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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스타들이 찾는 한국인 디자이너입니다"

디자이너 유나양(YUNA YANG)

2010년 데뷔 후 20차례 뉴욕 패션위크 올라

“인생에서 한 번은 겁내지 말고 도전해보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의 어머니인 모델 메이 머스크·그래미상 수상 가수 캐리 언더우드·미 방송사 NBC 앵커 앤 커리·영화 ‘블랙 팬서’와 ‘어벤져스’에서 활약한 배우 다나이 구리라···

할리우드 스타와 세계 유명인사가 찾는 한국인 디자이너가 있다. 2010년 뉴욕 패션위크에서 데뷔한 유나양(YUNA YANG·본명 양정윤·42)이다. 2001년 이화여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패션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다. 런던의 패션 명문 세인트 마틴스를 거쳐 2008년 뉴욕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유나양은  한국인 최초로 ‘패션 바이블’ WWD(우먼스 웨어 데일리) 1면을 장식하고, 패션계 오스카라 불리는 뉴욕 ‘멧 갈라(Met Gala)’에 참석하는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서울에서 머무르고 있는 유나양을 서울 북촌 작업실에서 만났다.

유나양. /jobsN

-‘유나양’이라는 브랜드가 궁금하다.


“패션 카테고리로 따지면 하이엔드(high-end), 니치 하이엔드(niche high-end) 브랜드예요. 명품이나 대형 브랜드는 아니지만, 독특하고 개성 있는 컬렉션을 선보이는 곳입니다. 30대 여성이 주요 타깃인데, 고객 연령대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합니다. 가격대는 원피스 기준 가장 잘 팔리는 옷이 100만~150만원, 청바지는 30만~40만원대예요. 시즌과 상관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주로 판매합니다. 온라인 판매가 많아 전 세계에서 주문이 들어오지만, 유통을 크게 하는 곳은 약 10여개국이에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한국에서 지내고 있어요. 최근에는 책 ‘피어리스(fearless)’를 쓰느라 바빴습니다. 출간 작업이 끝나고 우리나라 스탭들과 캡슐 컬렉션(봄·여름·가을·겨울 단위로 발표하지 않는 소규모 컬렉션) 준비를 하고 있어요.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뉴욕에서 정기 시즌을 하기도 힘들고, 대중도 새로운 작품을 자주 발표하는 데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 반응이 궁금했거든요. 데뷔하고 서울에 2주 이상 있어본 적이 없는데, 생각보다 오래 머물고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보려고요.”


-올해로 데뷔 12년 차다. 그간의 소회를 밝힌다면.


“살아남은 게 감사하죠. 뉴욕, 그 안에서도 패션 업계에선 새로 등장하거나 사라지는 브랜드가 정말 많아요. 그만큼 살아남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예요. 지금까지 버텼다는 사실이 기뻐요. 데뷔할 때 세웠던 목표도 많이 이뤘습니다. 처음에는 내 이름을 걸고 브랜드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 뿐이었어요. 내가 만든 옷을 대중이 좋아할까 하는 호기심을 갖고 샘플만 들고 시작했습니다.

2014 SS(봄·여름) 시즌 ‘1920’s Shape Meets Modern Art’ 컬렉션. /유나양 제공

초기에는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무명 디자이너인데 옷도 비싸니까 주목을 못 받았죠. 요즘이야 한류가 세계적으로 인기지만, 2010년 고가 의류 시장에선 한국인 디자이너 자체를 받아들여주지 않았어요. 한국 출신이라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고요. 그래도 기왕 뉴욕까지 왔는데, 무대라도 한 번 서보자는 생각으로 뉴욕 패션위크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망하면 그냥 접자는 심정이었어요. 그런데 쇼에서 반응이 정말 좋았고, 그 덕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죠.”


-뉴욕에서 살아남은 비결이 궁금하다.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했어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남과 비교할 때 장점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봤습니다. 누구나 다 열심히 해요.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경쟁이 치열한 패션업계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 현실에서는 시간에 쫓겨 깊은 고민이나 생각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을 할 때가 있어요. 그래도 틈틈이 짬을 내 나 자신을 알아보기 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한우물을 깊게 파는 작업 방식이 저에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한 프로젝트를 해도 제대로 하자는 철학이 생겼습니다. 다른 디자이너가 1년에 프로젝트 10개를 할 때 저는 2~3개를 해요. 그래도 시작한 일은 끝을 본다는 생각으로 일했습니다. 업계에서 이 노력을 알아주더라고요. ‘다작은 안해도 하면 제대로 하는 디자이너’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어머니 메이 머스크(왼쪽 첫번째)가 유나양의 옷을 입었다. /본인 제공

-위기는 없었나.


