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너네가 문제" 이태원 그후, 성소수자에 날아온 문자
밀실
성소수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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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은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밀도있는 밀착 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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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친구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너네’ 때문에 이태원 난리났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너네'가 그렇게 문란하게 노니까 퍼지는 거 아니겠냐고요. 저는 이태원이라면 두 세달 전 치킨 먹으러간 게 마지막인데 황당했죠."
서울 이태원 클럽 등을 중심으로 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뉴스가 쏟아지던 무렵, 성소수자 A씨(28)의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연락 준 고등학교 동창에 대한 반가움도 잠시, 문자를 확인한 A씨는 할 말을 잃었다고 해요.
친구가 보낸 문자엔 ‘얼마나 더러운 짓을 했으면 하루 만에 코로나 확진자가 이렇게 퍼지냐’, ‘일반 강남 클럽과 술집들 오픈한 곳이 그렇게 많은데 왜 너네만 이러냐’고 적혀 있었다고 해요.
A씨는 “‘너네’라고 표현하면서 나에게 대변하라는 식으로 말하는 친구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며 “이때다 싶어 할 수 있는 모든 성소수자 혐오를 나에게 쏟아부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지난 6일 '용인시 66번' 확진자가 이태원 클럽·주점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불안감이 다시 커졌습니다. 집단감염 우려는 성소수자 혐오로도 옮아갔습니다. 확진자가 다녀간 클럽 중 일부가 성소수자 출입 시설이라는 일부 보도가 계기였습니다.
성소수자 B씨(32)는 “내가 당시 그 클럽에 가지도 않았지만 그런 기사가 나올 때마다 오해나 편견이 생길까 싶어 주변 친구에 연락하기 꺼려졌다”고 털어놨습니다.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성소수자들은 어떤 생각일까요. 밀실팀이 성소수자 4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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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 소홀이 원인" "성소수자라고 욕 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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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C씨(27)는 “이성애자 클럽에서 먼저 터졌다면 이정도 파장을 불러 일으키진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금의 분위기를 과거의 신분 사회에 빗댔습니다.
"조선 시대 양반이 도둑질 하면 뭐 그럴 수 있겠지 하겠지만 노비가 도둑질하면 곤장질하고 노비라서 손버릇이 더럽다고 더 손가락질하는 식이죠."
밀실팀이 인터뷰한 성소수자들은 '클럽발' 코로나19 확산의 근본 원인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둔감해진 사회 전반의 분위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부 20대가 거리두기에 소홀한 채 클럽ㆍ술집을 이용했기 때문이라는 얘기입니다.
B씨는 "(클럽발 코로나 확산 전에도) 20대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클럽을 이용해 감염이 우려된다는 기사가 많지 않았냐”며 “사회적 동참이 부족한 개인의 문제지 성소수자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클럽, 술집 등 밀폐된 시설에 대해서 허술하게 관리한 것도 문제입니다. 실제로 정부는 4월 20일부터 황금연휴의 마지막날인 5월 5일까지 유흥시설에 대해 기존 ‘운영 중단’ 권고를 ‘운영 자제’로 낮췄습니다. 시설 입장시 작성하는 명부 등도 구멍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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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수면방? 성매매 업소처럼 소수의 음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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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의 전제 조건은 '밀접접촉'입니다. 클럽발 유행도 "성소수자의 ‘문란함’ 탓에 집단감염이 발생했다"는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일부 확진자가 성소수자 클럽과 남성 동성애자가 이용하는 수면방(블랙수면방)에 다녀갔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죠.
밀실팀이 만난 성소수자들은 몇몇 개인의 '일탈'이 성소수자 전체의 이야기인양 확대되고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A씨는 “성소수자 중에도 블랙수면방이 어디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고, (성소수자 사이에도) 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런데도 ‘게이들은 수면방에 가서 단체 성행위를 한다. 그런 종족이다’라고 말하는 건 문제”라고 덧붙였습니다. C씨도 “(이성애자들를 위한) 유흥촌과 성매매업소가 있는 것처럼 성소수자의 '음지문화'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일부 네티즌들이 연예인 홍석천씨를 비난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소수자로서의 입장을 밝히고 사과하라는 요구 자체가 '황당하다'는거죠. C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홍석천씨가 (성소수자) 대표 주자니까 그 사람에게 성명문 발표하라는 게 '너희가 잘못했다. (코로나19) 검사를 독려해라' 이런 느낌이라서 씁쓸했죠."
전문가들은 특정집단의 성향이 집단감염 위험을 키우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밀폐된 공간에 다수가 모여서 밀접접촉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들이 집단감염의 조건”이라며 “성소수자라는 사실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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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팅은 진행중, 잘못하면 사회적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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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클럽' 등을 부각한 보도에 대해 일각에선 코로나19 방역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성소수자들이 ‘아웃팅’(성정체성이 타의로 공개되는 일)을 우려해 방문 사실을 숨기거나 검사를 회피할 수 있다는 거죠. 정부가 불법체류 외국인 에게 무료 검사 지원 등을 약속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실제로 밀실팀이 만난 성소수자들은 “블랙수면장, 게이클럽이라는 낙인이 찍히지만 않았어도 적극적으로 검사 받으러 갔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성소수자 전용 공간에 관한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엔 확진자가 다니는 회사명, 얼굴사진 등도 퍼졌고요.
그 후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선 ‘확진자가 회사에서 잘렸다’ 같은 말이 돌았다고 이들은 전했습니다. C씨는 “이런 상황에서 아웃팅은 조직 안에서 이단아로 찍힐 수 있는 사회적 매장”이라고 했습니다.
성소수자들은 아웃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D씨(27)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 게이로 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학창시절부터 겪어왔어요. 내가 어떤 사람한테 나의 정체성을 이야기할지 판단해서 말하는 건 그나마 가진, 어떻게 보면 되게 조그마한 권리인건데… 아웃팅은 사회가 말을 못하게 만들어 놓고 내가 선택해서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 행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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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동선공개 무조건 반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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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들은 확진자 동선 공개 등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었어요. 방역을 위해선 동선 공개에 적극 협조해야하지만 방법을 달리 했으면 한다는 거죠. 최근엔 성소수자 이동 경로에 적극 대응하라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비공개 회의 발언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동선공개는 방역을 위해 필수지만 개인의 동선을 공개하는 게 아니라 어떤 장소에 확진자가 다녀갔다 정도로 공개해도 충분하지 않을까”(A씨)
“확진자 발생된 공간에 있었다면 따로 연락온다고 들었다. 철저하게 방역당국이 관리하는데 성소수자의 동선을 공개해 공격받을 빌미를 제공해야할까”(D씨)
인터뷰가 끝날 때쯤 A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소수자는 주변에 정말 많다는 걸 꼭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소수’라는 의미는 사회적 약자라는 의미이지 그 수가 소수라는 의미는 아니거든요. 친구, 심지어 내 가족 중에도 있을 수 있어요. 본인이 무심코 뱉은 말로 성향을 숨기고 사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길 바랍니다.”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확산에 빚어졌던 성소수자 혐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연수·박건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영상=백경민·이지수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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