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빈털터리" 아시아나 "점령군"…직원간 갈등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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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양사 직원들에게도 큰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8000억원 투입으로 인한 혈세 낭비, 특혜 지원 등 굵직한 논란에 가렸지만 이번 ‘빅딜’이 넘어야 할 가장 큰 과제가 결국 임직원 설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4일 항공업계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에 따르면 양사 직원들은 이번 합병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어떤 식으로든 일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고, 통합 뒤 기업문화 차이로 인해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란 불안감이 주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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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많은데 어쩌려고 인수”
대한항공에 근무하는 A씨는 “코로나 사태로 이미 직원 70%가 순환휴직 등 휴업을 하고 있다. 4개월 연속으로 쉬는 사람도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똑같은 사업을 하는 회사를 인수한다면 결국 휴직 다음에는 인력감축이 아니겠나”라고 걱정했다. 대한항공에 20년 가까이 근무한 B씨 역시 “아시아나는 수익 구조나 부채 상태나 모두 좋지 않은 회사인데 어쩌려고 인수를 하는지 의문”이라며 “정부가 아시아나를 살리겠다는 취지는 알겠지만, 나중에 (대한항공까지) 모두 안 좋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소 거친 불만도 터져 나온다. C씨는 “한 마디로 코로나로 우리 식구들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가진 게 하나도 없는 객을 들이는 모양새”라고 했다. 이어 “나중에 사람을 줄이게 되면 아시아나 직원들이 가만히 있겠나. 그러면 정부의 지원 의무조항 등을 들이밀 거고 회사를 (정부에) 통째로 뺏기는 거 아니냐는 말들이 나온다”고 했다. 지상근무 직원 D씨는 “코로나로 항공업이 어렵지만, 대한항공 정도면 혼자서도 다시 회복하고 성장할 수 있다”며 “중복노선, 업무중첩 부분이 많은 데다 합병을 하면 서로 색깔이 확연히 달라 문제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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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결국 점령군 올 것”
아시아나항공 분위기는 더욱 좋지 않다. 직원 E씨는 “아시아나는 흑자기업이었다가 금호타이어, 건설 등의 부실 이유에 희생되면서 어려워진 것”이라며 “자체적으로 경영을 못 해서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부실기업 취급을 받는 게 맘 아프다”고 토로했다. 그는 “직원들은 10년 넘게 성과급 포기하고 회사 살리자고 보상도 없이 감내만 하고 있는데…”라며 감정에 복받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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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지만, 회의적인 전망이 많다. 아시아나 내부에선 벌써 ‘(대한항공이) 점령군으로 올 것’이란 말이 나온다. 직원 F씨는 “인위적으로 자르지는 않아도 직급 안에서 롤이 없어지고, 국제선 직원을 국내선으로 돌리고, 휴직을 시키고 하는 등 얼마든지 나가게 하는 방법은 많다”며 “주변에 퇴직금, 위로금 주면 나가야 하나 고민하는 동료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업무가 겹치는 동종업계 통합이니 3년 뒤 아무도 모른다. 구조조정 없다는 말을 솔직히 누가 믿겠나”라고 했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가 언제 완전히 종식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연감소분 만으론 필요한 인력 감축 분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처음에야 피인수 기업 사람을 대표로 임명하겠지만 그다음에는 최고재무책임자(CFO)-인사-마케팅 이런 순서로 인수기업 인력이 오는 게 수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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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문화 '화학적 결합'이 난제
또 다른 아시아나 직원은 “대한항공은 팀제로 움직여 누구 밑에 들어가느냐가 중요하지만, 아시아나는 스케줄 팀이 짜주는 대로 비행하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다”며 “팀제가 도입되면 아시아나 출신들은 적응이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화물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항공산업은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에 매우 중요해 산은이 지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현실적으로 부실화된 기업 인수·합병의 경우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근로자 감축 최소화를 포함한 성공적인 PMI(인수 후 통합 전략)를 이행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현대차와 기아차처럼 상당 기간 동안 두 회사를 독립된 회사처럼 운영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고 조언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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