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50대로 보더라"…90세 가천대 총장이 밝힌 인생의 기적
최근 회고록 『길을 묻다』 출간
최근 회고록 『길을 묻다』 출간
최근 회고록 『길을 묻다』를 출간한 가천대 이길여 총장. 김충식 특임부총장과의 대담 형식 안에 자신의 인생의 길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김현동 기자 |
가천대 이길여 총장은 병풍 같은 사람이다. 일종의 배경처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수많을 일을 이뤘고 그만큼 알려졌다. 최근 평생을 돌아본 회고록을 냈다. 제목이 중의법인데 『길을 묻다』(샘터)이다. 누구에게나 인생길은 초행길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길에 대해 묻는다. '길'은 맨주먹으로 시작한 이 총장이 오늘날 일군 1500병상의 종합병원 이름이기도 하다. 가천대 길병원 말이다.
이 총장은 인터뷰 중간에 "내가 해낸 모든 일이 기적 같다"고 했다. 시인 김종삼(1921~84)식으로 말하면 인생의 길을 살아온 기적은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는 날들이 온다. 1932년생인 이 총장은 임플란트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모두 자기 치아라는 것이다. "인간은 남들이 하는 건 뭐든지, 반드시 할 수 있다"며 기자를 주눅 들게 했다. 총장, 병원장 이길여가 아닌 인간 이길여를 만났다.
Q :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젊음을 유지하시는 것 같다.
"사람들이 항상 궁금해하는데, 나이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우리 병원에 내 주치의가 몇 명 있는데 그들은 내가 아직도 40, 50대 같다더라."
Q : 치아도 건강해 보이는데 임플란트 같은 건 안 하셨나.
"전혀. 젊었을 때 이빨 예쁘다고 건치 대회 나가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Q : 2006년 중앙일보에 연재한 회고록('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이후 17년 만에 회고록을 새로 냈다. 두 회고록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2020년 국내 대학 최초로 AI 학과를 만들었다. 원래는 정부에서 AI 대학원 개설을 지원한다고 해서 소집한 대책 회의 자리에서 내가 순간적으로 아예 학부부터 만들자고 했더니 다들 좋다고 해서 바로 TFT가 구성됐다. 이듬해 신입생을 뽑았다. 다른 대학은 이렇게 빨리 못한다. 새로운 학과를 만들려면 다른 과 정원을 줄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교수들 합의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역시 국내 대학 최초로 배터리공학과를 개설해 첫 신입생을 받는다."
Q : 대학 발전 방향에 대한 소신이 확고하신 것 같다.
"학생들이 점점 줄어드는데 10년, 20년 후를 내다보지 못하고 안일하게 있다가는 학교 망한다. 학생들에게 첨단을 가르쳐야 한다. 2007년 경원대와 통합할 때 당시 경원전문대는 매년 150억 원을 벌고 있었다. 그 돈 남겨서 뭐하나. 아이들한테 써야지. 그런데 전문대학도 좋지만 취업에만 매달리게 하기보다 더 질 좋은 공부를 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경원대와 통합했고, 결국 가천의대와 합쳐 지금의 가천대가 됐다."
Q : 대학 발전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과 실천은 다른 문제인데.
"인간은 남들이 하는 건 뭐든지, 반드시 할 수 있다. 여자는 교육도 안 시키는 일제 시대 때 태어나 지금까지 기적 같은 성공을 내가 이뤘는데 학교 통합은 왜 못 해, 생각을 바꾸자, 할 수 있다, 그렇게 자꾸 불어 넣었다."
Q : 학교도 병원도 덩치가 무척 커졌는데, 리더십 철학 같은 게 있나.
"우선 사람들이 나를 신뢰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나는 모든 걸 갖춰야 한다. 지식, 인간성, 디테일하게는 그런 것들을 갖춰야 하고 무엇보다 무한한 사랑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우리 학교를 10대 사학으로 만들려면 내가 제시한 방안밖에 없다는 내 주장에 진실성이 보이니까 통합이 가능했던 거다."
