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영의 워싱턴 살롱] 마스크당과 노(No) 마스크당···코로나 시대 이념 전쟁터 된 미국
박현영의 워싱턴 살롱
마스크, 자택대기 명령, 재정 지출
민주당과 공화당 사사건건 대립
대선에서 유리한 방향으로만 활용
정치 양극화로 보건 위기도 심화
지난 12일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민주당 팀 케인 의원(왼쪽)과 마스크를 쓰지 않은 공화당 팀 스콧 의원. [EPA=연합뉴스] |
#지난 13일 미국 중북부 위스콘신주 대법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토니 에버스 주지사가 내린 자택대기 명령이 무효라고 결정했다.
공화당 주(州) 의원들이 명령이 행정부의 월권이라고 주장하는 소송을 냈고, 보수 성향 주 대법원은 4대 3으로 의원들 손을 들어줬다. 에버스 주지사는 민주당 소속이다. 이 결정은 주 정부가 내린 코로나19 봉쇄 명령을 법원이 뒤집은 미국 첫 사례다.
이튿날 식당과 바가 두 달 만에 문을 열자 일부 주민은 몰려나와 축배를 들었다. 하지만 일부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위스콘신주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 늘고 있어서다.
대법원 결정이 나온 날 291명이 신규 확진됐는데, 전날(193명)보다 50%(98명) 늘었다. 에버스 주지사가 “바이러스는 정치인들이 이견을 해소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계속 집에서 대기하라”는 성명을 발표하자 주민들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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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미 의회 상원 보건위원회는 코로나19 청문회를 열었다. 회의장 안 의원들 모습은 소속 정당에 따라 사뭇 달랐다. 팀 케인, 크리스토퍼 머피 등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썼다.
랜드 폴, 팀 스콧 등 공화당 의원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청문회 시작 직전 벗었다. 이를 본 한 TV 비평가는 “우리에겐 민주당과 공화당이 있는 게 아니라 마스크당과 노(No) 마스크당이 있다”는 트윗을 올렸다.
미국이 코로나19로 ‘전쟁’을 겪고 있다. 바이러스와의 싸움, 생명을 지키기 위한 사투만은 아니다. 정치 이념을 둘러싼 거대한 전장(戰場)이 됐다.
단순하게는 마스크를 쓰느냐 마느냐부터 상점 영업을 재개할지, 학교는 언제 열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는 돈을 얼마나 풀어야 하는지까지 공화당과 민주당이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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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 고위 인사들이 ‘노 마스크’를 고집하는 것도,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눈에 띄게 화려한 ‘스카프 마스크’를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화당 주지사가 이끄는 텍사스ㆍ조지아ㆍ플로리다 등 일명 '적색 주(red state)'는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기도 전에 자택대기 명령을 풀고 경제를 조기 재가동했다. 민주당 주지사가 있는 뉴욕ㆍ뉴저지 등 청색 주(blue state)는 확진자 수가 줄고 있는데도 아직 전면 재가동은 이르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5일 민주당 주도로 하원이 3조 달러(약 3700조원) 규모의 추가 경기 부양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백악관과 공화당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법안이 당장 상원을 통과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앞서 집행한 2조8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 패키지의 경제적 효과를 검토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
정치적 정체성에 따라 일반인의 코로나19 예방 행동도 다르게 나타난다. 온라인 미디어 더컨버세이션이 미국인 1088명을 조사한 결과 민주당원의 67%는 ‘마스크를 쓴다’고 응답했지만, 공화당원은 54%에 그쳤다. 13%포인트나 차이가 나타났다.
민주당원의 84%는 ‘사회 모임을 피한다’고 했지만, 공화당원(77%)은 그보다 적었다. 가장 큰 차이는 여분의 물품과 음식을 구매하는지에서 나타났다. 민주당원은 55%가 그렇다고 했고, 공화당원은 35%에 그쳤다.
양 진영 간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미국 코로나19 대응은 과학이나 보건 관점에서 벗어나 정치적 사안으로 바뀌고 있다. 정치학자들은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양 당이 코로나19 사태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 한다는 데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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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진영이 마스크를 거부하는 것은 코로나19 위험을 축소하고 경제를 재개하기 위해서다. 로버트 슈멀 노터데임대 교수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공화당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경제 재개를 밀어붙임으로써 ‘미국에서 삶이 위험하지 않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완전 고용에 가까운 경제 호황에 기대어 트럼프 재선 전략을 짜놓은 공화당은 대선 이전에 빨리 경제를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다. 슈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핵심 이유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별거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라고 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내는 강력한 신호에 지지자들이 움직인다는 분석도 있다. 데이비드 루블린 아메리칸대 교수는 “우리가 가진 관점이 지지 정당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 반대 역시 성립한다”면서 “경제를 꼭 재개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강력한 메시지를 지지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스테펜 슈미트 아이오와주립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를 쓰지 마라’, ‘당장 경제를 재개하라’고 말하면 열성 지지자들이 따를 정도로 미국은 이념적으로 갈라져 있다”면서 “민주당원들은 트럼프가 앤서니 파우치 박사와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과학자를 더 신뢰하게 된다”고 말했다.
래리 사바토 버니지아대 교수는 “지금 미국은 1860년대 남북전쟁 이후 가장 첨예한 정치적 양극화를 겪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확고한 지지 기반만 붙잡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들을 자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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