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 많은 안무가들! 정성태, 정수동
유망예술지원사업 닻(dot) 선정 안무가
정성태<화이트큐브프로젝트>, 정수동<터미널>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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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없이 겨울이 바로 온건가 싶을 정도로 쌀쌀한 날씨였던 10월 중순, 서울무용센터에서 유망예술지원사업 닻(dot)¹ 으로 선정된 정성태, 정수동 안무가의 공연이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연습 중이었던 두 안무가를 만날 수 있었다. 땀 흘리며 반갑게 인사해준 정성태 안무가, 정수동 안무가가 들려준, 공연만큼이나 흥미롭고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1) 유망예술지원사업 닻(dot) : 데뷔 10년 이하의 예술인 중 도전적이고 독창적인 시도로 예술계 새로운 흐름을 제시할 수 있는 유망예술인을 발굴하여 입체적 지원시스템 제공을 통한 성장과정을 2년간 지원하는 다년 차 지원사업이다.
고등학교 2학년때 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아버지가 무용을 반대하셨어요.
정성태 안무가 |
정성태 안무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무용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가장 난감하고 어려운 일이라며 어렵게 운을 뗐다. 뭐 하나 짧게 끝날 수 있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학교만 해도 경성대를 다니다 자퇴했고 서울예대를 졸업했고 국민대에 편입해서 졸업했고 마지막으로 한예종 창작과 전문사를 졸업했어요. 누구는 가방 끈이 길다고 하는데 긴 것 보다는 많은 것 같아요. 경성대를 다니다 뮤지컬 가수가 되고 싶어 서울예대에 갔는데 학부 생활을 하면서 ‘안무’에 더 흥미를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국민대 안무자 과정 커리큘럼을 보고 편입을 했어요. 졸업을 하고 안무를 하지 말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덜컥 한예종 전문사(대학원)에 합격했어요. 다양한 수업을 들으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고 특히 조명에 관심이 많아져서 조명 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안무자로도, 연극 배우로도, 조명감독으로도, ‘플레이어’ 로써 활동을 많이 했어요.”
프로젝트 날다
차이니즈 폴을 타고 있는 정성태 안무가 |
트램폴린 위의 정성태 안무가 |
“4-5년 전 부터 서커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프로젝트 날다’라는 곳에서 활동을 했어요. 차이니스 폴, 수직 밧줄, 트램폴린 등 서커스 기구를 활용한 서커스 극과 퍼포먼스를 제작하고 유럽의 다양한 서커스 전문가들과 자체적으로 교류하며 발전하고 있는 단체 예요. 재작년엔 프랑스 샬롱거리축제² 에 다녀왔어요. 너무 많은 영감을 받고 와서 거리에서 하는 예술, 서커스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있는 중이에요. 제가 무용을 전공했으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로 어떤 재미있는 공연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2) 샬롱거리축제(Chalon dans la Rue) : 프랑스 샬롱 쉬르 손(Chalon-sur-Saô̂ne)에서 개최하는 거리극 축제로, 매년 7월 중순에 열린다.
화이트큐브프로젝트
‘신호’ 를 주고 받는 화이트큐브프로젝트의 퍼포먼스 |
정성태 안무가의 <화이트큐브프로젝트>는 “피리부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별 것 아닌 일상적인 행위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고 신기한 모습들을 여러 가지 극대화된 이미지와 장면들로 구성하며 행위와 배경의 모순과 움직임 표현의 극대화와 반복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익숙하고 중독성 있는 음악들을 패러디 한다.
“화이트큐브프로젝트는 원래 지원했던 사업 이름이었어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하나의 큐브 모양에 플랫폼을 만들어 무대를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극장 안 에서든 밖에서든 어느 곳에서든 이 ‘플랫폼’ 만 갖다 놓으면 무용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장소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공연을 하자는 것이 화이트큐브프로젝트였어요. 이 프로젝트를 진행 하면서 공연의 완성도 보다는 가능성이 열리는 걸 확인했어요. 그러다 ‘작품을 야외에서 해보면 어떨까?’싶어 서울무용센터 옥상을 방문했는데 노을 지는 모습이 너무 좋은거예요. 그때 공간에 대한 영감을 깊이 받고 돌아갔죠. 익숙하게 느끼는 공간들이 공연을 통해 낯설게 느껴지고 이 공간 속에서 주고받는 ‘신호’ 를 보면서 관객들이 나의 신호는 무엇이고, 나는 어떤 신호를 받으면서 살아가는지 고민 해보길 바랬어요.”
‘신호’ 를 주고 받는 화이트큐브프로젝트의 퍼포먼스 |
2년 전부터 정성태 안무가는 원인 모를 외로움을 느꼈다. 옆에서 응원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꼈다. <화이트큐브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두 명의 안무가와 함께 협업하고 합숙을 하기도 했는데 이 시간이 그에게 매우 큰 만족을 안겨주기도 했다. 무대에 서서, 숨죽여 쳐다보고 있는 관객들 앞에서 몸짓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안무가’ 는 외로움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과 영감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지, 가방 끈이 정말 남달리 많은 정성태 안무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신호’ 를 주고 받는 화이트큐브프로젝트의 퍼포먼스 |
“춤을 추는게 그저 너무 행복하고 좋았던 사람이었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걸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저도 모르게 금액 수를 따지게 되고, 비수기 때는 편의점이나 호프집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인거예요. 그럴 때 많이 힘들었지만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요.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자문하다 보면 이 순간이 행복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토록 바랬던 미래 잖아요. 벽에 부딪힐 때마다 초심을 생각해요.”
