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디자이너 김충재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제품 디자이너 김충재라는 이름이 요즘 방송가와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의 후배로 출연한 이후, 개그우먼 박나래도 반한 ‘미대 오빠’로 화제를 모으며 대중의 관심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그를 그저 잘생긴 디자이너로만 생각한다면 상당히 섭섭한 일이다. 신당창작아케이드 8기 입주작가인 그는 금속과 도자, 세라믹 등 다양한 소재를 오가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조금씩 천천히 확장하고 있다.
신당창작아케이드에는 언제, 어떻게 입주했나?
지난 4월 1일 입주했다. 마침 나만의 작업공간이 필요했던 터라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 그전까지는 주로 학교에서 작업을 해 작업실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8월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어 나만의 작업공간을 마련해야 할 시기였다. 신당은 집, 그리고 학교와도 가깝고 재료를 구입하는 청계천이나 을지로와도 인접해 있어 내게는 최적의 위치였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입주기간이 12월까지인데, 연말에도 다시 지원해 이곳에서 계속 작업하고 싶다.
신당창작아케이드라는 작업공간만의 특별한 점이 있나?
나만의 작업실뿐만 아니라 공동 작업장이 있어 만족스럽다. 용접을 하거나 도자를 굽는 등의 작업은 모두 그곳에서 해결한다. 다른 입주 작가들과의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한 편이다. 가구 제작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그런 부분은 서로 품앗이하듯 도움을 주고받기도 한다. 일반인들도 찾아올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긴 하지만 밤에는 상대적으로 조용해 집중해서 작업할 수 있다.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갑작스러운 인기와 관심이 작업에 방해되지는 않나?
작업실로 찾아오는 분들도 간혹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불편하거나 힘든 점은 크게 못 느낀다. 그냥 인사하고 사진 찍어주는 정도니까.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엄청난 유명인이 된 것도 아니다. 그저 방송 출연으로 좋은 기회가 많이 생겨 감사할 따름이다. 나에 대한 관심만큼 내 작품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고, 방송 출연으로 인해 긍정적인 변화가 많이 생겼다.
최근에 찍은 스포츠 의류 브랜드 화보도 화제가 됐다.
워낙 운동을 좋아한다. 뛰는 걸 좋아하고, 축구도 보는 것과 하는 것 모두 즐긴다. 남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하는 일과 스포츠 의류는 거리가 있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화보의 콘셉트가 러닝이라고 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스튜디오에서의 카메라 촬영이 어색하긴 했다. 인터뷰할 때 작업실에서 촬영하는 건 내 공간이니 괜찮은데, 스튜디오는 다른 문제였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가이드라인을 받아 촬영했다. 처음 해본 일이라 쉽진 않았지만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
서양화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제품 디자인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에서 디자인으로 넘어가게 된 계기가 있었나?
대학 졸업 후 처음 일한 곳이 디자인 회사였다. 공간 디자인을 하고, 기획도 하고, 프로젝트 매니징도 해야 했다. 사회 초년생의 일치고는 광범위한 업무였는데 2년 가까이 하다 보니 실제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데 관심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내 작업이 하고 싶어졌다. 내 걸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할 듯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전공인 순수미술이 디자인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나?
나는 디자인을 순수미술과 나누어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사이의 교집합에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아트워크를 거치며 쌓아온 경험들이 지금의 내 작업 스타일을 완성했고 순수미술과 디자인을 넘나드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남들과 차별화되는, 본인 작업만의 특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디자인을 하고, 제작도 직접 한다는 것? 제작 과정에서 전통적인 크래프트맨십을 강조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효율을 찾아 작업하는 편이다. 제품 디자인을 공부하며 배운 캐드 등의 컴퓨터 프로그램과 CNC(컴퓨터 수치 제어) 기계 등으로 작업을 많이 한다. 내 작업실은 아틀리에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작은 공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가지 장르에 국한되기보다 다양한 시도를 하며 그 속에서 재미를 찾고 자유롭게 작업하고 싶다.
