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소화 못하는 주인장이 만들었다…속 편한 피자 비결
이택희의 맛따라기
나폴리에서 들여와 설치한 일체형 장작 화덕의 420~450도 고온에서 피자를 굽고 있다. [사진 이택희] |
그는 밀가루 음식 소화장애가 있다. 먹으면 뱃속에 가스가 찬다. 그런데 생업이 피자이올로다. 나폴리 피자 전문점에서 피자를 굽는 주인이다. 본업은 대장장이(금속공예가)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피자는 먹고서 속이 편하고, 소화에 부담이 없는 것이다. 동병상련, 피자를 두 조각 이상 먹으면 체한 듯 생목이 오르는 사람으로서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 가회동 ‘대장장이 화덕피자’ 이재성(56) 대표다.
세계피자장인대회서 만점 받아 우승
올 들어 그곳을 세 번 찾아갔다. 반죽 개선 실험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다. 매번 다른 피자와 파스타를 먹어봤다. 나폴리피자장인협회(APN) 2018년 인증점포인 이곳은 나폴리 전통 피자를 참나무 장작 화덕에 정통으로 굽는다.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나폴리 밀가루로 손 반죽, 최대한 동그랗게 빚은 도우(그는 빵이라 했다)는 지름 31~32㎝, 두께는 테두리 2.5㎝과 중심부 0.3㎝, 이탈리아 남부 치즈, 420~480도 화덕에서 토핑이나 밑바닥이 타지 않게 굽기(대략 90초) 등이다. 그 상징이자 원조 피자는 마르게리타와 마리나라.
‘대장장이 화덕피자’에서 구운 나폴리 대표 피자 마르게리타 엑스트라. [사진 이택희] |
세 번째 갔을 때 이 대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값은 가장 싼 마리나라 피자를 권했다. 치즈가 들어가지 않는 가장 기본형 피자다. 얇게 편 반죽 위에 토마토를 익혀 으깬 소스, 마늘 편,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오레가노(허브 가루), 바질 잎을 올려 굽는다. 원물에 가까운 재료 자체가 지닌 맛의 어우러짐을 추구하는 음식이다. 주재료는 거의 나폴리 지역 제품을 쓴다.
그는 이 피자로 2019년에 APN 주최 세계피자장인대회(Trofeo Caputo) 인터내셔널 부문에 출전했다. 3인 한 팀으로 각자 구운 피자 점수 총점으로 순위를 가리는 국가대항전이다. 그는 굽기 까다로운 이 피자로 만점을 받았고, 한국팀은 우승했다. 토핑이 적어서 타지 않게 굽기가 어렵다. 굽는 도중 오래 발효한 반죽 복판에 기포가 둥그렇게 일어나면 바로 타버린다. 대회에서 이러면 실격. 굽기가 까다로워 현지인들도 출전을 꺼린다.
삽을 움직여 피자가 고루 익도록 돌리며 화덕 안을 들여다보는 그의 눈길은 날카로웠다. 온도와 시간이 만나는 절정의 순간을 잡아채려는 자세다. 완성품을 접시에 담고는 표정이 풀어진다. “잘됐습니다. 토마토소스 수분을 빨아들인 테두리가 익으면서 자연스러운 황금빛 그러데이션이 생기고, 토핑도 타지 않아 색과 향이 잘 살아있습니다”라며 만족했다.
피자 절반, 세 조각을 먹었다. 토마토·마늘·바질 향과 맛은 올리브오일을 타고 토닥이며 다투고, 부드럽고 쫄깃하면서 바삭한 빵이 포근하게 감싸는 하모니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날 먹은 피자가 다섯 조각이다. 다음날 속이 불편하지 않았는지 묻는 이 대표 문자가 왔다. 문제없다고 답했다. 앞의 두 차례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자신이 구운 피자는 소화를 잘한다고 한다.
소화 잘되는 피자를 향한 도전과 노력을 멈추지 않는 그가 가장 공들이는 작업은 반죽 발효다. 계절과 배합성분에 따라 조절하지만, 기준은 48시간이다. 밑반죽을 24시간 발효 후 같은 양의 본 반죽과 섞어 반죽기로 치댄다. 250g씩 나눠 통에 담아 실온 2시간, 냉장 20시간 발효 후 꺼내 실온에서 다시 2시간 발효해 굽는다. 구울 때 반죽 온도가 18~22도면 피자가 가장 맛있게 나온다.
최근 반죽 실험은 천연발효종이다. 밀가루 3㎏에 3g씩 넣던 이스트를 1g으로 줄이고 나머지는 천연발효종을 배양해 대체했다. 빵이 더 쫄깃하고 풍미가 깊어졌다. 반죽 노화가 지연돼 유효수명이 길어졌다. 반죽 노화는 빵 질감과 직접 관련이 있다. 반죽이 젊어야 화덕의 고온을 잘 견디고 잘 부풀어 쫄깃·폭신하게 구워진다. 천연발효종이 글루텐 분해 작용도 하는지 소화가 잘된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이 대표는 “천연발효종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놀라운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진전이라는 말은 목표에 한층 가까이 갔다는 뜻이다. 일반 밀가루 반죽으로 구워도 글루텐 소화장애가 없는 피자를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본업 금속공예로 문화재청장상 받아
이탈리아에서 제작해 온 화덕에 구울 피자를 넣는 이재성 피자이올로. [사진 이택희] |
피자와 인연은 1995년 시작한 대장장이 본업의 곤곤함 틈새로 우연히 찾아왔다. 수입이 불안정해 미래를 걱정하던 2007년 어느 날 삼청동 공방에 놀러 온 친구가 이런 건 어떠냐며 대학로로 인도했다. 한국 최초의 본격 나폴리 피자집 ‘디마떼오’에서 화덕피자 굽는 광경을 한참 지켜봤다. 불 온도와 굽는 시간을 맞추는 일이 대장일과 비슷하고, 처음 봤지만 불 다루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바로 종로 피자집에서 2주일,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열흘, 나폴리에서 4주 현장을 익히고 2008년 11월 5일 피자집을 열었다. 화덕은 이탈리아 화산석을 갈아서 구운 벽돌과 패널을 들여와 직접 시공했다(2021년 일체형 완제품으로 교체). 운이 따랐는지 맛이 좋았는지 개업 얼마 후 ‘웨이팅’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 거기 동승하게 됐다. 요즘도 하루 4.5~5회전 손님이 몰린다.
본업에도 여전히 열심이다. 매주 이틀 휴일에는 홍제동 공방에서 금속공예 작업을 한다. 2021년에는 문화재청 주최 제16회 한국문화재기능인 작품전에서 철물공 분야 ‘고가구 장식’으로 전체 2위에 해당하는 문화재청장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음식 하기를 좋아했고, 남에게 해주는 게 더 좋았다고 한다. 어려운 사람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좋은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내는 생업이 천성과 맞아 그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 중앙일보 기자. 늘 열심히 먹고 마시고 여행한다. 한국 음식문화 동향 관찰이 관심사다. 2018년 신문사 퇴직 후 한동안 자유인으로 지내다가 현재는 경희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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