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본능 이효리의 배신?? "스마트폰 시대엔 세로가 본능"
TV도 전광판도 네비게이션도 세로
세로 영상이 더 익숙한 스마트폰 시대
삼성전자가 2004년 출시한 가로본능폰은 ‘핸드폰 화면은 세로’라는 고정관념을 깼다. TV 화면도, 극장 스크린도, 모니터 화면도 길거리 전광판도 가로였다. 영상을 찍는 사람들 머리 속엔 화면은 당연히 가로였다. 폰만 세로니 영상이 잘려 나갔다. 가로로 영상을 보니 그런 문제가 저절로 풀렸다. 화면을 가로로 눕힐 수 있는 가로본능폰은 동영상을 볼 때 좋다는 평가와 함께 사랑받았다. 가로본능이 사랑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광고 모델이었던 이효리였다.
이효리가 모델이었던 삼성전자 가로본능폰. 핸드폰은 세로라는 편견을 깼다. /삼성전자 |
그녀가 들고 있는 가로본능폰을 본 사람들이 바로 가로본능폰을 샀다. 이 제품은 출시 3개월 만에 42만대가 팔렸다. 당시 사람들은 광고에 나온 이효리를 보고 세로는 구태의연하고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반대로 가로는 첨단 기술을 상징했다. 2003년 국내 통신사들이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했다. 휴대폰으로 문자 대신 영상을 본격적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가로본능 광고에서 춤추는 이효리는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는 첨단기술의 상징이었다.
가로본능의 아이콘이었던 이효리가 세로본능의 선두로 돌아섰다. 삼성전자의 가로본능폰 모델이었던 이효리(왼쪽)와 카카오TV가 만든 세로형 예능 '페이스아이디'에 출연한 이효리. /'애니모션' MV·페이스아이디 캡처 |
그랬던 이효리가 최근 가로 대신 세로본능을 외치는 카카오와 손잡고 세로 영상을 찍었다. 카카오TV는 작년 9월 스마트폰을 통해 일상을 들여다보는 콘셉트 예능 ‘페이스 아이디’를 선보였다.
본투비 ‘세로 모드’
‘모바일 오리엔티드(Mobile Oriented)’. 스마트폰을 가로로 눕히는 수고조차 필요없는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만든다는 게 카카오TV의 목표다. 페이스 아이디는 스마트폰 화면 모양을 본 떠 새로 형태로 만든 영상이다. 첫 등장인물이 바로 이효리였다. 페이스 아이디 이효리편은 한 회 조회수가 500만이 넘는다. 2005년 가로본능을 상징하던 이효리가 세로 진영 선봉에 섰다.
카카오TV가 제작한 세로형 콘텐츠 '페이스 아이디'와 '톡이나할까'. /카카오M |
카카오TV는 계속 세로 콘텐츠를 공격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이효리가 출연한 ‘페이스아이디’ 외에도 작사가 김이나가 진행하는 ‘톡이나할까’, 김구라의 ‘뉴팡!뉴스 딜리버리 서비스’ 등을 세로 화면에 담았다. 네이버도 세로대세론에 힘을 싣고 있다. 네이버가 만든 보이는 라디오 ‘나우(now)도 모든 영상이 세로다. 네이버가 최근 인수한 퀴즈쇼 앱 ‘잼 라이브’도 세로 모드다.
세로 화면은 가로 화면이 표현하지 못하는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페이스아이디’는 내 스마트폰으로 스타와 직접 영상통화를 하는 느낌을 준다. ‘톡이나할까’는 김이나가 방장인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초대돼 대화를 나누는 듯한 착각이 든다.
TV, 내비게이션, 전광판도 세로 본능
최근 당연히 가로였던 것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세로 선 TV가 등장했다. 요즘 번화가에 새로 생기는 대형 전광판은 세로가 많다. 누워 있던 자동차 내비게이션도 일어났다. 가로가 기본값이었던 하드웨어가 세로로 바뀌고 있다.
스마트폰 영상은 이미 세로가 대세. 스마트폰 세로 영상 시대 문을 연 기업은 중국 틱톡이다. 2016년 ‘15초 동영상’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등장한 ‘틱톡’은 세로형 콘텐츠로 전 세계 10~20대를 사로잡았다. 틱톡이 인기를 끌자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도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IGTV, 릴스와 유튜브 스토리 등 세로형 모바일 콘텐츠를 추가했다.
