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서빙, 매장 알바하며 8년을 준비했어요"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지난 10년간 데뷔한 아이돌의 팀명과 데뷔 날짜를 정리한 표가 화제였다. 이를 보면 10년간 총 400팀이 넘는 아이돌이 데뷔했다. 그러나 이 중 대중의 관심을 받아 유명세를 얻은 그룹은 1년에 고작 1~2팀뿐이었다. 1년에 수십 팀이 화려하게 데뷔하지만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소리다. 그만큼 치열하고 잔인한 세계다.
이 혹독한 세계에서 가수라는 ‘꿈’ 하나만을 위해 8년째 달려온 사람이 있다. 5년간의 치열한 연습생 생활을 견뎌냈지만 무대 위에 오르는 건 쉽지 않았다. 4번의 그룹 활동도 했지만 계약 문제로 번번이 해체 수순을 밟아야 했다. 주말이면 식당 서빙, 구두 매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악착같이 버텼다. 지쳐서 포기할 법도 한데 꿈을 위해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다. 걸그룹 ‘미니마니’로 데뷔를 앞둔 가수 유수현(30)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수 유수현. /jobsN |
유수현씨는 어렸을 때부터 춤추는 걸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TV에 나오는 가수들을 따라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댄스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가수의 꿈을 키웠다.
“어릴 때부터 끼가 많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흥이 많아 가수들의 공연 영상을 보고 따라 하는 걸 좋아했죠. 무대 위에 서는 걸 좋아해 학교 장기자랑이 열리면 꼭 참가했습니다.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도 무대를 휩쓸고 다녀 ‘새로 전학온 애 맞냐’는 말을 들을 정도였어요. 말 그대로 무대 체질이었죠.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여러 지역 무대에 참가하기도 했어요. 무대 위에서 춤 추고 노래하는 게 너무 좋아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반대하셨어요. 연예인이 되겠다고 하니 ‘왜 힘든 길을 가려고 하냐’면서 뜯어말리셨죠. 오디션 한 번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결국 부모님의 뜻대로 대학에 진학했다. 레저스포츠학을 전공한 후 병원에서 스포츠 재활 치료사로 일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마음 한쪽에는 아쉬움이 커졌다.
“대학에 간 후에도 부모님 몰래 댄스 스포츠 동아리에서 활동했어요. 작은 공연이었지만 무대에 오를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 행복했죠. 무대 위에 올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걸 알았어요. 더 늦기 전에 가수라는 꿈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대로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죠.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에너지를 주는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제 고집에 결국 부모님께서도 두 손 두 발 다 들으셨어요.
23살, 댄스 학원에 다니면서 전문적으로 노래와 춤을 배웠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늦은 편이었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했어요. 그러면서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어요. 보통 소속사 오디션에서는 노래와 춤 테스트를 봅니다. 무반주로 노래를 불러요. 템포가 빠른 곡, 느린 곡을 부르면서 박자와 리듬감, 음정 등을 평가받습니다.
걸그룹 '딜라잇' 활동 모습. /jobsN |
운 좋게 오디션에 바로 합격해 2013년 걸그룹 ‘딜라잇’의 새 멤버로 합류했습니다. 4인조 걸그룹이었어요. 멤버 한 명이 나가면서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했죠. 급한 상황이라 바로 합류해 활동을 시작했어요.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고, 아리랑TV ‘심플리 케이팝(Simply K-Pop)’ 등 음악 방송에 출연했어요. 대학교 축제도 다니면서 여러 무대 위에서 올랐죠. ‘이제 됐다. 머지않아 빛을 보겠다’ 싶었습니다.”
그런 그의 기대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활동한 지 1년쯤 지났을 때 회사로부터 갑작스럽게 팀 해체 소식을 통보받았다. 기존에 있던 다른 멤버들이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서 결국 팀을 해체하기로 한 거였다.
“규모가 작거나 신생 소속사의 경우 멤버의 재계약 문제로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그룹의 과반수 멤버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자연스레 팀 해체를 결정했죠.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솔로로 활동하기에는 소속사가 원하는 방향과 맞지 않았습니다. 하루아침에 팀 해체 소식을 듣고 회사를 나와야 했습니다.