20대 때는 무용수로, 30대 때는 안무가로
정수동 안무가 |
정수동 안무가는 성균관 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석사에 이어 박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다. 대전에서 살다 20살이 되어 서울로 상경한 그는 서울에 있는 모든 공연장에 다 서 보겠다는 다짐 뿐이었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했다. 무용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정수동 안무가는 무용수의 입장에서 몸을 움직였고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하면서 갈증을 느꼈다.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나아가 사회의 이야기를 작품으로써 표현해내고 싶었고 누군가의 얘기가 아닌 내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어떤 환경이든 안무를 구상해내고 창작해내며 비로소 이 움직임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독일 노발레 국제 안무대회 |
국립 현대무용단 |
모다페국제무용제초청작품 |
정수동 안무가는 국내외에서 바쁜 20대를 보냈다. “가장 첫 작품으로 독일 노발레 국제 안무대회에서 수상을 했어요. 그 이후에 국립현대무용단에 초청되었는데 제가 최연소 안무가였어요. 기회가 계속 닿아 그라츠 국립오페라무용단 이라는 국립무용단에서도 활동했고 그 때 정말 모든걸 다 쏟아냈어요. 그리스 헬라스 국제무용콩쿠르 대회에서는 우승을 했고요. 안무가로써 작품을 올리면서 작품을 확장시키고 싶고 러닝타임을 늘리고 싶다는 생각에 예술 사업에 도전하게 됐어요. 극장 무용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는 시도를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짜여진 기획을 받았다면 이 사업을 통해서 지금은 제가 모든 걸 선택해야 하고 생각할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아졌잖아요. 이 계기로 인해 다음에도 또 다른 일을 상상하고 시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기억에서 시작된 몸짓
“어렸을 때 부터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어요. 지금도 그래요.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사로운 감정들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이 기억들을 몸으로 표현해 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음악이나 오브제를 겸하면서 점점 표현이 확장된다고 느꼈어요.”
dot 선정작 '터미널' |
dot 선정작 '터미널' |
“<터미널> 또한 기억에서 시작됐어요. 우연히 안국의 골목길을 걷다가 공터를 발견했는데 15년 전 공 차면서 놀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어요. 너무 바쁜 일상을 살아가던 제가 그 공간을 마주하니 엄청난 치유였고 충격이였어요. 그 자리에 30분 동안 가만히 서있었어요. 너무나 지쳐있던 저의 모습과 으리으리한 건물 속에 있는 작은 공터가 겹쳐져 보였던것 같아요. 사회에선 제게 어른 스러운 모습을 요구하지만 저 또한 어리광부리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던거죠.”
“터미널이라는 공간이 낯선 사람들이 교차하고 도착과 출발이 공존하는 곳이잖아요. 저 또한 언제든 떠나고 싶은데 못떠나고 작업하고.. 이런 감정에서 저를 꺼내보자 싶었어요. 이 공간에 대한 것들을 무대에 올려보고 오브제를 통해 구체화 시켜보고 싶었어요. 터미널이라는 공간과 제 기억을 연결함으로써 질문을 던지는 거죠. 난 계속 이렇게 가야할까, 나의 방향은 어디일까, 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진짜 놀아보자는 마음으로 공연을 해보려고 해요.”
dot 선정작 '터미널' |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위해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긴 터널에서도 작품을 올려보고 싶고 지하철 플랫폼이나 서울 시청 광장에서도 해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무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다른 장르의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하는 거죠. 그게 다 저에겐 큰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예고에 진학하고 싶었어요. 집안의 반대로 포기했지만 지금 그림을 그린다는게 제게 큰 힘이예요.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장면을 스케치하고 그걸 무대로 실현 시켜 보는거예요. 다양한 것들을 ‘무용’이라는 범주 안에 넣어서 상상의 폭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저 또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올해 2019 크리틱스초이스 최우수 안무가상을 수상한 작품 '리듬분석' |
정수동 안무가는 끊임없이 인풋을 넣고 있다. 잠 자는 시간을 줄이더라도 하루 중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선물 하기도 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고 사진을 보며 안무에 대한 영감을 받는다. 이론적인 공부와 실기를 병행하면서 끝없이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
양은냄비 같이 금방 열정을 불태웠다 식어버리는 내게 정성태, 정수동 안무가는 뚝배기 같이 느껴졌다. 하루를 쪼개고 20대를 쪼개서 바쁘게 달려온 두 안무가들의 이야기는 잠깐의 대화로는 엿본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귀한 생애사였다.
“손짓도, 악수도, 사람과 사람이 안는 것, 시선도 모두 무용이라고 생각해요.”
정성태, 정수동 안무가는 자기만의 고민과 갈증 속에서 창작해내며 예술이라는 에너지를 사회에 퍼트리고 있다. 이 이야기가 담긴 몸짓을 보는 일상 속에서, 우리 또한 새로운 영감을 받고 또 다른 예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 어느 숲에 큰 불이나 동물들이 앞다투어 도망을 가는데 세상에서 가장 작은 벌새, 크리킨디가 조그마한 부리로 물을 모아 숲에 불을 끄려 했다는 우화가 있다. 동물들은 하나같이 그 불이 꺼지겠냐고 물었지만 크리킨디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라고 대답했다. 안무가의 작은 몸짓이, 그 날개짓이 개인에게, 사회에 건강한 영향력을 퍼트릴 것이다. 난 이들의 이야기가 계속 듣고 싶다.
글 시민기자단 8기 이혜원 기자
디자인 이한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