Q : 기적 같은 성공을 이뤘다고 했는데, 평생 어떤 일이 가장 기적적으로 느껴지나.
"내가 해낸 모든 일이 기적 같다. 일제 시대 때 최고였다고 하지만 시골의 이리여고에서 의사 되겠다고 서울대 합격한 일도 기적 같고, 미국 유학 가서 천국 같은 데서 지내다가 고국의 불쌍한 사람들 치료해주겠다고 돌아온 일도 기적 같다. 내가 결혼하는 거 보고 죽는 게 소원이라던 어머니를 뿌리치고 1978년 전 재산 다 바쳐서 병원을 법인화 한 일도 기적처럼 느껴진다. 30대 젊은 나이에 통통배 타고 무의촌(無醫村) 섬을 찾아다니며 무료 진료하겠다는 착한 생각을 한 것도 기적 같다. "
Q :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 가운데 못 한 일도 있나.
"그런 건 없는 것 같다. 굉장히 어려웠지만 하고 싶은 일은 다 한 것 같다."
Q : 그렇다면 평생 실패가 없었나.
"내가 모든 일에 긍정적이어서 그렇지 실패가 왜 없었겠나. 많은 실패가 있었다. 그러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고 바람을 맞은 거라고 생각하고 뚫고 나갔다. 96년 정부가 우리만 의대 신설 허가를 내주지 않았을 때 실망이라는 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은 센 바람이야, 라고 여기고 재도전해 결국 해냈다."
가천대 이길여 총장의 회고록 『길을 묻다』 표지. |
Q :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치열한 열정. 아주 치열한 열정이다."
Q : 그건 타고나는 건가.
"타고나는 것 같다."
Q : 아쉬운 일도 별로 없을 것 같다.
"하고 싶은 게 아주 많았다. 춤도 추라면 잘 췄을 것 같고 노래도 하라면 잘했을 것 같다. 잡기 같은 것도 잘했을 것 같은데 시간이 없어서 못 했던 것이 조금 아쉽다."
Q : 결혼은.
"한 번도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금도 결혼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가 꿈 꾼대로 가는 거 같다. 내 친구 중에 결혼해야겠다고 한 친구들은 다들 좋은 남자 만나서 잘 먹고 잘산다. 그렇지만 자식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생과 걱정을 했겠나. 나는 혼자만의 일도 벅찬데 자식 걱정, 손자 걱정 못 한다."
Q : 스스로 인생에 점수를 매긴다면.
"생각해 본 적 없다. 여러분들이 평가해주셔야지. 내 일생의 어느 단면을 끊어도 행복하고 즐겁지 않았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Q : 붙잡고 싶어도 뜻대로 안 되는 게 행복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행복 아닌가."
Q : 또 한 번의 인생이 주어진다면.
"똑같은 길을 걸을 것 같다."
Q : 화제를 좀 바꿔보자.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대한의사협회에서 정원 늘리는 것을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나도 의사지만 현재 의대 정원은 옛날에 사람들이 병원을 안 가고 못 가던 시절 정원이다. 지금은 너나없이 툭 하면 병원 가서 건강 관리한다. 의료인들이 더 많이 필요해졌다.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고, 기왕 의대 정원 늘려 준다면 지금처럼 40명 정원 의대 가지고는 안 된다. 적어도 100명은 있어야지. 의대 운영하는 데 돈이 엄청 든다. 그걸 정부가 도와주지 않고 대학에다 떠넘겨 의대가 손해를 보면 결국 모두가 손해 본다. 의대 신설은 반대다. 기존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
Q :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 해법이 있을까.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과 함께 '세살마을'이라는 것을 만든 적이 있다. 아이가 생기면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예비 엄마 아빠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몇 년 하다 흐지부지됐다. 정착됐으면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 됐을 텐데, 너무 아쉽다."
Q : 독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된 나라라는 걸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른다고 하지 않나. 나이든 세대가 노력한 결과다. 앞으로는 세계에서 1등 가는 나라가 될 수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반드시 우리는 할 수 있다, 이런 자신감을 사람들이 가졌으면 좋겠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