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나도 유효한,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
극단 청국장, (유)컴퍼티 그리다 '춘천거기'
대학로가 아직은 낯선 관객에게 너무 어렵지 않은 창작연극을 추천하고 싶다면 <춘천거기>를 소개하는 게 어떨까. ‘감성 연극’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 연극은 남녀 세 쌍의 사랑 이야기를 실감 나는 대화체로 다루면서 관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또 2006년 올해의 예술상 연극 부문에 선정되며, 대중적이지만은 않은 작품으로 공인 받기도 했다.
초연한지 어느덧 10년이 지난 이 작품은 올해 여섯 번째 공연을 올린다. 혜화동 1번지 4기 동인 출신인 김한길이 이끌어 가고 있는 <춘천거기>는 가슴 아픈 사랑, 믿음이 흔들려 잔혹해진 사랑, 알콩달콩한 사랑 등 세 가지 색깔의 사랑을 펼쳐 보인다. 사실적인 인물 표현과 특유의 솔직한 화법으로 빚어진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는 여전히 현실적이어서 시간의 흐름을 무색하게 한다.
세 가지 빛깔의 사랑
"배우 9명의 좋은 에너지가 관객에게 전파돼 그걸 기억해주시는 듯하다. 또 이야기가 우리 삶에 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서 관객들이 ‘가깝다’고 느끼시는 것 같다." - 김한길 연출가
작품 속 명수와 선영에게 뒤늦게 찾아온 사랑은 가슴 아픈 사랑이다. 유부남인 명수로 인해 이들의 사랑은 늘 고통스럽다. 서로의 선택으로 시작된 사랑이지만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이들을 짓누른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영민과 세진에게 사랑은 잔혹함 그 자체다. 세진의 과거에 집착하는 영민은 질투에 사로잡히며 이들의 사랑을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한다. 작가인 수진의 공연에 출연했던 주미를 보고 한눈에 반한 은덕은 주미를 소개받는다. 이제 막 시작된 이들의 사랑은 엉뚱하면서도 귀엽고, 수줍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제각각 우여곡절을 겪던 등장인물들은 춘천에 있는 은덕의 펜션으로 모이게 되고 이후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앙상블이 생명인 이 작품에서 생기 있는 배우들이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해 그 매력을 살려낸다. 특히 올해 공연의 경우 10주년을 맞아 박호산, 임학순, 김강현, 유지수, 김혜나, 전병욱, 김대종, 김승현, 김나미 등 초연 멤버들이 함께 한다. 이 밖에 김진욱, 김찬형, 박기덕, 손영환, 이지해, 이창훈, 박기만, 노현 어우, 송유현, 최미령, 류혜린, 유민 중, 김이삭 등 대학로의 젊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젊은 시절 특유의 아기자기한 사랑을 실감 나게 펼쳐 보인다.
보편적인 감정 '사랑'을 말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다 같은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각의 디테일은 다르겠지만 사랑이라는 본질적 감정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 배우 박호산
초연 때 함께 했던 박호산 배우는 이제 20대의 사랑 이야기는 다른 후배 배우들의 몫으로 넘긴 채 유부남 명수 역에 몰두하고 있다. 오랜만에 작품에 출연하는 심경에 대해 묻자 박호산은 “<춘천거기>라는 작품은 내게 내용 그 자체보다 ‘친구 작품’으로서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라고 운을 뗐다. “10년 전 함께 공연을 준비하며 불태운 뜨거웠던 열정이 그대로여서 서로에게 고마운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아닌 게 아니라 연습실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다들 즐거워서 하는 작품이라는 긍정적인 신호다. 극중 작가인 수진 역할을 더블로 맡고 있는 배우 김나미는 “아무래도 모두가 한 번쯤 겪었던 이야기라는 점이 강점인 작품”이라며 “배우 입장에서는 나로부터 캐릭터를 출발해도 용서가 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감이 있다."라고 전했다.
보편적인 감정인 사랑이 편안한 대사에 실린다. ‘당신 생각이 나요. 술은 마셨지만 취하진 않았는데.’라고 반복되는 극중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 굳어져 있던 연애세포가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에 왠지 모를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라도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는 <춘천거기>의 힘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무엇보다도 연습실의 활기찬 기운이 반가웠다. 김한길 연출가는 “요즘… 어렵고 한데”라고 운을 떼며 “우리가 경험한 좋은 기운이 관객에게 전달됐으면 한다. 제작과 연습 과정 등을 잘 준비할 테니 털고 갔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사진: (주)Story P 제공
글 :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