이후 뮤직큐브 작곡가인 최갑원 대표님이 세운 N.A.P. 엔터테인먼트에 연습생으로 들어갔어요. 가수 소울스타, HIGH4, 소유미 등이 소속해 있는 곳이었죠. 테스트를 통과한 후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연습생도 계약합니다. ‘이중 계약은 안 된다’ 등 지켜야 할 내용이 담겨 있어요. 매일 12시간 넘게 연습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지하 연습실에서 정해진 스케줄 대로 노래, 춤 레슨을 받고 연습을 했죠. 체중 관리도 필수였어요. 식단 관리를 하고 몸무게를 매일 재야 했습니다. 그때 목표 몸무게가 44kg였어요.
당시 함께 연습하는 친구들이 10여명 정도 있었어요. 그중 나이가 가장 많았어요. 한 달에 한 번 월말 평가가 있었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경기도 남양주 집에서 새벽부터 나와 연습실에 가장 먼저 도착해 불을 켰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데뷔 조에 들 수 없었어요. 1년간 열심히 연습생 생활을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상심이 컸습니다.”
뷰티 모델로 활동하던 모습, 잡지 '캠퍼스플레이', '스위트' 등 표지 모델로도 일했다. /jobsN |
걸그룹 '메이퀸' 활동 모습(좌), 걸그룹 '플래쉬' 활동 모습(우). /jobsN |
아쉬움이 컸지만 그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카메라 앞에 서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뷰티·화장품 모델에 지원해 활동을 시작했다. 잡지 ‘쎄씨(CeCi)’ 립스틱 화보를 시작으로 대학생 잡지 ‘캠퍼스플레이’ 표지 모델, 고속버스 운송 업체인 동양고속에서 발간하는 잡지 ‘스위트’ 표지 모델 등으로 일했다.
그룹 '왈와리' 활동 모습. /jobsN |
가수 활동의 기회도 또다시 찾아왔다. 5인조 걸그룹 ‘메이퀸’에 이어 ‘플래쉬’라는 걸그룹
새로운 멤버로 합류했다. 지역행사 무대, 국군 방송, 군부대 공연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해외 무대에도 올랐다. 기쁨도 잠시였다. 활동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룹은 또 해체했다. 기존 멤버들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팀도 사라졌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던 찰나 2019년 혼성그룹 ‘왈와리’에 새 멤버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었다. ‘뮤직뱅크’, ‘엠카운트다운’, ‘쇼 음악 중심’, ‘쇼 챔피언’, ‘더쇼’ 등 국내 대표 음악 방송 무대에 서면서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유수현씨는 오는 6월 3인조 걸그룹 ‘미니마니’ 리더로 데뷔를 앞두고 있다. /jobsN |
최근 KBS ‘트롯전국체전’에 나가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KBS ‘트롯전국체전’ 방송 캡처 |
“당시 혼성그룹이 흔치 않았어요. ‘코요태’, ‘거북이’를 잇는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팀이었죠. 반응도 좋았어요. 공중파 무대에 처음 오르고 난 뒤 너무 좋아서 펑펑 울기도 했어요. 지방 행사, 라디오 방송 등에 출연하면서 1년간 쉴 틈 없이 일했습니다. 스케줄이 너무 많아 일주일 내내 쉬지 못하는 날도 있었어요. 스케줄이 일찍 시작하는 날에는 오전 4시쯤 샵에 가서 메이크업을 받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카니발 차를 타고 여수, 전주, 춘천, 안동, 보령, 청주 등 전국 곳곳을 다녔어요. 매일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어요. 그래도 정말 행복했습니다.
1년 정도 활동하면서 이렇게 꿈을 이루나 싶었는데, 또 같은 이유로 팀 해체를 겪었습니다. 다른 멤버들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재계약을 하지 않고 각자 갈 길을 가기로 했죠.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그룹 활동을 접어야 했습니다.”
또다시 방황의 시간이 찾아왔다. 허탈했고 허무했다. ‘난 왜 이렇게 운이 없지’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라는 생각뿐이었다. 주변으로부터 이제 그만 하라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팀이 없어지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도 무대에 올라갔을 때 느끼는 희열감과 벅찬 감정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무대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이 있어요. 수백 명, 수천 명 앞에서 노래하면서 관객들과 소통할 때 가장 행복해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으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뻐요.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도전했습니다.”
가수 유수현. /jobsN |
유수현씨는 현재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3인조 걸그룹 ‘미니마니’ 리더로 데뷔를 앞두고 있다. 오는 6월 2일 ‘멈춰’라는 곡을 발매한다.
“작년에 콘텐츠 제작사인 ‘CMG 초록별’의 오디션을 봤어요. 드라마 ‘크크섬의 비밀’ ‘뱀파이어 검사’ 등을 제작한 회사로 걸그룹을 기획하고 있었죠. 오디션에 합격해 데뷔를 목표로 1년간 연습생 생활을 했습니다.
