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되는 시골의사로 26년…'코로나 헌터'된 문학소녀 정은경
코로나 헌터 정은경 질병청장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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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은 대개 오전 7시 출근해서 밤 12시 넘어 퇴근한다. 퇴근이랄 것도 없다. 질병청 옆 관사가 거주지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마찬가지다. 연초 코로나19 초기 때부터 이런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의 집에는 거의 가지 않는다.
요즘 정 청장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 코로나19가 이어지는데다 질병청 조직 만들기라는 큰 짐이 떨어졌다. 2,3대 청장이면 앞사람에 묻어가면 되지만 초대청장으로서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다. 조직 갖추랴, 사람 뽑으랴, 새 업무 방향 잡으랴 잠 자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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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사람에게 "사무관님" 존대
그래서인지 12일 청장이 된 이후에도 표정 변화가 별로 없다. 명실상부한 '방역 대통령'이 됐는데도 웃는 모습을 내비치지 않는다. 질병관리본부장이나 질병청장이나 차관급이긴 마찬가지지만 복지부 산하 본부장과 독립 외청장은 무게감이 완전히 다르다. 2009년 신종플루 이후 10여년 만에 어렵사리 질병청으로 독립했기에 다른 외청과는 탄생 배경이 다르다. 정 청장은 예의 바른 모범생의 전형이다. 주변에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면 한결같이 같은 답이 돌아온다. 지금도 아랫사람에게 "국장님" "사무관님"이라고 깍듯이 존칭을 쓴다. 일이 마음에 안 들면 버럭 화를 낼만도 한데, 그런 법이 없다. 그저 차분한 목소리로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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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때는 문예반 활동
정 청장은 서울대 의대생 때 문예반을 했다. 의대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한 적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대 의대에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했으니 맘만 먹으면 '꽃길'로 갈 수 있었다. 펠로(전임의) 과정 대신 보건학 석사, 예방의학박사를 하면서 '공공 의사'로 방향을 틀었다. 1994년 경기도 양주군(지금은 양주시) 보건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정 청장과 같은 가정의학과 의국 후배 의사는 "공공분야 의료에 헌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당시 보건소에 근무하던 중 전염병 신고 기준을 만들었는데, 이런 게 소문이 났다. 98년 국립보건원(질병관리본부의 전신) 훈련부 역학조사담당관(연구관·5급)으로 특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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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초려 끝에 복지부 과장
정 청장을 뽑은 이종구 전 질병관리본부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2000년 홍역이 번지면서 680만명 예방접종 계획을 세웠다. 당시 정 담당관이 예방접종지침을 깔끔하게 만들더라"고 회고한다. 정 청장은 2006년 보건복지부 본부로 자리를 옮겨 혈액장기팀장을 맡는다. 노연홍 당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본부장(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은 "삼고초려(三顧草廬·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참을성 있게 노력함) 끝에 어렵게 국립보건원에서 복지부 본부로 데려왔다"고 말한다. 당시 에이즈 바이러스가 포함된 혈액을 수혈하는 등의 혈액 사고가 빈발하면서 의사 적임자를 물색하던 중 정 연구관이 레이더에 포착됐다.
하지만 정 연구관은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며 제안을 거부했다. 노 전 수석은 "의외였다. 국립보건원 연구관을 하다 본부에 와서 행정을 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세 차례 요청 끝에 설득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노 전 수석은 "중요한 일이고,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말로 설득했다"고 한다.
당시 정은경 팀장은 혈액관리위원회 간사를 맡아 6개월 여 만에 혈액관리 체계를 뜯어고쳤다고 한다. 노 전 수석은 "굉장히 빨리 일을 따라잡았고, 성실하고 끈질기게 처리하더라. 그 이후 대형 혈액 사고가 사라졌다. 당시 내가 인복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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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워 국민건강영양조사 틀 잡아
복지부에 와서 2009년 질병정책과장 때 신종플루에 성공적으로 대응했다. 응급의료과장을 하다 2014년 질병관리본부로 돌아갔다. 이종구 교수는 "내가 복지부 건강증진국장을 할 때 당시 정 과장이 국민건강영양조사의 틀을 새로 만들었다. 흡연의 기준, 비만의 정의, 고혈압의 지표, 당뇨병 정의 등을 꼼꼼하게 만들었다. 혈액은 언제 어떻게 뽑아서 테스트 어떻게 할지를 정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옛날에는 다 밤새고 그랬다"고 회고한다. 국민건강영양조사는 한국 보건정책의 정수를 보여주는 기초 통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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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메르스 징계에도 "할말 없다"
2015년 메르스는 정 청장에게는 매우 아픈 기억이다. 당시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을 맡고 있었는데, 주무국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간에 대타로 징발됐고 매일 브리핑 단상에 섰다. 당시 차분한 브리핑으로 신뢰를 줬다.
하지만 메르스 종식 후 실패의 책임을 묻는 바람에 휩쓸렸고 정직 처분을 받았다가 나중에 감봉으로 한 단계 낮은 징계를 받았다. 당시 주변에서 "억울하지 않으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할 일을 할 뿐"이라고만 했다. 징계에 대해 말을 아꼈고 이의제기 같은 걸 하지 않았다.
그게 전화위복이 됐을까. 2017년 7월 질병관리본부장(차관급)이 됐다. 국장에서 차관급으로 2단계 점프했다. 역학조사관 충원, 진단검사, 동선 추적, 위기단계별 전략 등 신종감염병 대응의 기초를 마련했다. 2019년 12월 코로나19가 조짐을 보이자 조기 대응에 나섰고 준비한 카드를 착착 꺼내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정은경을 '코로나 헌터'라고 극찬했다. 이제는 한국의 감염병에서 정은경을 빼려야 뺄 수 없게 됐다. '돈 안 되는' 시골 의사의 길을 선택한 지 26년 만에 질병청장에 올랐다.
정 청장 남편도 서울대 의대를 나온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서울대병원 전공의 수련 동기로 알려져 있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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