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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 능가 '부캐의 신'…시인·만화가 직업이 몇개?

카피라이터·만화가·시인·수필가·삽화가까지

덕질따라 N잡러된 ‘루나파크’ 홍인혜 작가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봉준호 영화감독, 가수 크러쉬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덕업일치’다. 덕질과 직업이 일치한다는 신조어다. 이들은 모두 ‘덕질’이 직업의 자양분이 됐다고 밝혔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그 일이 직업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도 아닌 다섯개의 분야에서 ‘성공한 덕후’가 있다. 카피라이터이자 만화가·시인·수필가·삽화가 등 N개의 직업을 가진 홍인혜(39)씨다.

루나파크 홍인혜 작가. /홍 작가 제공.

스스로를 ‘창의노동자’라고 표현한 홍 작가는 “발상이 필요한 일은 거의 다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현재 광고문구 구상 작업부터 신문에 칼럼 연재, 생활 만화 연재, 기업과 웹툰 콜라보레이션 작업, 강연, 책 출판, 시 발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이다.

카피라이터

#즐거움엔 끝이 없다. (tvN)

#의자가 인생을 바꾼다 (시디즈)

#교촌은 이런 치킨입니다 (교촌치킨)


한번쯤 들어봤을 광고 문구다. 모두 홍 작가에게서 나왔다. 홍 작가는 15년 경력의 카피라이터다. 어릴 적 광고인을 꿈꾸며 광고 동아리부터 시작해 광고회사 국장까지 지냈다. 그녀는 광고 회사에서 처음 창작 근육을 키웠다.


“타이핑 하는데 10초인 문장도 완성하기까지 며칠이 걸려요.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선 많은 고민과 사유가 필요하죠. 계속 바라보면서 머릿속에 넣어 두곤 해요. 무의식도 일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러다 보면 결국 떠오르는 때가 있어요. 광고일은 매번 새로운 일이나 다름 없어요. 광고주가 바뀌고 미션이 바뀌기 때문이죠. 어제까지만 해도 아파트 광고를 했지만 내일은 갑자기 생수 광고를 할 수도 있거든요. 늘 새로운 일을 한다는 각오로 노력했어요.”

만화가

루나파크 만화. /@lunapuch 인스타그램

루나파크 만화 작업 과정. /홍 작가 제공.

루나파크 다이어리. /홍 작가 제공.

홍 작가는 온라인에서 ‘루나’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2006년 ‘루나파크’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생활만화를 연재하던 것이 오늘의 ‘루나’ 홍 작가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루나 캐릭터로 다이어리 굿즈를 제작하고, 삽화가로 거듭나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루나파크 만화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와 귀여운 그림체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광고일을 하는 홍 작가가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창작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클라이언트가 있는 일이고,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제2의 장래희망이었던 만화가가 번뜩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자기 일상을 만화로 그려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에 그녀의 만화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늘 더듬이를 세우고 있었죠. 인상적인 사건을 겪으면 메모해뒀다가 퇴근 후 작업하는 식이었어요. 신기하게도 어제는 10명이 오던 홈페이지에 갑자기 다음날엔 50명이 오고 100명이 오고 계속 늘어났어요. 자연인이었던 사람이 만화가 이름을 얻어가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그러다 굿즈를 낼 수 있게 되고, 내가 만든 창작물이 성장해가는 과정이 재밌어서 힘든 줄도 모르고 했던 것 같아요.”

시인

월간 문학사상 2018년 10월호에 실린 홍 작가. /문학사상.

홍 작가는 2018년 10월 갑자기 ‘문학과 사상’ 표지에 등장했다.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면서 등단 시인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전까지 시집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홍 작가는 매일 짤막한 글을 쓰는 카피라이터가 시인과 비슷하다는 ‘착각’에서 시 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 전혀 다른 글이라는 것은 후에 깨달았어요. 누군가 시 수업을 추천해주면서 문학수업을 덜컥 듣게 됐죠. 그때 처음 시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쓰게 됐어요. 처음엔 전혀 시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상태였지만, 좋아하게 되면서 5년 동안 매일매일 시를 생각하고 쓰게 됐어요.”


홍 작가의 등단작은 ‘두두’다. 머리가 두 개인 존재에 대해 썼다. 제목은 머리가 두 개 달린 타조, 포켓몬에서 따왔다고 한다. 직장인이자 작가·예술가로 활동하는 자아에 대한 고백이 담겼다.


“내 안의 두 존재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나온 시였어요. 하나는 회사원으로써 사회생활을 감내하고 스스로를 건사해야 하는 자아라면, 다른 하나는 예술가로써 감성적인 자아를 표현했어요. 둘 중 어느 것도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쓴 이야기였습니다.”

”직업이 직업을 견인한다”

홍 작가는 수필가와 삽화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에세이를 출간하고, 교과서와 잡지, 어학 교재에 삽화를 그린다. 홍 작가의 직업은 모두 다른 장르같지만, 본질은 같다. 창작 활동이라는 점이다.

/홍 작가 제공.

/홍 작가 제공.

