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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에 꽃피는 생명…강릉 앞바다 해저 여행

KTX로 훌쩍, 동해안 스쿠버다이빙

경포·사천·영진…다이빙 명소 즐비

수심 30m 산호·말미잘 군락 장관

강릉시 폐선박 활용 해중공원 조성


말복이 지나도 폭염의 기세가 지칠 줄을 모른다. 바다가 간절하다. 해변에서 찰방거려선 성에 안 찬다. 깊은 바닷속을 유영하고 싶다. 동남아시아나 남태평양의 바다를 가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그래서 KTX를 타고 강원도 강릉으로 훌쩍, 당일치기 스쿠버다이빙 여행을 다녀왔다. 해양관광의 메카로 뜬 강릉에서는 서핑·낚시뿐 아니라 스쿠버다이빙도 인기다. 한해 2만 명 가까운 다이버가 강릉을 찾는단다. 동해는 바닷물이 차고, 해양생물도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해였다. 배 타고 10분만 나가도 산호와 말미잘 군락이 펼쳐졌고, 밥상에서나 만났던 볼락이 떼 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8월 13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상봉역에서 강릉행 KTX를 탔다. 당일치기 스쿠버다이빙이라니. 너무 가벼운 발걸음이 도리어 어색했다. 유튜브를 보며 지난해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딸 때 배웠던 기술과 용어를 되새겼다. 열차는 1시간 30분 만에 강릉역에 닿았다.

국내에서 공기탱크를 이고 바다에 뛰어드는 건 처음이다. 그동안 10번 이상 스쿠버다이빙을 해봤는데, 대부분 동남아시아 바다에서였다. 요즘의 스쿠버다이빙 인기는 급증한 해외여행 인구와 관련이 깊다. 필리핀 세부, 미국령 사이판, 일본 오키나와(沖?) 등 사시사철 따뜻한 바다로 저비용항공 취항이 늘면서 스쿠버다이빙을 경험한 국내 인구도 덩달아 늘었다. 다이버들은 말한다. 한 번 맛 들이면 휴가 때 다른 생각이 안 난다고.


그래도 우리네 바다가 궁금했다. 제주도와 강원도 고성이 대표적인 스쿠버다이빙 명소이지만, 강릉을 선택한 건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가까웠다. 해외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면 24시간 뒤에나 비행기를 타야 한다. 기압 차 때문인데 그만큼 버리는 시간도 많다. 반면 강릉은 기차로 훌쩍 다녀오면 되니 장거리 운전의 부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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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앞바다의 물속 사정도 흥미로웠다. 물고기가 몰려드는 자연 암반도 많지만, 강릉시가 바다 생태계를 위해 투하한 인공 어초 덕분에 볼거리가 확 늘어났다. 말미잘과 산호가 어초에 들러붙으면서 물고기도 많아졌다고 한다. 동해는 7월보다 8, 9월의 수온이 높아 가을에도 스쿠버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수온 상승 때문에 열대 어종도 많이 찾아오고, 가을과 겨울 몸을 활짝 핀 말미잘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매니어 사이에선 알려진 사실이다.

점심을 먹고 다이빙 포인트가 약 20개에 달한다는 연곡면 영진해변으로 향했다. 인투더씨 다이브 리조트 오형근 대표가 걱정하듯 물었다.


“동해 다이빙은 처음이시죠? 오늘은 날씨도 맑고 수중 시야도 좋은 편인데 동남아 수준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이 차니까 호흡 조절도 잘하셔야 합니다.”


다부진 표정으로 “걱정 마시라”고 했지만, 동공이 살짝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함께 바다로 나간 김소희?배윤정(43)씨는 중급 다이버였다. 필리핀에서만 130번 이상 스쿠버다이빙을 했는데, 국내에서는 처음이라고 했다. 배씨는 “어젯밤 친구와 충동적으로 강릉행을 결정했다”며 “오늘 다이빙을 세 번 한 뒤 식도락을 즐기며 휴가를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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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장판처럼 잔잔하네요.”

신승훈 강사가 먼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영진항에서 뜬 배가 약 10분 만에 부표 앞에서 멈춰 섰다. 수심 28~30m 내려가는 ‘난파선 포인트’다. 그간 경험한 수심 10~20m의 동남아시아 바다보다 훨씬 고난도다. 아무리 잔잔하다지만, 가볍게 일렁이는 바다는 속내 모를 사람의 얄미운 미소 같았다. 호흡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조끼처럼 생긴 부력조절기(BCD)에 공기를 넣은 뒤 바다에 몸을 던졌다.


1m쯤 물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떠올랐다. 수온 20도. 강릉 낮 기온이 32도였던 터라 일단은 시원했다. 하강라인을 붙잡고 서서히 내려갔다. 코를 막은 채 숨을 내쉬는 동작 ‘이퀄라이징(압력 평형 기술)’을 반복했다. 수면 위의 배가 희미해지니 수온이 급격히 낮아졌고 조류가 세졌다. 냉탕에서 폭포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바닥에 다다르니 사정이 또 달라졌다. 수온이 조금 높아졌고 시야가 맑아졌다. 바다의 꿍꿍이란 이런 거였구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구조물이 보였다. 10여년 전 가라앉은 20m 길이의 어선이다. 강사가 몸을 수평으로 만들었다. 중성 부력이라는 기술이다. 강사를 따라 다이버 세 명이 비슷한 높이에 멈춰 섰다. 본격적으로 난파선 탐험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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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만 남은 배 위에 사각 어초가 쌓여 있어 언뜻 놀이터의 정글짐 같았다. 말미잘과 산호가 배를 뒤덮고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브로콜리를 닮은 섬유세닐말미잘 군락이었다. 말미잘 사이사이에선 노래미도 보였다. 횟집 수족관에서 봤던 녀석과 달리 팔뚝만 했다. 손바닥만 한 볼락이 한두 마리 보이더니 수백 마리가 떼 지어 다니는 광경이 펼쳐졌다. 난파선 안에 보물은 없었지만, 보석처럼 반짝이는 생명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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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분이 흘렀다. 압력계를 보니 70바(Bar)가 남아 있었다. 5분 안에는 물 위로 올라가야 했다. 다이빙 경험이 많은 김소희?배윤정씨보다 공기 소모가 훨씬 심했다. 강사가 신호를 보냈다. 아쉬웠지만, 밧줄을 붙잡고 수면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배로 올라와 다이빙 기록을 확인했다. 최대 수심 29m, 평균 수온 12.7도, 다이빙 시간 21분.

난파선이 스쿠버다이빙의 백미라는 이유를 알 만했다. 강릉시는 지난해 경포 앞바다에 800t급 어선 ‘앰버33’을 투하했다. 해중공원을 조성하는 차원에서였다. 올 겨울에는 사근진 앞바다에 2000t급 배를 빠뜨릴 예정이다. 모두 중급 이상 다이버만 접근할 수 있단다. 스쿠버다이빙 실력을 연마할 이유가 또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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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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