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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이전의 악기들의 역사

같은 건반, 다른 소리

지금은 피아노라는 악기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기 힘들다. 피아노는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세기 후반부에 들어서야 그 형태가 완성된 비교적 현대적인 발명품이다. 바이올린이나 기타 등의 악기가 최소한 300년은 더 된 시절에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물론 피아노가 발명되기 전에도 건반악기는 많이 있었다. 피아노와 피아노가 탄생하기 전의 건반악기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건반악기의 가장 발전된 형태, 피아노

피아노는 많은 발달을 거친 역사가 있는 악기이며, 제작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소리를 내는 원리도 복합적인 악기다. 다른 악기와 비교할 수 없게 견고하고 일관된 소리를 자랑하기도 한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소리를 낼 수 있는 비교적 다루기 쉬운 악기이기 때문에 대중에게도 인기가 있어서 적지 않은 금액을 들여서 집에 사두는 것이다.

 

기능적으로 피아노는 건반악기로 분류되는데, 이는 건반으로 이루어진 부분을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해당되는 음높이의 소리가 나는 모든 악기를 통칭한다. 다른 건반악기의 흔한 예로는 풍금이라고도 하는 하모니움, 그리고 오르간 등이 있다. 이들은 피아노처럼 현(줄)으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건반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나, 바람 소리가 근원인 악기들이다.

 

사실 피아노처럼 현으로 이루어진 건반악기들의 원리는 간단하다. 각기 다른 음높이를 가진 팽팽한 줄들을 나란히 나열해두고 이를 때리거나 튕겨서 소리를 내게끔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가장 초보적인 형태로는 양금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피아노 또한 궁극적으로 해머로 줄을 때린다는 점에서 소리가 나는 원리가 양금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때리는 강도와 시간, 속도 등을 조절함에 따라 소리가 섬세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각종 장치가 동원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복합적인 형태의 피아노가 나타나기 이전의 건반악기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피아노 이전의 악기들의 역사

현을 튕기는 형태의 하프시코드(Harpsichords)

독어로는 쳄발로(Cembalo), 프랑스어로는 클라브생(clavecin)이라고 하는 하프시코드는 현재 연주되는 건반악기 중 피아노를 제외한 것 중에는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악기일 것이다. 바하가 살아 활동하던 바로크 시대에 즐겨 연주된 악기로, 피아노처럼 건반을 누르는 연주 원리는 동일하지만, 해머로 현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특유의 바늘처럼 생긴 뾰족한 장치로 현을 튕기게끔 되어 있다. 그리하여 다소 챙챙거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나게 되고, 건반을 누를 때의 느낌도 피아노의 부드러움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기타 줄을 튕길 때 느껴지는 순간적인 줄의 저항이 건반에서 은연중에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고, 이러한 터치의 차이 때문에 피아니스트라고 해서 모두 하프시코드를 잘 연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즐긴다면, 피아노보다 하프시코드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 시대의 악보는 음표 외의 기호가 별로 없는 편인데, 이는 애당초 표현이 어려운 크레센도(점점 크게) 등의 나타냄말이 아예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실제로 크레센도가 처음으로 연주된 초기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회장에서는 여인네들이 그 자극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하지만 이런 미세한 나타냄말이 악보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감정을 배제하고 기계적으로 연주하면 절대 금물이다. 그렇게 할 경우 정말로 기계적인 소리가 나게 되므로 오히려 음의 길이 등을 미세하게 조정해서 감정을 풍부하게 싣고 연주해야 음악적으로 들리게 된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연주자와 작곡가의 구별이 모호해서, 악보로 기록에 남기는 것이 현재의 클래식 음악처럼 철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더욱 다양해질 수 있다.

가정용 건반악기 클라비코드(clavichord), 버지날(virginal), 스피넷(spinet)

클라비코드는 하프시코드보다는 소리 나는 원리가 피아노에 가깝지만 그형태는 굉장히 단순한 악기다. 건반을 누르면 반대편 끝에 달린 쇠막대기가 현을 때리는 원리이며, 그로 인해 하프시코드에서 불가능했던 셈여림의 표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가로로 긴 상자 형태의 아주 작은 악기인 데다 울림통이 크지 않아서 대부분 가정용으로만 사용된다. 바흐가 작곡한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나 인벤션 등이 이 악기를 위해 작곡되었다. 가정용 악기이다보니 오르간 연주자들도 연습용으로 집에 구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파이프오르간처럼 페달 건반의 형태로 달린 대형 클라비코드도 간혹 존재해왔으나 현재는 흔하게 찾아볼 수 없는 악기다. 클라비코드와 함께 버지날(virginal), 스피넷(spinet) 등의 악기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하프시코드처럼 현을 뜯는 장치가 내장된 소형 건반악기들이다. 결국 현재의 업라이트 피아노(피아노줄을 수직으로 해 크기를 작게 만든 보급형 피아노)처럼 가정용으로 사용되는 악기들이고, 현재의 그랜드 피아노는 하프시코드가 그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간혹가다 아주 작은 업라이트 피아노를 스피넷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피아노에 가장 가까운 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와 포르테피아노(fortepiano)

피아노에 가장 가까운 악기라고 볼 수 있는 함머클라비어는 베토벤이 동일한 제목으로 소나타를 작곡한 바 있는데, 단순한 막대기가 아닌 해머를 사용해서 제작된 악기로 당시에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포르테피아노 또한 비슷한 원리인데, 큰 소리(포르테)와 작은 소리(피아노)가 명확하게 구별된다는 특징을 악기 이름에 반영한 것이다. 이 악기로 우리가 알고 있는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피아노곡들을 당시에 연주했다. 모짜르트 소나타에 표기된 다소 어색한 프레이징(악상을 자연스럽게 분할해서 정리하는 것, 글의 띄어쓰기와 마찬가지로 악상을 자연스럽게 분할해서 정리하는 것을 말하며 구절법 또는 분절법이라고도 함)들을 당시의 악기인 포르테피아노로 연주할 경우 매우 자연스럽게 들린다.

국내 업라이트 피아노의 전성기

한때는 집집마다 업라이트 피아노를 들여놓는 게 유행처럼 되어서 쉽게 만날 수 있었지만 요즈음에는 디지털 피아노가 더욱 흔해져서 양질의 가정용 업라이트 피아노의 제작이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 전후로 제작된 피아노가 그나마 품질과 내구성이 좋으며, 이후에는 많은 공장이 제작비가 저렴한 해외의 나라들로 이전하면서 장인들의 손이 덜 가게 되고 자재도 예전만큼 견고한 것이 쓰이지 않게 되었다. 더 좋은 악기를 연주하겠다며 20여 년 된 피아노를 중고 시장에 팔고 새 피아노를 사들일 경우 자칫하면 더 낮은 품질의 악기를 구비하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피아노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서술하면서 피아노가 가진 진짜 가치를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었으면 했다. 피아노의 진짜 가치를 생각하면 전자음향보다는 실제 악기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조금만 투자하면 어떨까 싶다. 1990년경 제작된 국산 중고 업라이트 피아노면 충분하지 않을까?


신지수 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마친 후 현재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현대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즐긴다. 홈페이지 www.jeesooshin.com, 블로그 jagt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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