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상에 딱 하나뿐”···‘새옷 반값’ 헌옷에 꽂히다
젊은층 몰리는 중고 의류 시장
싼 가격으로 ‘득템’, 개성 표출
'의식있는 소비' 욕구도 만족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23일 서울 성수동 ‘밀리언 아카이브’는 색다른 옷을 사려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99㎡(30평)의 뻥 뚫린 실내에는 4000~5000여 벌의 ‘어글리 스웨터(ugly sweater)’가 빼곡했다. 루돌프·산타클로스·눈사람 등 크리스마스 관련 디자인이 들어간 어딘가 촌스러운 스웨터들이다. 외국에선 연말에 평소 입지 않던 우스꽝스러운 디자인의 스웨터를 일부러 차려입고 모이는 ‘어글리 스웨터 파티’를 연다. 어글리 스웨터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더 재밌는 건 이곳에서 파는 스웨터들이 모두 누군가 한 번쯤 입었던 중고 의류들이라는 점이다. 밀리언 아카이브는 매달 다른 컨셉트의 중고 의류들을 모아 상점을 여는 팝업 마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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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찾은 최지원(27)씨는 “다 비슷해 보이는 SPA(자라·H&M등 제조유통일괄형) 브랜드 옷들이 아닌 특색 있는 옷을 찾으러 왔다”며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고 했다. 이도희(17)씨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 빈티지 옷을 좋아하는데 동묘가 아닌 성수동으로 온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20~30대 여성들로 보이는 손님들은 대부분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옷들이라 매력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밀리언 아카이브의 정은솔(31) 대표는 “올해 초에는 블라우스 숍, 5월에는 원피스 숍을 열었다”며 “성수동의 재미있는 숍이라고 입소문이 나서 주로 10~20대 분들이 삼삼오오 가게를 찾는다”고 했다. 11월 말부터 한 달 간 열린 ‘크리스마스 스웨터 숍’에는 하루 평균 200~300여명씩 모두 1만 명 넘게 이곳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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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동교동과 망원동, 강남구 논현동 세 곳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마켓인유’ 역시 중고 의류 판매점이다. 소비자들에게서 직접 매입한 옷 중 깨끗한 옷들을 골라 판매하는데 규모가 꽤 크다. 매장도 일반 중고 의류 업체와 달리 깔끔하고 마치 새옷처럼 말끔한 옷들로만 채워져 있다. 중고 의류 매장인줄 모르고 들어오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다. 물론 가격은 중고 의류 시장으로 유명한 동묘보다 비싸다. 하지만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옷을 새옷 가격의 절반 이하로 살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다. 마켓인유의 김성경 대표는 “얼룩이나 하자는 물론 트렌드에 맞는 옷인지 체크할 정도로 까다롭게 매입한 중고 의류만 모아 놓은 편집숍”이라며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제품을 ‘득템’ 하려는 소비자들과 재사용·공유 문화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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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구제 스타일’ ‘빈티지 스타일’로 불리는 중고 의류 시장이 조금씩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얼마 전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은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1층에 브랜드 컨셉트 스토어 ‘솟솟상회’를 열었다. 상록수 로고를 한글로 표현한 ‘솟솟’ 글자를 활용해 뉴트로 분위기로 연출한 숍에선 코오롱의 과거 옷들을 둘러볼 수 있고 구매도 할 수 있다. 코오롱은 지난 10월 진행된 이벤트를 통해 고객들의 집에 잠자고 있던 아우터와 등산화 등 약 3000점을 기증받았고, 이 중 좋은 상품들을 엄별해 3만~10만원 정도로 판매한다. 새 제품과 섞여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중고 의류인지 모를 만큼 좋은 상태의 옷을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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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선 중고 의류 시장이 패션 업계 대세로 자리 잡는 중이다. 미국 온라인 중고 의류 유통 업체 ‘스레드업(thredUP)’이 발표한 ‘2019 리세일 리포트(재판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미국의 중고 판매 시장은 일반 패션 소매점보다 21배 빠르게 성장했다. 현재는 240억 달러(약 28조 3000억원) 규모지만 2023년까지 510억 달러(약 60조)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향후 10년 이내에 중고 패션 시장 규모가 패스트 패션 시장 규모의 1.5배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은 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빠르게 제작하고 빠르게 유통하는 의류를 말한다. H&M·자라·유니클로 등이 대표적이다.
중고 의류 시장의 주 소비층은 밀레니얼세대, Z세대라 불리는 20대 초 젊은이들이다. 미래에 최강 소비 권력으로 자리매김할 이들이 중고 의류를 찾는다는 것은 눈여겨 볼 만하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의류를 산다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지만 남이 쓰던 물건을 공유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는 의미다. 마켓인유 김 대표는 “소유보다는 공유에 익숙한 세대에게 중고 의류는 하나의 선택지일 뿐 특별한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뻔한 브랜드의 옷들이 아닌, 조합에 따라 자신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어 좋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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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중고 의류 매장은 일종의 보물찾기가 가능한 곳이다. 밀리언 아카이브 정 대표는 “미디어에서 패션 피플들이 빈티지 옷을 근사하게 코디하는 모습이 등장하면서 재미있고 독특한 디자인을 찾는 젊은이들이 몰린다”며 “특히 옷을 좋아하고 패션을 즐기는 이들이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중고 의류는 의식 있는 소비를 원하는 젊은층의 욕구도 충족시킨다.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던 ‘패스트 패션’ 대신 느리지만 가치 있는 ‘슬로우 패션’ 중 하나로 중고 의류가 주목받는 것이다.
중고 패션 시장의 장밋빛 전망에 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스레드업’ 보고서에선 패션 소매 기업 10개 중 9개 업체가 2020년까지 재판매 시장에 진입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지난 4월 H&M그룹은 중고 의류와 빈티지 제품을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스웨덴의 신생 중고 판매 플랫폼 셀피(sellpy)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H&M 그룹의 의류 브랜드 ‘앤아더스토리즈’ 온라인 사이트에 ‘프리-러브드(pre-loved·먼저 사랑받았던 제품)’ 섹션을 구축해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제품 수명을 연장함으로써 환경적 영향을 줄이고 소비자들에게도 도움을 주겠다는 설명이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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