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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화사 집도 맡은 정리 달인…“견적내면 고객들 펑펑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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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시작하면서 배운게 죽음이었다.”


정희숙(49)씨의 직업은 정리 컨설턴트다. 정리를 의뢰 받아 견적을 내고 집안의 큰 가구부터 속옷ㆍ양말까지 정리해주는 일이다. 2012년 자신의 회사를 세운 후 정리한 집이 2000곳. 2013년부터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최근 박명수ㆍ화사 같은 연예인의 집을 정리해주며 ‘정리의 여왕’ ‘정리의 달인’으로 불리는 이다. 인스타그램 11만, 유튜브 10만 구독자에게 정리의 비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죽음이라니.


“집을 정리하기 전에 의뢰인과 이야기를 오래 나눈다. 왜 정리하려고 하냐 물어보면 죽음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남편이 아침에 떠나서 안 돌아왔다, 교통사고로’ ‘아내가 갑자기 떠났는데 방에 짐이 많아 엄두가 안 난다’ 이런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일가족이 모두 세상을 떠난 집 정리도 했다.” 그는 “물건 정리는 죽고 나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이처럼 정씨가 이 일을 하며 가지게 된 가장 밑바닥의 생각은 죽음, 또 삶에 대한 것이다. 죽어서 하는 게 아니라 살아서 해야하는 게 정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의뢰인들은 견적을 내며 “집 정리를 왜 하려고 하는냐”로 시작되는 대화 끝에 가족과의 갈등, 우울증, 강박증 같은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운다고 한다. 정씨는 “남의 집을 2000번 정리하고 나니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무엇 때문에 힘들거나 행복한지 알게 됐다”고 했다.


Q : 집 2000곳을 정리했다. 어떤 집까지 정리해봤나.


A : “집에 물건이 너무 많아 부모님 댁에서 사는 사람도 있었다. 잘 데가 없다. 침대 위고 어디고 물건이 쌓여있다. 침대 위에만 선풍기 8대, 에어프라이기 3대, 햇반과 라면 박스들, 장난감, 화장실 휴지가 가득했다.”


Q : 그런 집은 어떻게 정리하는지.


A : “집의 주인이 집을 정리하고 변화할 마음의 준비가 됐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꼭 고객과 미팅할 때 왜 정리하려 하는지 가장 먼저 물어본다.”


Q : 어떤 답이 많은가.


A : “바꾸고 싶다고 한다. 이렇게 살기 싫다고. 이혼도 있고, 자녀의 죽음, 본인의 암 투병도 있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맞게 집을 정돈하려는 동기도 있고. 정리하기에 앞서 이런 식의 이야기를 두어 시간 듣는다. 견적을 내다가 고객들이 펑펑 운다.”


Q : 이야기를 길게 듣는 이유는.


A : “애가 몇살인지, 외벌이인지, 직업은 무엇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에 따라 집 정리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왜 정리하려 하는지를 들어야 제대로 맞춰줄 수 있다.”


Q : 집 정리의 진행 방식은.


A : “회사 직원이 15명이다. 30평대 기준으로 7명이 들어가 8~9시간 동안 정리를 한다. 이건 가구 배치를 안 하는 집 기준이고 가구 배치를 새로 해야 하는 경우에는 10~12명이 30평대를 이틀씩 하기도 한다. 비용은 100만원 정도가 평균이다. 초창기에는 고객들이 느리다고 답답하다며 항의를 많이 했다.”


Q : 집 정리 컨설팅을 시작한 8년 전과 지금, 대한민국의 집이 달라진 게 있다면.


A : “물건 사는 게 쉬워져서 진짜 많이 산다. 집집마다 가보면 같은 물건을 쌓아놓고 있다. 홈쇼핑부터 인스타그램까지 거의 비슷한 경로로 물건을 사는 것 같다. 약콩이 유행이면 약콩, 같은 마스크팩, 옷까지, 너무 많이 산다. 특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물건을 많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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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일본 정리 전문가인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지침도 유명하다.


A : “그런 미니멀 라이프를 강조하지 않는다. 나도 불 때서 난방하는 시골에서 검소하게 자랐다. 하지만 한국처럼 가족 중심으로 사는 사회에서 물건을 다 버릴 수는 없다. 다만 집 안으로 뭐라도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 것이 정리인 것은 확실하다. 빵 봉지 묶는 끈, 쇼핑백, 고무줄 같은 걸 너무 많이들 모은다. 특히 정 많은 한국 사람들은 물건을 더 못 버린다. 나는 기왕 집에 있는 이런 걸 잘 활용해 쓰고, 물건을 더 사거나 집에 들이지 말자는 주장을 한다.”


정씨는 아이스 커피 용기에 스카프 넣기, 생수통 잘라 머그컵 보관, 우유팩 잘라 냉장고 속 채소 분류 같은 정리 아이디어를 알려주며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채널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엔 책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입니다』를 냈다.


그는 “양말 접기, 옷 색깔 맞춰 걸기는 정리의 1%도 안 된다. 집에 있는 걸 활용하고 덜 사는 것이 정리의 모든 것”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정리의 특별한 비법은 없다. 모든 걸 꺼내고 분류해 다시 넣는 것”이라며 “다만 집의 모든 부분을 한꺼번에 하지 말고 오늘은 청바지, 오늘은 그릇 하는 식으로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정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세부터 한복 매장 직원, 사무실 경리, 백화점 패션 매장 매니저로 일했다. 35세에 결혼한 후 40세에 “가족의 행복이 내 행복인 양 집착하는 스스로를 견딜 수 없어” 일을 찾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잠시도 앉아있지 않고 청소기와 박스 테이프를 들고 다니며 정리했던 그를 보며 주변에서 정리를 직업으로 권했다.



그는 “정리를 하러 남의 집에 들어가보면 그 가족의 행복한 정도가 보인다”고 했다. “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집착해 늘 같이 생활하고 다 큰 아이를 데리고 잠을 잔다. 아이 방을 제대로 만들어주면 그때부터 아이가 독립한다. 또 집안에 남편의 공간이 거의 없는 집은 십중팔구 부부 사이가 안 좋다.”


정씨는 “마음이 힘든 사람일수록 집이 어지러웠다”며 “집 정리를 단지 돈벌이로만 볼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그는 의뢰받는 일 중 30% 정도만 수락한다. “남들은 어서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사업을 키우라고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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