“저는 ‘직업이 직업을 견인한다’고 표현해요. 카피라이터로 짧은 글을 쓰는 습성이 집약적이고 정리가 필요한 생활만화에도 영향을 미쳐요. 또 광고를 만들 때 어떻게 하면 공감할지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때 익힌 근육이 영향을 미치기도 하죠. 에피소드나 감각을 그림으로 연출하는 것도 다른 부분에 영향을 주고, 서로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끌고 가는 거에요.”


다양한 일에 첫 발을 내딛고 꾸준히 지속하는 동력은 ‘덕질’이었다.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직업이 돼있다는 설명이다. 그녀의 덕질에는 자신이 만든 창작물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저는 ‘덕질불패’라고 정의했어요. 어떤 일을 좋아하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미친듯이 몰입해요. 처음부터 직업이라고 생각했으면 못했을 것 같아요.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것들은 아니었거든요. 광고회사 다니면서 어렵게 만화를 그렸던 것도 덕질 때문이었어요. 저는 제가 만든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좋아합니다.


하지만 덕질을 할 때도 떡밥이 있어야 한단 말이죠. 그래서 질릴 때면 매체를 바꿔보곤 했어요. 홈페이지에 올리는 게 지겨우면 인스타그램으로 바꿔보고, 손으로 그리는 게 지쳤다면 아이패드로 바꿔보는 식으로요. 대전제는 대중에게 내가 만든 뭔가를 어떠한 형식으로든 발표한다 이게 목표인거죠. 질리지 않으려고 스스로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홍인혜의 본캐와 부캐는 어떻게 다른가요?


“부캐인 루나는 일상을 그리는 만화가이다 보니 조금 조심스럽고 정제된 부분이 있어요. 지나치게 어둡거나 무거운 얘기는 조금 덜하게 되는 것 같아요. 루나는 좀 더 발랄하고 밝고 귀여운 느낌이 강하지만 본캐는 좀 더 복잡해요. 어둡고 나약한 부분도 섞여있죠. 그런 존재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부분이 시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마음에 물을 주고 밥을 주세요”

하지만 아무리 좋아서 시작한 일도 업이 되면 지치기 마련이다. 입사 6년차. 직장인으로 무르익고 만화가로도 궤도에 올랐던 시기, 그녀에게 번아웃이 왔다. 오랜 고민 끝에 2009년 ‘1차 퇴사’를 하고 영국으로 장기 여행을 떠났다. 광고계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각오로 떠난 여행이다. 그렇게 첫 에세이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가 나왔다. 이후 홍 작가는 다니던 직장의 부름으로 2011년 재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고비는 또 찾아왔다.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2019년 여름 ‘2차 퇴사’를 했지만, 곧이어 코로나가 터져버린 것.


“초반에는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죠. 낯선 생활에 적응하는 와중에 뜻밖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프리랜서에게 많은 영향을 주더군요. 잡혀있던 강연이 15개였는데 모두 취소됐었어요. 기업과 협업하던 웹툰도 대부분 취소됐고요. 위기감을 많이 느꼈죠. 그걸 교훈 삼아 현재는 규칙적으로 하는 일거리를 몇 가지 만들어놨어요. 올해는 프리랜서로 많이 안정이 됐고 생활도 적응된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슬럼프가 왔을 때 작가님만의 극복 방법이 있나요?


“오래 활동했지만 슬럼프 극복은 늘 어려운 것 같아요. 자력으로 저절로 낫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할까요. 어디를 다쳤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금방 새살이 뽕뽕 나는 것은 아닌 것 처럼요. 하지만 슬럼프를 덜 우울하게 견디는 방법은 있어요. 좋아하는 얘기 중에 슬럼프가 찾아오는 이유는 내 안목이나 심미안, 감각은 늘었는데 실력이 그만큼 못 쫓아왔기 때문이래요. 바꿔 생각하면, 보는 눈이 높아졌으니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고, 실력은 천천히 따라오는 거죠. 템포의 문제일 뿐인거에요. 이렇게 희망을 품고 이겨내려고 노력합니다. 정신승리.”

홍 작가의 작업 공간. /@lunapuch 인스타그램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최근에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쏭광고를 만들면 작사를 할 때가 많은데 운율에 맞춰 짧은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재밌더군요. 게다가 시를 쓰다보니 언어를 이미지적으로 다루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그것을 음악에 얹는다는 것은 더 없는 확산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음악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겨우 기타 수업 한 번 듣고 이런 말을 하네요. 하하.”


-작가님처럼 다양한 부캐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제가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지만, 시작은 정말 사소했어요. 홈페이지를 한번 만들어볼까 하는 작은 흥미와 결심이죠. 지금으로 보면 유튜브 채널이라도 만들어볼까 이런 거에요. 시도 수업을 들어볼까 해서 시작하게 된 것이고, 광고도 광고동아리가 시작이었죠. 하나하나 작고 사소한 일인데 만약 하지 않았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에요. 그러니까 굉장히 작은 일이라도 무조건 시도해 보는 것을 추천해요.


또 우리는 무언가를 싫어하고 혐오하기는 너무 쉬운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그만큼 좋아하고 아끼는 일이 새어나기는 힘들거든요. 그래서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곳에 꼭 물을 주고 밥을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무언가 배우는 강좌를 등록하는 것이 좋은 시작점인 것 같아요.”


글 CCBB 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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