세로형 SNS로 돌풍을 일으킨 틱톡. 다양한 챌린지 영상으로 인기다. /틱톡 캡처 |
모바일 기기 정보 업체 사이언티아 모바일(Scientia Mobile)이 스마트폰 이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0% 이상이 게임을 하거나 사진을 찍을 때 기기를 세로로 들고 사용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72%는 가로 형태 동영상을 볼 때도 화면을 돌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산다. 가로보다 세로가 익숙해진 것이다. 아예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쓰는 최근 요즘 아이들이 크면 세로는 본능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하드웨어 제조업체들도 이런 변화를 눈치 채고 지금까지 당연히 가로 누워 있었던 물건들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2019년 삼성전자가 출시한 세로형 TV ‘더 세로 (The Sero)’. 더 세로는 모바일 콘텐츠에 최적화된 세로 스크린을 지원한다. 쉽게 말해 리모콘을 누르면 가로이던 화면이 돌아가 세로로 변한다.
삼성전자가 만든 세로형 TV ‘더 세로 (The Sero)’. /삼성전자 |
삼성전자는 “실제 구매자 중 10명 중 7명이 세로 모드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가족사진이나 직접 그린 그림을 띄우는 등 개성있는 활용법도 많다”며 “대형 스크린에서 세로 형태의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매력 포인트”라고 했다. SNS나 쇼핑 사이트의 이미지, 영상 콘텐츠를 댓글과 함께 볼 때는 세로가 더 편하다는 것을 염두에 둔 제품이다.
차량 내부 디스플레이에도 세로형으로 바뀌는 추세다. 최근 출시된 테슬라 ‘모델 S’ ‘모델 X’에 이어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르노 삼성 등의 차량이 세로 디스플레이를 기본형으로 채택하고 있다. 차 내부 앞 이른바 센터페시아(center fascia)에 있는 스크린이 아래 위로 길어졌다. 원래 센터페시아에 있던 오디오, 에어컨 버튼 등이 터치스크린 기능을 가진 화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보는 느낌이다.
가로가 기본이었던 차량 디스플레이가 변화하는 건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한 운전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세로 화면은 네비게이션처럼 길게 전달해야 하는 정보를 보여주기 적합하다. 아무래도 운전을 할 땐 더 멀리 앞 방향 정보를 아는 편이 좋다. 스마트폰과 자동차를 연결하는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 ‘애플 카플레이’ 등을 장착하는 차량이 늘어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테슬라 ‘모델S’ 내부. /테슬라 |
도심 한복판 세로형 전광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전광판도 세로형으로 바뀌고 있다. 하루 유동인구 100만명, 서울의 심장부인 광화문 한복판에 초고화질 세로 전광판이 들어섰다. 디지틀조선일보는 코리아나호텔 외벽에 달린 기존 가로형 전광판을 교체하고 4월9일 광고 송출을 시작했다. 가로 12.48m, 세로 6m 새 전광판은 기존 전광판보다 2배로 커지고 길어졌다.
서울 도심 전광판도 세로에서 가로로 바뀌고 있다. 왼쪽부터 학동사거리 S&S타워와 한섬 청담 사옥, 역삼동 현익빌딩의 세로 전광판. /온라인 커뮤니티·현대백화점그룹 |
서울 도산대로에는 2~3년 새 세로 전광판이 10여 개나 생겼다. 학동사거리에 있는 S&S 타워를 시작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세로 전광판은 럭셔리 브랜드의 전쟁터다. 폭이 좁고 긴 세로형 전광판은 멀리서도 눈에 잘 띈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더 친숙하다. 전광판 업체 관계자는 “가로형은 이미지가 넓게 퍼지는 느낌이 강하지만 세로형은 폭이 좁고 길어 집중 효과와 가시성이 좋아서 광고주가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서울 청담 사옥에 세로형 전광판을 단 한섬은 국내외 작가들과 협업한 미디어 아트 작품이나 캐릭터,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한 시즌별 문화콘텐츠 등 다양한 볼거리도 선보여 청담사거리 일대를 랜드마크화한다는 계획이다.
‘포노 사피엔스’를 쓴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새로운 인류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ce)’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고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세로 콘텐츠와 플랫폼이 많아지는 건 거스를 수 없는 변화”라며 “세로본능이 가로본능과는 다른 다양한 재미와 정보를 전달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글 CCBB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