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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불렀잖아” 등떠민 아내···인천공항서 100일 잔 군의관

코로나 6개월, 인천공항검역소 주역들 ①100일 공항 숙식 김정길 군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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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같이 갈 테니 자원 해달라’고 후임 장교들을 설득했기 때문에 꼭 가야 했습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인 김정길(39·중령) 국군양주병원 진료부장은 지난 2월 27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역을 돕기 위해 인천공항 검역소에 자원했다. 사실 인천공항 지원자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의무사령부에 직접 요청해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넣었다. 자원 이유는 “국군대전병원 소속 군의관이 파견을 주로 갔는데 당시 그곳 진료부장인 내가 가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 6월 2일까지 100여 일 동안 김 중령은 역학조사와 검체 채취를 맡아 일했다. 3월에는 이란 교민을 데려오기 위해 전세기를 탄 적도 있다. 당시 이란에서 인종차별과 불특정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일어나는 등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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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도 김 중령은 자원해 이란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그는 “공항에 도착해 안내방송을 했는데 그 방송을 듣고 몇몇 교민은 눈물을 보였다”며 “교민을 데리고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신 커피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는 3~4월 미국, 유럽 입국자가 몰렸던 때다. 당시엔 식사도 제대로 못 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현장 인력들은 승객이 적은 시간대에 얼른 먹거나 아침에 샌드위치를 준비해 때워야 했다. 김 중령도 검역소 탕비실에서 남은 음식을 주워 먹은 적도 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한 달 파견 후 교대했지만, 그땐 교대도 하지 못했다. 김 중령은 “공항에 파견된 공중보건의보다 군의관이 보통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가 다 빠지면 인수·인계 등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며 “전역을 앞둔 장교들까지도 한명도 이탈하지 않고 남아 현장을 지켜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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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인천공항에서 찾아낸 후 6개월이 지났다. 그 기간 의료진과 함께 검역의 최전선에서 싸운 이들이 있다. 바로 군의관과 간호장교다. 지난 1월 말부터 군의관과 간호장교 20~35명이 한 달 단위로 인천공항에 파견됐다. 지금까지 126명이 공항 검역을 지원했다. 지금은 군의관 14명, 간호장교 10명, 행정장교 1명 등이 인천공항 검역소에서 일하고 있다.


100일간 검역 최전선에서 일하는 동안 김 중령을 지켜준 건 가족의 응원이었다. 그는 “딸(8)과 아들(6)을 홀로 키우며 나를 응원해준 아내가 가장 고맙다”고 말했다. 김 중령의 장인어른도 군인이었다고 한다. 2월 인천공항에 파견갈 무렵 집이 엉망이었다. 이사한 직후라 짐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군인 가정에서 자란 아내는 “나라가 부르면 당연히 가야지”라며 남편을 인천공항으로 밀었다.


그의 부모님 역시 “사관학교에 보냈을 때 이미 ‘국가에 맡긴 아들’이라고 생각했다”며 아들의 선택을 응원했다. 김 중령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실습 때 코에다 면봉을 수십 번 찔러넣었다”며 "군의관들 실습을 위해 내 코를 빌려준 경우도 수십 번 된다”고 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기억으로 김 중령은 딸(8)의 생일을 꼽았다. 지난 3월 20일 딸의 생일이었지만 그는 딸을 직접 보지 못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가족에게 옮길까 두려워서다. 그리운 마음에 새벽 2시 몰래 집에 갔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현관에 인형을 놓고 왔다. “손 소독제로 포장 박스 잘 닦아줘”라는 문자 메시지를 아내에게 남겼다.


김 중령은 2월~6월 초 100일 넘게 집에 가지 못하고 공항 근처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는 "몸은 피곤하지만 나라를 지킨다는 마음에서 항상 마음은 포근하다”고 말한다. 김 중령은 “많은 인력이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공항에서 검역을 받을 때 장시간 비행이나 까다로운 입국 절차 등 때문에 화가 날 수도 있지만 서로 이해하고 국가 비상사태를 넘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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