으로 뇌의 이상 신경회로를 조절하는 뇌심부자극술을 시행한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