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백명의 백수들이 날마다 모여 벌이는 일
백수들의 회사, 니트컴퍼니 ‘니트생활자’
청년 무직자의 사회적 단절 방지
“백수도 주체적인 사람이에요”
NEET. 겨울에 입는 옷 소재를 뜻하지 않는다.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직장에 다니지 않고 교육이나 훈련을 받는 상태도 아닌 청년들을 의미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21년 3월 국내 니트족 규모가 43만6000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해당 수치는 2020년보다 24.2%(약 8만5000명) 증가한 수준이다. ‘00대학교 학생입니다’, ‘00 회사에서 다니고 있습니다’ 등 우리는 소속 상태로 자신을 소개하곤 한다. 즉, 무업자들은 스스로를 소개하는 것 조차 어려운 세상이다. 이에 무업자들도 사회 앞에 당당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한 회사가 등장했다. 바로 니트 상태에 처한 청년들을 위한 회사, 니트컴퍼니다.
일정 기간 동안 매일 출퇴근 인증을 하고 업무 수행 결과를 보고한다. 업무는 물 마시기, 단어 10개 외우기, 자기소개서 쓰기 등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동료 백수와 어울리며 무업 기간이 주는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월급은 없지만 직장인처럼 생활할 수 있는 곳. 백수들이 가상 회사 놀이를 하는 곳은 어떻게 등장했을까. 니트컴퍼니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니트생활자’의 전성신(37) 대표·박은미(39) 공동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니트생활자 전성신(오른쪽) 공동 대표와 박은미 공동 대표 ./jobsN |
뭐라도 되겠지? 조직생활 회의감에 6번째 퇴사
박은미 대표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그는 2006년부터 기업재단·공공기관·비영리 단체 등 총 6곳에서 10년 넘는 직장생활을 했다. 평균 근속 기간은 2년6개월. 첫 직장에서 4년을 다닌 이후 이직을 시작했다. 이직을 거듭할수록 근속 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반면 무업 기간은 점점 길어졌다. 전성신 대표 역시 사정이 비슷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차피 큰 돈을 벌기 어렵다면 조금이라도 사회에 기여하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영리 단체 3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이직할 때마다 박 대표는 좌절감을 맛봤다. 새롭게 다닐 곳을 정하지 않은 채로 그만뒀기 때문에 매 무업기간이 불안했다. 이력서 작성, 탈락의 연속이었다. 빠르게 무업기간을 끝내고자 업력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지원했다. 그렇게 7~8년간 한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새로운 업계에서 일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미술치료나 상담 쪽에 관심이 있었지만, 진입 문턱이 높아보였다. 옷에 관심이 있어 옷 장사에 도전했으나 500만원을 잃고 포기했다. 직업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는 걸 깨달으니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한다.
전 대표는 이직을 여러 번 했지만 무업 기간이 길지는 않았다. 일을 안 하면 수입이 없다는 불안감에 퇴직금을 다 쓰기 전 재취업을 하거나 단기 아르바이트도 했기 때문다. 두 사람 모두 평균적으로 한 조직에 3년 가까이 지내며 조직 안에서 자기 역할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작은 조직이다 보니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었다. 또 성과에 대한 보상을 받기에도 어려운 구조였다. 그렇게 박 대표는 마지막 퇴사를 하고 2019년 2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박은미 대표는 퇴사 후 니트생활자 블로그를 개설해 백수 모임을 기획했다. /니트생활자 블로그 캡처 |
우리 모두 언젠가 백수가 된다
- 마지막 퇴사 후 무엇을 했나요.
(박) “마지막 회사를 나오고 나서 결심했어요. 더이상 이력서를 쓰지 말자. 1년 정도 시간을 저에게 주기로 했죠. 당시 함께 퇴사한 사람이 있었는데 둘이 있으니 혼자보다 심리적 안정감이 있더라고요. 뭐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에 백수 기간 중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했어요. 함께 도서관을 가거나 강연을 들으면서 하나씩 이뤄갔어요. 문득 아예 프로젝트 형식으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백수들이 나 말고도 많을 테니, 함께 버킷리스트를 이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둘이 있을 때 느낀 일상 속 활력을 나누고 싶었어요. 그렇게 블로그를 개설해 ‘한양 도성길 걷기’ 모임 모집글을 올렸어요. 네이버 우리동네 코너를 활용했죠. 10개월간 10번의 모임을 가지며 100명이 넘는 니트생활자를 만났어요. 본격적으로 니트족 인식을 바꾸고 싶었던 찰나에 서울시NPO지원센터를 만나 니트컴퍼니를 만들었죠. 이후 아름다운재단·카카오 임팩트재단·다음세대재단·사랑의 열매·소풍 벤처스 지원을 받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어요”
- 니트생활자는 어떤 회사인가요.
