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집(현 썬프라자)
일상 속 낯섦으로 다가오다
{Soul of Seoul : 서울 건축 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12월 16일까지 <김중업 다이얼로그>전이 진행된다.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은 현대건축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서 3년간 수학했으며, 모더니즘과 한국의 전통성을 결합한 작품을 선보인 한국 현대건축의 1세대이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로 대로변 모퉁이에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건축물이 있다. 어쩌면 그의 작품 중 유일한 상업시설일지도 모를 ‘태양의 집’(현 썬프라자)이다.
입면의 연속된 원형창과 최상부의 절개된 반원 등은 태양을 연상하게 한다. |
낯선 상업시설
건물의 전체적인 재료는 붉은 벽돌이다. 유기적인 느낌을 거친 표면의 벽돌로 표현했다. |
썬프라자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상업시설이다. 현재 지하 1층에서부터 2층까지는 마트로, 3층은 예식장으로 사용 중이다. 1979년에 설계하고 1982년에 준공한 썬프라자는 처음에는 백화점 용도로 지어졌다. 하지만 이 건물은 백화점이라는 일반적인 상업시설의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 건축물을 지을 당시에는 주변에 공장지대와 저층의 단독주택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중산층이 이곳을 이용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편안한 시장의 형태를 새로운 상업시설의 모습으로 바꾸고자 했다. 썬프라자가 들어선 부지는 신도림시장이 있었던 곳으로 1960년대에 김중업 건축가가 증축과 보수를 맡았다.
썬프라자는 주위의 낙후된 건물들이 철거될 것으로 생각하고 설계한 듯 보인다. 주변의 맥락과는 다르게 조형적인 곡면과 원형 모티브, 경사로 등 다양한 건축 언어가 종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김중업 건축가는 유기적인 느낌을 매끈한 벽이 아닌, 거친 표면의 붉은 벽돌을 이용해 구현하고자 했다. 원은 기존 상업용 건물의 모듈화, 획일화된 사각형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내부공간을 체험하게 하고자 사용된 모티프로 짐작된다. 이러한 평면상의 2차원적 원들은 그대로 3차원의 입면에까지 확장된다. 입면에서 사용된 연속된 원형창과 최상부의 잘린 반원은 태양을 상징하는 듯하다. 백화점 등의 상업시설에서 수직으로 이동하는 동선은 내부의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건물에서는 외부 전면의 ‘경사로’가 적극적이고 상징적으로 수직 동선을 표현한다.
도시와 건물 그리고 만남
썬프라자는 각각의 면마다 다채로운 표정을 띤다. |
썬프라자는 건축물이 놓인 대지의 형상을 따라서 둔각삼각형 형태를 띠고 있다. 건물의 4면이 보도를 포함하여 전부 도로와 접하고 있으며, 제각각 다른 표정으로 디자인되었다. 이는 건축물과 도시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한 것이다. 북쪽 삼각형 모서리의 원형 처리는 북쪽 면만 인접 건물이 놓여 있어 건물의 조형성을 유지하는 한편 사람들의 편안한 접근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남쪽 면은 평탄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창, 문, 장식은 정교하게 설계하여, 전체적으로 동일한 건축 어휘를 따르면서도 전혀 다른 이미지를 풍기도록 했다. 하지만 내부공간과의 연계성을 살펴보면 공간보다 형태를 우선한 느낌이다. 외벽에 다양한 건축 어휘들을 구사하기 위해 기둥이 벽 뒤쪽으로 물러남으로써 표피적인 형태에 머물게 되었다.
건물 전면의 거대한 경사로 역시 공간적인 의도보다 강렬한 조형성이 먼저 다가오지만 도로에서 접근하면 마치 길의 연장처럼 느껴진다. 경사로의 주목적은 공간의 연결에 있지만 경사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사실 김중업 건축가는 옥상을 주민들을 위한 정원으로 계획했다. 그는 쓸모없는 공간이 되기 쉬운 옥상을 정원으로 설계하고 경사로를 사용하여 도시 환경과 긴밀하게 연결하려 했다. 옥상에는 정원뿐 아니라 각종 놀이시설과 휴게시설을 설치해 주민들에게 자연스러운 만남의 공간을 제공하려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관리 소홀 등의 이유로 옥상정원을 사용하지 못해 아쉽다. 지금은 3층의 예식장 때문에 결혼식이 있는 날이면 경사로에서 대화의 장이 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면에는 경사로 외에도 원형창, 반원창, 버섯 모양의 기둥이 표현되어 있으며, 후면은 주로 곡면의 벽으로 되어 있다. 여전히 썬프라자는 도시 가로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여 길을 걷는 사람들이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다.
현재는 이 지역 역시 변화를 겪고 있다. 공장이 이전하고 아파트, 주상복합, 업무시설 등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썬프라자가 급변하는 주변 환경 속에서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해진다.
경사로는 도시 가로의 연장이며 버섯 모양의 기둥이 조형성을 강조한다. 남쪽 면은 창, 문, 장식 등이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
글·사진 이훈길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천산건축 대표. 건축사이자 도시공학박사이다. 건축뿐 아니라 건축 사진, 일러스트, 칼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도시를 걷다>와 <건축 사진·스케치 기초부터 따라하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