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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만난 맑고 평온한 자연...김보희 개인전 '인기'

금호미술관 전시 12일까지

입소문 타고 관람객 이어져

초록, 파랑...매혹적인 색채

27개 캔버스 초대형 작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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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4시, 서울 삼청로 금호미술관 밖에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20~30대가 특히 많았지만 40~60대도 적지 않았다. 혼자서 온 이들도, 엄마와 딸이 함께 온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여기에 줄을 서 30분의 대기 시간도 마다치 않은 이유는 하나, 한국화가 김보희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다.


5월 중순에 개막해 오는 12일 폐막을 앞둔 김보희 '투워즈(Towards)' 전시의 열기가 뜨겁다. 먼저 전시를 본 관람객들의 호평이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등 SNS을 타고 퍼지면서 갈수록 관람객이 늘고 있는 모양새다.


미술관과 갤러리를 가리지 않고 화제의 전시 현장에 종종 나타나는 방탄소년단의 리더 RM(김남준·26)도 이미 다녀갔다. RM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에 '중문' 연작 앞에서 찍은 자신의 뒷모습 사진을 올렸다.


주말 오후에는 50~100여 명이 줄을 서 평균 30분 정도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했고, 미술관 측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체온을 재고 방문객 연락처를 작성하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금호미술관 "국내 작가 전시로 역대급"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전시·공연 등을 찾는 이들이 이전보다 상당히 줄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전시에 대한 열기는 이례적이다. 금호미술관 측은 "관람객 수를 구체적으로 공개하기 어렵다"면서도 "이곳에서 국내 작가 한 명의 전시로 이렇게 관람객을 끌어모은 것은 역대급"이라고 귀띔했다. 오히려 "갈수록 관람객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반가우면서도 방역 때문에 매일 긴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김보희는 지난 50년간 자연 그림을 그려온 한국화 작가다.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2017년 정년퇴직한 후부터 제주에서 살고 있다. 지난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개관 1주년 기념전에 캔버스 27개로 완성한 초대형 작품 ‘더 데이즈(The days·2011-2014)’를 선보였고, 2018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멜라니아 트럼프와 김정숙 여사의 환담장에 그의 그림이 걸려 주목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에피소드가 지금 전시에 대한 관람객들의 열광을 다 설명해주지 못한다. 도대체 김보희 작품의 어떤 요소, 어떤 매력이 관람객들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살펴봤다.



①정원을 넘어서 낙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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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크기에, 색감에, 푸르름에 압도당한다." 김보희 전시를 한 찾은 한 관람객은 5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이는 이번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의 소감을 압축한 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그림의 색감 그 자체다.


푸른 풀과 나무, 바다와 석양, 꽃과 동물들이 초록과 파랑의 향연 가운데서 모두 존재감을 빛내고 있다. 초록과 파랑이 주 색감인 작품들은 차분하고 평온해 보이면서도 강렬하다.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1층에서 제일 처음 만나는 작품 '테라스'는 작가가 제주도 자신의 집 정원에서 보이는 풍경을 친근하면서도 신비스럽게 표현한 그림이다. 멀리 보이는 바다, 나무와 꽃, 의자와 테이블, 커피, 그리고 강아지 등이 있는 평온한 일상이 대형 화폭 위에 아름다운 판타지의 한 장면처럼 담겨 있다.


미술사학자이자 서울대미술관 관장인 심상용은 김보희 작품을 "객관적 재현과 상상적 재현이 양립"하는 공간으로 본다. 그는 이어 "김보희의 숲과 식물과 정원은 회복과 치유의 숲, 현실을 해독(解毒)해 사색의 삶을 되돌려 놓는 정원"이라며 "그곳은 김보희가 상상력으로 변형시키고 조율한 낙원"이라고 말했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도 김보희가 만들어낸 풍경은 "자연이라기보다는 작가가 만든 세계이자 심상의 풍경"이라며 "현실에서 발견한 대상에서 출발하였지만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풍광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②압도적인 스케일과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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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이번 전시를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에 비유한다. 탁월한 색채 감각과 압도적인 스케일로 회화의 매력을 일깨우고 있다는 점에서다. 엄마와 딸이 함께 와서 그림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특징 때문이다. 난해한 개념미술도, 어려운 추상화도 아니어서 모든 세대가 편안하게 '그림 본연의 멋'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김보희는 여기에 섬세하고 치밀한 디테일로 자신만의 개성을 더했다. 나뭇잎과 풀잎 하나하나에, 그리고 일렁거리는 수면에 섬세한 붓질로 싱그러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자연을 소재로 한 데다 규모가 큰 작품이 많아 관람객이 마치 그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관객들은 탁 트인 자연경관이 주는 감동을 미술관 안에서 색다르게 체험하며 전시장에서 만난 자연에서 위로받고 있다.



③캔버스와 동양화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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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처럼 강렬한 색채로 눈길을 사로잡지만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것은 김보희의 작품이 '캔버스에 오일'로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화를 전공한 김 작가는 대형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지만, 한국화 물감(분채)과 파스텔 등을 섞어 작업한다. 오랫동안 한지에 그림을 그려왔으나 10여년 전부터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오고 있다.



④자연의 순환, '시간'이라는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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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지하부터 지상 3층 총 4개 층 7개 전시실에서 모두 50여 점의 작품을 보여 준다. 집요할 정도로 초록의 향연에 몰두했던 작가는 최근 '중문' 시리즈에 도로와 자동차, 노을 등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소재는 더 폭넓어졌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일관돼 보인다. 바로 '생명'과 '시간'이라는 주제에 대한 탐구다.


김보희 작가는 지난 5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0대 때 양수리 풍경을 그리던 때나 지금이나 자연이 제게 경이로운 것은 마찬가지"라며 "열매 하나, 씨앗 한톨도 모두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들에 자꾸 끌리는 이유는 바로 이 안에 더 큰 에너지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립미술관장은 "김보희는 자연의 모습과 그 이면의 변화에 주목하고, 풍경 너머의 것을 이야기한다"면서 "그것은 자연 자체의 생명력이자 작가가 꿈꾸는 이상향"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2일까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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