(전) “무업 상태에 있는 청년들을 위한 커뮤니티 활동이에요. 가상 회사 놀이라고 할 수 있죠. 니트 컴퍼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자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회적 관계를 얻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무업 기간 청년들의 사회적 단절을 끊어내는 역할이에요. 현재 저와 대표 말고도 운영 매니저 2명이 함께 니트생활자를 운영하고 있어요. 니트생활자는 니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새롭게 바꾸고 싶어요. 생활자라고 붙인 이유도 같아요. 니트 상태이지만 ‘하고 싶은 일’, ‘잘 하는 일’을 고민하고 찾는 사람들인 거죠.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 말이에요.”
- 니트족은 개인의 문제일까요. 사회 구조의 문제일까요.
(박) “요즘은 사회적 환경 자체가 직업이나 직장을 갖기 어려워요. 니트생활자를 시작하고 느낀 건 의지가 있어도 능력을 펼치기 힘든 세상이라는 겁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단절되지 않고 기본적인 보장을 받으면서 살 수 있어야 해요. 다양한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자유롭고 안전한 사회적 환경이 필요해요. 따라서 저희는 현금을 지원하거나 직업을 알선해주지는 못하지만,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요. 무업 상태라고 조급해할 것 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만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요.”
- 백수 간 연대를 강조하시네요.
(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에요. 직장 생활이나 학교 생활을 할 때는 인간관계가 이미 존재해 잘 못느끼지만, 졸업이나 퇴사했을 때 깨닫죠. 우리는 모두 언젠가 백수가 됩니다. 잠시 일을 쉬고 있으면 사회적 관계망이 끊긴 기분이에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져요. 소외감과 위축감은 사람을 고립적으로 만들어요. 사회성도 떨어지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죠. 기간이 길어질 수록 우울감은 커져요. 사회적 관계망과 교류는 스스로를 알고 존재를 깨닫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요.”
니트컴퍼니는 채용 시 지원자가 임원에게 질문하는 거꾸로 면접을 진행한다. /니트생활자 인스타그램 캡처 |
“혹시 신천지는 아니죠?”
지원자가 임원을 면접 보는 회사
- 니트컴퍼니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요.
(박) “니트컴퍼니는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벽하진 않았어요. 직접 운영하면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보이면 반영하는 방식이죠. 시즌제로 니트컴퍼니를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정형화된 방식은 없어요.상황에 따라 온라인, 오프라인 진행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채용 인원을 정해요. 지금까지 총 500여명이 니트컴퍼니를 거쳐갔어요.
선착순으로 인원을 모집한 후 지원자가 임원을 대상으로 면접을 진행해요. 일명 ‘거꾸로 면접’입니다. 신천지가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다단계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지원자들에게 니트생활자의 최종 목표나 비전을 설명하기도 했죠. 면접이 끝난 후 지원자의 최종 결정으로 니트컴퍼니 직원이 정해져요. 단, 청년 무직자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만 39세 이하라는 제한을 두고 있어요.”
- 니트컴퍼니를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전) “무업 기간을 따로 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편이에요. 곧 졸업을 앞둔 사람도 있고 퇴사를 결심한 사람들도 있어요. 백수가 된지 3~5년인 사람도 있고요. 건강의 문제가 있거나 쉬고 싶어 퇴사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죠. 보통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이 가장 많아요. 사회진출을 해야 하는데 막혔거나 중간에 그만둬 공백이 생기는 시기죠.”
- 온라인과 오프라인 진행 방식 간 어떤 차이가 있나요.
(박) “오프라인은 출퇴근할 실제로 있어 회사 놀이는 다 해볼 수 있어요. 단 공간이 한정적이라 저희 제외하고 6명밖에 함께할 수 없었죠. 본인이 관심있는 직무 분야를 선택해 워크샵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을 했어요. 매일 점심도 같이 먹고 6시간 근무를 지켰죠.
온라인은 인원과 지역 제한이 없다보니 많은 인원을 받을 수 있어요. 이번에 진행 중인 시즌 5도 온라인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200명이 함께하고 있어요. 하지만 인원이 많은 만큼 세세한 관리가 어려워 본인 의지가 가장 중요해요. 그래도 주간회의와 종무식 때 열리는 전시회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합니다. 오프라인 모임도 정기적으로 가져요.”
- 니트컴퍼니도 회사 복지나 사내 문화가 있다고요.
(전) “한달이 지나면 원하는 사람에 한해 함께 산행을 다녀와요. 최근에는 나무심기 활동 신청자를 받아 사회공헌 활동도 했답니다. 개인 후원자의 도움으로 추첨을 통해 한달에 한번 직원의 가족 기념일에 꽃을 보내고 있어요. 사내 클럽도 있는데 과거에는 임원들이 직접 클럽을 기획해 진행했지만, 지금은 사원들이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어요. 벌써 18개에요. 영화 이야기를 나누거나 외국어를 함께 공부하거나 다양한 사내 모임을 운영 중이에요. 참, 월에 한번씩 쉴 수도 있답니다”
추첨을 통해 달마다 니트컴퍼니 사원의 가족에게 꽃을 선물하고 있다. /니트생활자 제공 |
이불 개기, 만보 걷기 등 업무 천차만별···
성취감과 소속감이 핵심
- 니트 컴퍼니 사원들의 직장 생활이 궁금해요.
