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과 IOC 위원 경쟁' 진종오 "사격장에 지각하는 꿈을 꿔요"
IOC 선수위원에 도전하는 권총황제 진종오. 사진 진종오 |
“요즘 경기장에 지각하는 꿈을 꿔요. 이런 적이 없었는데, 한 두 번이 아니라 똑같은 꿈을 5번 이상 꾼 것 같아요.”
지난 1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진종오 슈팅 아카데미’에서 만난 진종오(44·서울시청)는 꿈 얘기부터 꺼냈다. 그는 “꿈 속에서 심판이 ‘페널티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 깜짝 놀라서 깬다. 나에게는 슬픈 꿈”이라며 “아무래도 선수로서 은퇴가 다가오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진종오는 10m 공기권총(594점)과 50m 권총(583점) 본선 세계 기록 보유자다. 2004년 아테네 대회부터 2021년 도쿄 대회까지 올림픽에 5번 출전했다. 올림픽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를 딴 그는 양궁의 김수녕과 나란히 한국 올림픽 최다 메달을 보유했다. ‘권총 황제’라 불리는 그는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스포츠 외교관이라 불리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 위원’에 도전한다.
진종오는 “체육인으로서 선수들과 나라를 대표하는 IOC 위원이 되고 싶다. 스포츠 외교를 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8년 임기의 IOC 선수위원은 IOC와 선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 2016년 리우올림픽 때 IOC 선수위원에 당선된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의 임기는 내년에 끝난다. 대한체육회는 내년 열릴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을 대표해 선거에 나갈 IOC 선수위원 후보 1명을 뽑아야 한다. 진종오와 배구 김연경, 태권도 이대훈 3파전 구도다. 선발 시기와 방식은 미정이며, 여기서 뽑힌 최종 1인이 파리올림픽 대회 때 참가한 선수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을 노린다.
앞서 진종오는 2015년에 IOC 선수위원에 도전했지만 ‘국내 경쟁’에서 유승민에게 밀려 떨어졌다. 진종오는 “당시엔 포부가 부족했던 것 같다. 그 땐 현역 선수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다”며 “선수 위원 탈락 후 리우올림픽에서 꼭 메달을 따기 위해 이를 갈고 쐈다”고 했다. 진종오는 2016년 리우올림픽 50m 권총 결선에서 9번째 발에서 6.6점에 그쳤지만, 마지막 10발 중 8발을 10점대를 맞춰 금메달을 따는 대역전극을 썼다.
이달 성남시 분당구에 오픈 예정인 진종오 사격장에는 역대 올림픽 메달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진종오 |
IOC 선수위원은 당해 연도 혹는 직전 올림픽 출전 선수만 출마할 수 있다. 2021년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진종오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미 영어 의사소통 문제가 없는 진종오는 “캐나다 사람에게 일주일에 2번씩 레슨을 받고 있다”고 했다. 전 세계 스포츠 선수들과 보다 디테일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다.
‘현재 직함이 몇 개냐’고 묻자 진종오는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공동 조직위원장, 대한체육회 이사,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선수위원, 서울시청 플레잉 코치. 너무 바쁘다”며 웃었다. 특히 진종오는 ‘빙속 여제’ 이상화와 2024년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진종오는“주니어 올림픽이라고 보면 된다. IOC와 수시로 미팅과 회의를 하고 있다. 만약 IOC 선수위원으로 선발된다면 경험을 통해 좀 더 빠르게 업무 파악이 가능할 것 같다. 사전 공부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유승민은 리우올림픽 당시 발품을 팔아 IOC 선수위원에 당선됐지만, 파리올림픽의 경우 대회기간에 선거 활동을 못하게 바뀌었다. 국제대회에서 진종오가 총을 쏘고 있으면, 다른 나라 선수들이 몰려와 뒤에서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는다. 진종오는 “난 올림픽에 5번 참가했고, 국제사격연맹 선수위원도 2014년부터 4년간 하면서 해외 선수들과 교류를 많이 했다. 사격에서만 15종목 선수들이 참가한다. 종목 특성과 맞물려 워낙 꼼꼼한 편인데 행정 업무가 잘 맡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선수위원인 그는 “먹으면 안되는 감기약, 응급상황에서도 사용하면 안되는 금지약물 등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또 “IOC 선수위원은 공정해야 하지만, 사전에 경험을 토대로 숙지하면 편파판정 등이 발생했을 때 피해보지 않도록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고 했다.
이달 성남시 분당구에 오픈 예정인 진종오 사격장에는 역대 올림픽 메달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진종오 |
그렇다고 진종오는 총을 내려놓지는 않았다. 진종오는 “자존심 때문에 유지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달 중에 분당 서현역 근처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200평 규모의 사격장도 오픈한다. 민·관·군·경 합동훈련을 주관하는 특전사 출신 모임 ‘택티컬리스트’와 함께 전문 트레이닝과 영상 분석 등이 가능한 특급 시설을 만들었다.
진종오는 서울시청 플레잉 코치로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 진종오는 “요즘에는 디테일한 것까지 거의 다 알려주고 있다. 지난해 대표팀 코치 제의를 받았지만 IOC 선수위원 준비에 집중하기 위해 고사했다. 언젠가 대표팀 지도자도 해보고 싶은데, 오만가지 경험을 다해봐서 슬기롭게 잘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진종오는 “새벽에 깨면 휴대폰 메모장에 IOC 선수위원 포부를 적어둔다. 파리올림픽에는 행정가로서 6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고 싶다”고 했다.
성남=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