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까지 번진 염증, 기어코 무대 올랐다…도쿄 홀린 K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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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 염증이 발목까지 번졌는데 포인트 슈즈(일명 토슈즈)에 올라 몇 시간을 돌고 뛰고 날아야 한다면. 포기가 자연스러운 수순이겠지만 그 단어는 국립발레단 박슬기 수석무용수의 사전엔 없다. 그는 대신 포인트 슈즈를 들고, 문제의 둘째 발가락 부분을 파내고 무대에 섰다.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고심 끝 생각해낸 방편. "고작 발가락 하나 때문에 무대에 못 선다는 게 억울했다"고 한다. 박슬기라서 가능한 일이다.
오는 15~16일엔 일본 도쿄 시티발레단 55주년 기념공연에 초청받았는데, 안무가로 초청받았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의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에 2016년 출품했던 '콰르텟 오브 더 소울'이 초청작으로 낙점되서다. 본인을 포함, 허서명ㆍ조연재ㆍ변성완 무용수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공연 티켓은 매진됐다. 그를 최근 예술의전당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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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해외 무대 안무가 초청은 처음인데.
A : "첫 안무작이었기에 의미가 크다. 내 주변의 것을 표현해보고 싶었고, 자연스레 항상 함께하는 음악이 떠올랐다. 무대에서 막이 오르기 전에 준비하고 있으면 오케스트라 연주자분들이 악기 조율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순간이 무용수들에겐 특별하다. 무용수들이 직접 악기가 되어 음악을 춤으로 표현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전설적 안무가 조지 발란신의 '음악을 보고 춤을 들어라'는 말도 떠오른다. 안무는 달랐을 텐데.
A : "안무는 무대 연출과 세트, 의상과 음악까지 챙겨야 하니까 솔직히 처음엔 막막했다. 하지만 무용수들에게 제 안무를 입히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고, 단장님도 좋게 봐주셨다. 여러 협업 무대에도 계속 올릴 수 있었고 해외 진출도 하게 돼 행복하다. 'KNB 무브먼트'가 올해 8회째인데 계속 단원 작품들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고, 단원들도 열정을 갖고 가면 좋겠다."
2008년에 입단한 그는 국립발레단의 맏언니 역할을 톡톡히 한다. 8회를 맞은 'KNB 무브먼트' 이달 2~3일 무대에선 강효형 솔리스트가 안무한 '활'에서 빠른 템포의 국악 타악 리듬에 맞춰 무대를 이끌었다. 강효형 안무가는 중앙일보에 "유연성과 강인함을 모두 갖춘 박슬기 무용수의 카리스마 덕에 활시위를 당기는 긴장감과 팽팽함의 이미지가 잘 표현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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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발가락 부상 당시 고통이 심했을 텐데.
A : "둘째 발가락이 좀 긴데, 염증이 생기다가 심해졌다. 벨기에 초청 공연도 있고 해서 중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고작 발가락 하나 때문에 다른 곳은 다 멀쩡한데 쉰다는 게 용납이 안 됐다(웃음). 토슈즈 속도 파보고, 온갖 병원을 다녔다. 그러다 발목까지 보라색으로 염증이 타고 올라왔다. 가장 두려운 건 '영원히 발레를 못하게 되면 어쩌지'였다. 그때 생각하면 진짜 아찔하다. 다행히 재활 선생님을 잘 만나서 회복했다. 그 선생님이 남편이 됐다(웃음)."
Q : 부상 덕에 남편을 만난 셈이다.
A :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한다. 제가 아니라 남편이(웃음). 제가 설거지를 하려 하면 '무대에 서는 사람이 이렇게 움직이면 안 된다'고 농담하면서 못하게 한다. 여러모로 고맙다. 부상 덕에 남편을 만났고, 팬데믹을 지나면서는 무대의 절실함을 다시 느끼며 스스로의 몸에 좀 더 집중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헛된 경험이라는 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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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어느덧 입단 16년차인데.
A : "(수석무용수 김)지영 언니가 은퇴한 뒤, 내가 언니에게 많이 의지했었다는 걸 느꼈다. 이젠 내가 그 역할을 해줘야 한다. 어깨가 무겁긴 하지만,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정답이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도 있다. 어린 시절엔 동작 수행에 급급했다면, 경험이 쌓이다 보니 표현이 재미있어진다. '지젤'이라고 해도 어떤 무대에선 슬프고 처연하게, 다른 무대에선 허탈함과 광기를 녹여서 표현한다. 한국적인 것도 계속 시도하고 싶다. 무대 위에서 역시 가장 행복하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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