(박) “사원들은 한 가지 업무를 정해 매일 업무 수행 여부를 인증해요. 취업 준비생들이 많아 공부나 자소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반이에요. 나머지는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해요. 이불 개기·만보 걷기·1일1필사·데일리룩 업로드 등 다양해요. 그외로는 첫날 진행하는 오리엔테이션과 주간회의, 종무식이 있답니다. 달마다 회식도 가졌는데 현재 코로나로 쉬고 있어요. 종무식에는 시즌 내내 진행한 업무 결과로 전시회를 진행해요. 또 90% 인증률을 달성하면, 키링이나 떡메모지를 담은 수료 기념 퇴사키트를 드리고 있어요. 매 시즌 인증률은 98%에 달해요. 수료증은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탓에 직접 드리지 못해 미니 상장 키트로 대신 했어요. 스스로에게 ‘크로아’상을 준 사원이 기억에 남네요.”
- 퇴사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전) “시즌 전후로 사원들에게 본인 상태를 알아보는 ‘안녕 지수’ 설문조사를 진행하는데요. 단 기간이라 엄청난 변화가 있진 않지만 사회적 관계나 외부 지지를 묻는 부분은 수치가 상승했어요. 또 마지막에 피드백이나 하고 싶었던 말을 적는 란이 있는데요. 고맙다는 반응이 많아요. 스스로 무업 기간을 부끄럽다고 생각했는데, 자기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는 걸 깨달았다고 해요. 생명의 은인이라며 격하게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작은 업무라도 100일 동안 꾸준히 해냈다는 사실 자체가 성취감을 가져다 주죠. 제2의 니트컴퍼니가 생기기도 했어요. 니트컴퍼니 퇴사자 27명이 모여 '애프터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다고 해요.”
- 가장 기억에 남는 참가자가 있나요.
(박) “한 명만 꼽자면 최근 일이 떠올라요. 사원 세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었는데요. 한 사원이 회사에서 겪은 부당한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네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하던 중에 조용히 듣고만 있던 한 친구가 눈물을 엄청 쏟더라고요. 본인에게 직접 한 위로는 아니었지만 마음에 와닿았었나 봐요. 이렇게 동료들과 공감하고 소통을 하면서 용기를 다시 내는 경우가 많아요.”
퇴사자에게 지급하는 퇴사 키트 사진. /니트생활자 제공 |
“백수도 삶의 한 형태로 인정받길”
다양한 삶이 존중받는 세상
- 다음 시즌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박) “하반기에는 지역과 협업해 온·오프라인을 혼합한 방식으로 운영할 계획이에요. ‘니트컴퍼니 00점’ 같이 지역 몇 곳에 니트컴퍼니를 운영할 거에요. 아직 지역이 확정되지 않아 모집 인원을 아직 정해지 못했어요. 지역이 확정되는 대로 인원을 정해 7월쯤 모집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 직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단체를 이끄는 소감은요.
(전) “책임감은 직장생활 때와 똑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책임감이 부담감으로 이어지지 않아요. 평가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서 그런 것 같아요.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직접 다 시도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방향을 직접 판단할 수 있어 행복해요.”
(박) “직장 다닐 때는 나름 직장 체질이라고 생각했어요. 퇴사 후 니트생활자를 운영하면서 직장인 체질은 아니었구나 깨닫고 있어요. 자유롭게 일하는 환경이 저와 잘 맞다고 생각해요. 윗선의 반대 없이 하고 싶은 걸 다 해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월요병도 없어요. 회사 다닐 때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늘어 좋아요.”
- 최근에 사단법인을 설립했어요.
(전) “2021년을 맞이해 운영 3년차에 들어섰어요. 백수들끼리 서로 힘이 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일이었는데, 운영 중에 사회적 연결이 필요한 청년들을 많이 만났죠. 누구나 언젠가 겪게 되는 무업기간을 무기력하거나 무의미하지 않게 만들고 싶어요. 삶에서 꼭 만나야 하는 전환의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보다 본격적으로 돕기 위해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프로그램 자체에는 큰 변화가 있지 않겠지만, 후원 내역 감사라던지 행정적으로는 변화가 있을 예정이에요.”
- 니트생활자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박) “지금은 직장인이여만 사회적 제도 안에 인정받을 수 있잖아요. 일이 다양해지고 경제적이지 않더라도 사회적 활동도 일로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단기 목표로는 저희만의 공간을 만들어 함께 나누고 싶다는 거예요. 공간을 나눠줄 곳을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무업 기간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마디 하자면.
(전) “뭐라도 될 거에요. 뭐라도 합시다. 나가서 10~15분씩 산책하는 것도 좋아요. 뭐라도 하는 게 중요한 거죠.”
(박) “무업 기간으로 힘드신가요? 니트 컴퍼니로 오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글 CCBB 이도형 인턴
온라인으로 진행했던 니트컴퍼니 시즌2의 오프라인 모임 사진. /니트생활자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