“2015년 가을겨울(F/W) 컬렉션이었어요. 뉴욕에 처음 왔을 때 3, 5년 차가 제일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년을 버티면 5년을 살아남고, 5년을 넘기면 10년은 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어요. 이때가 5년째였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많은 신생 브랜드가 5년 차 때 사라져요. 브랜드를 매각하기도 하고, 투자를 크게 받아 하기 싫은 작품을 억지로 하다 없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업계에서도 5년이 넘으면 프로 대우를 해줘요. 다른 말로 하면 더는 신인이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언론이든 바이어든 마찬가지예요. 실수 하나를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그래서 무대를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쇼가 끝날 때는 녹초가 됐죠.


하이 패션 시장 환경도 점차 변하고 있어요. 고가 의류를 만드는 장인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명품으로 유명한 이탈리아나 프랑스처럼 하이 패션이 나라 경제에서 견인차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니면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예요. 뉴욕만 해도 하이엔드 브랜드가 몇 없습니다. 대부분 중고가 컨템퍼러리(contemporary)나 중저가 브랜드입니다. 디자이너 브랜드라 해도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캄보디아에서 옷을 만드는 곳이 늘었어요. 서울도 똑같아요. 아마 5~10년 뒤에는 샘플을 만들거나 고가 의류를 제조하는 분들을 찾기 힘들어 해외 생산을 해야 할 거예요.”


-본인만의 삶의 방식을 다룬 책을 펴냈다. 어떤 메시지를 담았나.


“우리는 살면서 ‘이렇게 살아야 성공한 삶이고, 저렇게 살아야 행복한 삶이다’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물론 남들이 평가하는 나도 중요하지만, 성공이든 행복이든 결국 스스로 느껴야 하는 거라고 봐요. 아무리 남이 성공했다 부러워해도 내가 동의하지 못하면 무의미한 거니까요. 저는 예전부터 남이 아닌 내가 세운 기준에 따라 인생을 살려고 노력했어요.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승산이 없고, 나 혼자 길을 가면 비교 대상이 없다는 마음으로 살았죠. 그런 마인드가 경쟁력이 되었고, 일도 잘 풀렸어요. 이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이 ‘피어리스’(fearless·두려움을 모르는)죠.”

2020 S/S ‘You’re beautiful’(당신은 아름답다) 컬렉션. /유나양 제공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꿈꾸는 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생에서 딱 한 번은 망하는 걸 겁내지 말고 도전해보면 좋겠어요. 물론 실패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본다는 경험 자체가 인생에서 큰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저에겐 패션 위크 데뷔나 세계 단일 점포 매출 1위인 일본 신주쿠 이세탄백화점에 진출한 게 이런 도전이었어요. 뉴욕에 간 지 8개월 만에 아무 기반도 없이 데뷔쇼를 열었어요. 이세탄 신주쿠 진출에는 꼬박 3~4년 공을 들였죠. 퇴짜를 놔도 끈질기게 달려들었어요.


후배들에게는 기회가 오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일단 잡아보라고 말해요. 언젠가 바이어들이 저에게 재고 따지는 게 없다는 이야기를 해줬는데요. 누가 작업을 제의하면 바로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를 낼까 고민하는 편이에요. 이 일이 나에게 얼마나 큰 이익이 될지 별로 안 따집니다. 이렇게 작업하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좋은 결과가 나올 때가 많더라고요. 머리 싸매고 고민해 결정한 일보다요. 주변에서 이런 이유로 좋은 기회를 놓치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 저는 회사 직원이 스카웃 제의를 받으면 일단 기회를 잡아보라고 해요.”

유나양 제공

-앞으로 계획은.


“사실 경력이 10년을 넘어가면 일이 조금은 쉬워질 줄 알았어요. 노하우도 생기고, 연륜도 쌓이니까요. 그런데 이 업계는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일이 어려워요. 이미 해 놓은 작업이 많으니까, 다음 무대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아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는 양보다 질에 더 집중할 생각입니다. 또 정해진 일정에 맞춰 패션위크에 컬렉션을 내기보다 아이디어가 있을 때 자유롭게 작품을 선보이고 싶어요. 무대 일정에 맞추려다 보니 자꾸 아쉬운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요.


언젠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자리를 후배나 실력 있는 디자이너한테 넘겨주고, 도움이 필요한 젊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요. 패션업계는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 지적받을 때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이 분야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아요. 본인 인생의 재미를 깨달은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앞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글 CCBB 영조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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