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뚱뚱하다, 그래서 뭐? … 외모지상주의에 반기를 들다
이영자 수영복·에일리의 고백
획일적 아름다움에 대한 비판
페미니즘,‘보디 포지티브’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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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한국의 대중문화가 최근 들어 ‘외모 지상주의’에 반기를 들고 있다. 여성 시청자 또한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그 선두에 선 건 방송인 이영자다. 지난달 9일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한 키워드는 ‘이영자 수영복’이었다. 올리브TV 예능 ‘밥블레스유’에서 멤버들과 단합대회를 떠난 이영자가 야외수영장에서 수영복으로 자신의 몸매를 드러낸 것이다. 이영자는 수영복 입은 모습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나보고 당당하다고 얘기하는데 그거 아니다. 나도 내가 무척 괜찮은 몸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끊임없이 져도, 사회가 갖고 있는 인식과 나의 자존심과 싸우고 있는 거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뚱뚱함’은 희화화의 오랜 소재였다. 코미디언들은 자신의 뚱뚱함을 내세워 자기 비하 개그의 소재로 삼길 주저하지 않았다. 뚱뚱한 여자친구를 안고 힘들어하는 남자친구, 뚱뚱한 여성이 살짝만 때려도 남성이 멀리 날아가는 식의 개그는 이제 클리셰가 됐음에도 여전히 반복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영자의 수영복은 그의 말처럼 “사회가 갖고 있는 인식과의 싸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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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 중앙대 사회학 교수는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새로운 여성운동 흐름이 형성되며 ‘성적 대상이 아닌 온전한 인간으로서 대접받겠다’는 여성 인식이 강화됐다. 트렌드에 민감한 대중 매체가 이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때문에 남성이 원하는 여성상을 깬 걸크러시가 주목받고, 남성 중심의 예능 시장에 여성 연예인들이 최근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최근 몇 년간 영국·미국의 시민 사회를 중심으로 보디 포지티브 운동(Body Positive·내 몸 그대로를 사랑하고 가꾸는 운동)이 진행됐고, 이를 발 빠르게 받아들인 광고·마케팅 영역에서 한 차례 붐이 일기도 했다. 미국 속옷 브랜드 ‘에어리’는 보정을 거치지 않은 평범한 몸매의 여성을 모델로 쓰며 이 흐름에 앞장섰고, 전년 대비 올해 상반기 매출액이 33% 증가했다. 국내에서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미투·탈코르셋 등 굵직한 여성주의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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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에 민감한 드라마 또한 외모 지상주의의 문제를 화두로 내걸었다. 웹툰 원작의 JTBC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은 작품 전반에 걸쳐 이 문제를 다룬다. 못생긴 외모로 고통받던 강미래(임수향 분)는 결국 성형수술을 하지만, 이번에는 ‘강남미인’이라는 비아냥에 시달린다. 강미래를 괴롭히는 자연미인 현수아(조우리 분)도 외모에 집착해 자신을 옥죄는 모습을 보여 결국 모두가 피해자라는 점을 드러낸다. 첫 회 2.9%(닐슨코리아 기준)였던 시청률은 최근 5.4%까지 올랐고, 드라마 인기에 힘 입어 재연재되는 웹툰도 인기 몰이 중이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매체에서 외모 지상주의를 조장하는 메커니즘은 여전하지만 기존 관습에 대한 반발과 페미니즘 등 흐름으로 비판적 인식이 형성되며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임명호 교수는 “기존 외모 지상주의 흐름에 대한 반대급부적인 성격이 있다”며 “어린 세대는 아이돌과 자신을 일치화하려는 욕구가 강해 외모 기준이 더 좁고 획일적 경향을 보인다. 아름다움에도 다양성을 제시하는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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