1 '지그재그 오마주'. 2 '큐브: 엄브렐러 행어'. |
새로운 소재로 옮겨가며 작업을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인가?
그렇다. 지난해에는 금속을 주로 다뤘고, 올해에는 도자와 세라믹 작업을 하고 있다. 금속이라는 소재는 마감이나 용접 등에 있어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데 반해 세라믹은 그런 면에서 좀 자유로운 편이다. 현재는 세라믹으로 만든 컵, 그릇 등의 생활용품 디자인에 집중하고 있다. 제품군을 다양하게 만들어 하나의 컬렉션으로 꾸리는 게 목표다.
가구, 우산꽂이, 컵 등 생활용품을 주로 디자인하지만 작품의 스타일은 조형성을 강조하는 느낌이다.
기능성을 강조하면 양산화는 쉽겠지만 그러다 보면 디자인에 제약이 온다. 형태와 기능의 밸런스를 추구하기보다는 그 밸런스에 의구심을 가지고 상상력을 더해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녹여내려고 한다. 가구를 디자인할 때 흑백의 금속 소재를 사용하고, 선과 형태가 명료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일상적인 생활용품에서 예술적인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작품의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
예전에는 회화에서 많이 얻는 편이었지만 요즘에는 조각, 조형 작품으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건축에도 관심이 많다. 최근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작가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다. 자신의 콘셉트를 구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려운 소재에도 끊임없이 도전하며 첨단의 방법론을 좇아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일관되게 드러내는 걸 보면서 나도 저런 확고한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프랭크 게리뿐만 아니라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도 좋아하는데, 내가 반더스를 좋아한다고 하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작품 스타일과 너무 다르다는 거다. 하지만 상반된 스타일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만을 따르기보다 다양한 인풋을 소화하려 노력한다면 아웃풋을 낼 때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지난 4월에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도 참여했다. 국제적인 전시에 참가한 소감이 어땠나?
대학원에 이탈리아 출신의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에게서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대한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었다. 꼭 한 번 참가해보고 싶던 차에 운이 좋게도 신진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섹션에 의자 시리즈를 전시할 수 있었다. 첫 해외 전시이다 보니 작품 운송과 디스플레이 등에 있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지만 돌아오기 싫을 정도로 밀라노의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인기 있는 전시는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입장할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고, 내 부스에 찾아온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에도 깊이가 있었다. 디자인을 하나의 문화로 바라본다고 할까. 디자인으로 도시 전체가 들썩이는 분위기는 생소하면서도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최근에 집중하고 있는 작업은 무엇인가?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김치앤칩스’와도 작업했다고 들었는데.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설치된 김치앤칩스의 <헤일로>라는 작품에서 디자인과 설계 파트를 도왔다. 내 이름을 건 개인 작업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협업도 즐기는 편이다. 지금은 세라믹을 소재로 한 컵, 그릇, 작은 오브제 등의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12월에 열리는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지금 작업하고 있는 세라믹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디자이너로서 최종 꿈은 무엇인가?
꿈이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거창한 듯하다. 디자이너로서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작은 그림에 집중하고, 거기에서 이루어낸 소소한 성취들을 즐기는 편이다. 그럴싸하고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지금 눈앞에 닥친 작은 일들을 잘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모습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12월의 전시를 잘 준비해야 할 거고, 또 연말에 신당에도 재입주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웃음) 이곳에 벌려놓은 일이 많으니까.
대중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제의도 들어올 것 같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일단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품들을 최대한 높은 퀄리티로 제작하고 싶다. 또 가능하다면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 예정이다. 완성된 작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들을 보여주고 싶은 바람이 있다. SNS나 유튜브가 좋은 수단이 될 것 같다. 방송도 그렇고.
제품 디자인 이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방송에 출연하고 대중에게 노출되면서 조금 유연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이너 김충재라는 이름과 내 작업을 알릴 수 있고, 또 디자인을 대중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제품 디자인이라는 내 영역에 맞추어서 조금씩 시작해볼 생각이다.
글 윤현영
사진 최성열
사진 제공 김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