지금까진 기존에 있던 그룹에 충원 멤버로 들어갔었어요. 그러다 보니 계약 등 외부적인 문제로 팀 해체를 자주 겪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번엔 처음부터 모든 걸 함께 시작하는 그룹이에요. 그런 점이 더 특별하고 애틋하게 느껴져요.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무대 경험을 더 쌓기 위해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인 KBS ‘트롯전국체전’에 나가기도 했다. 뛰어난 가창력과 무대 매너를 인정받아 1라운드에서 8개 팀의 심사위원으로부터 모두 합격 판정을 받기도 했다.
걸그룹 '미니마니'로 데뷔를 앞두고 있는 유수현씨. 글로벌 K-POP 플랫폼 ‘뮤빗’에서 5월 30일 신곡 ‘멈춰’로 쇼케이스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jobsN |
“항상 다른 멤버들과 함께 음악 방송을 하다가 처음으로 혼자 무대에 섰어요. 그간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답을 받는 것 같아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가수 조은새의 ‘하트하트’라는 노래를 불렀고, 반응이 좋았습니다. 가수 박현빈, 방송인 샘 해밍턴씨는 ‘다음이 궁금해지는 친구’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남진 선생님께서는 “이 시대에 맞는 친구인 것 같다”는 칭찬을 해주셨죠. 또 과거 그룹 ‘왈와리’로 활동할 때 행사장에서 자주 만났던 가수 조정민 언니는 ‘무대에서 볼수록 매력적인 친구’라고 말해줬어요.
1차전에서 ‘올 패스’를 받고 다음 라운드에 올라갔지만, 팀전이라 쉽지 않았어요. 가수 허각의 형인 허공씨, 서건후 군과 팀을 이뤘지만 서로의 음역대와 연령대가 너무 달랐어요. 허공씨는 발라드, 서건후 군은 판소리를 했었어요. 노래 선곡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이선희 선배님의 ‘인연’을 불렀지만 결국 팀 탈락을 했어요. 아쉬웠지만 큰 무대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데뷔를 앞두고 있는데, 일과가 궁금합니다.
“일어나자마자 헬스장에 가요. 보통 1시간30분에서 2시간 정도 운동합니다. 체력 관리와 체중 관리는 필수에요. 운동이 끝나면 바로 연습실로 갑니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12시간 넘게 연습해요. 가자마자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풀고, 안무 연습과 보컬 연습을 합니다. 또 다른 멤버들과 합을 맞추고 라이브 연습을 하면서 무대 준비를 합니다.”
-‘연습생은 배고프다’는 말이 있어요. 실제 생활은 어떤가요.
“연습생이다 보니 고정적인 수입은 없어요. 전속 계약을 하고 데뷔해도 바로 수입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회사에서 연습생에게 투자하는 부분이 많아요. 레슨, 음반·안무·뮤직비디오 제작, 메이크업, 의상 등 많은 부분에 돈이 들죠. 그러다 보니 보통 손익분기점을 넘긴 이후부터 정산을 받습니다.
그동안 생활비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충당했어요. 주말에 틈틈이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 헬스장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구두나 액세서리 매장에서 일하기도 했죠. 또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다른 멤버들과 다이어트 도시락을 한꺼번에 주문해 할인받기도 해요. 만원이라도 아끼려고 하죠. 직장을 다니면서 이미 자리 잡은 친구를 보면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꿈을 위해 버틴다는 생각이 컸어요.”
-포기하고 싶을 땐 없었나요.
“많았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정말 속상했고, 자책도 많이 했어요.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변함없이 지지해주시는 부모님 덕분이었어요. 어릴 땐 반대도 많이 하셨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제 꿈을 응원해주세요. 끝까지 믿어주시는 부모님이 계셔서 힘을 낼 수 있었어요. 부모님의 응원과 믿음에 보답하고 싶어요. 꼭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걸그룹 ‘미니마니’ 데뷔를 앞두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글로벌 K-POP 플랫폼 ‘뮤빗(Mubeat)’에서 5월 30일 신곡 ‘멈춰’로 쇼케이스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모습을 많은 분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요.
“다른 친구들보다 늦은 나이에 도전을 시작했어요. 어려울 때도 많았지만 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아직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차근차근 꿈을 향해 가고 있어요.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흘린 땀과 눈물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누구나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준비하다 보면 제게도 그 순간이 꼭 올 거라고 믿어요.”
글 CCBB 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