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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한구가 기록한 청계천

나도 청계천의 잡다한 구성물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이한구 사진작가에게 청계천은 삶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각별한 공간이다. 청계천을 처음으로 사진에 담은 것은 대학 신입생 시절이지만 그는 훨씬 오래전 풍경과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곳에 흐르는 묘한 활기와 삶의 의지는 언제나 그대로다. 이 풍경이 익숙하고 감동적인 것은 그 역시 숨길 수 없는 ‘청계천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진작가 이한구가 기록한 청계천

사진기를 들고 청계천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것은 1988년이었다. 의욕 넘치던 스무 살 사진학과 학생의 소재주의적 선택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청계천 동묘 옆 초등학교를 다녔고 신설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유년시절의 에스프리가 나를 끌어당겼을 것이다.

 

어린 눈에 매일 오가며 보는 장터는 흥미롭고 신비로웠다. 친구들은 목재소집 아들이거나 철공소집 아들, 식당집 딸이었다. 포목상집 남매는 한때 청계천의 상징이던 삼일아파트에 살았다. 코흘리개들과 청계천을 누비며 놀았다. 성장한 이후로 다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몇몇은 다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왔다. 인쇄소에서 일하거나 선반공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나는 비록 대학생이었지만, 사진가가 되어 돌아왔다. 사진기를 손의 일부처럼 지니고 다녔으니, 사진 찍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내 사진기 안에, 유년의 추억을 품은 서울 청계천변 삶의 풍경이 하나둘씩 담기기 시작했다.

사진작가 이한구가 기록한 청계천

마음이 먼저 찍어야, 손이 찍는다

이후 유년과 얽힌 유정함 대신 피사체로서 청계천변 삶의 풍경이 새롭게 보였다. 섬유, 전자, 전기, 의료, 기계 등 제각기 물성과 형태가 다른 것들의 밀집이 조형적으로 흥미로웠다. 화려한 대도시의 중심부에 자리해 있으면서도 누추하고, 이상하게 당당하고, 활기차면서도 어딘지 쓸쓸한 대립각의 정서도 좋았다. 더구나 그 안에 몸으로 생애를 밀고 나아가는 사람들, 헤아릴 수 없는 삶들이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지방에서 도시로 찾아든 이주민들이 도심 한가운데 거대한 난장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각양각색 공구 사이에서 책을 읽던 노점 공구상 주인, 찌그러진 양은 세숫대야에 검댕 묻은 얼굴을 씻던 철공소 청년, 짐을 나르는 노동자의 숨소리…. 그 청계천의 ‘동력’들을 보면서, 조선 시대로부터 이어진 청계천의 역사적 내력을 살피면서 몇 되지 않은 근대의 사진들과 구와바라 시세이의 1960년대 청계천 사진들을 보면서, 내 가까이, 나와 잇대어져 있는, 내가 살아가는 당대의 청계천과 그 속의 삶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에 의미를 느꼈다. 사진가로 언제 어느 곳을 떠돌더라도 다시 돌아와 청계천을 찍는 일을 일생 동안 멈추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가 1992년이다.

사진작가 이한구가 기록한 청계천

그리고 2015년. 살다보니 횟수가 드문 해도 있으나, 어느 한 해 빠짐없이 카메라를 메고 청계천을 들고난 세월이 20여 년이다. 비 오면 비가 와서 나가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나가고, 기분이 좋으면 좋아서, 흐리면 흐려서 청계천에 나간다. 여전히 걸어서도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사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그 걸음의 결과물인 필름 속에는, 재개발로 허물어진 옛 집터를 다시 찾아와 어슬렁거리는 소년들, 야간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볼이 미어지도록 이른 저녁을 먹는 노점 상인, 일터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어린 아들을 껴안고 오열하던 러닝셔츠 차림의 젊은 가장, 물줄기보다 더 빠르게 흐르는 구경꾼들. 곧 헐릴 남루한 집들 위로 마구 그어진 무정형의 전선들, 그 너머로 신기루처럼 직선으로 솟은 빌딩들이 담겨 있다. 복원공사가 시작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가, 오래 정주했던 터를 잊지 못해 되돌아온 낯익은 얼굴들도 있다. 세숫대야 앞에서 얼굴의 검댕을 씻던 20대 철공소 청년은, 같은 골목 작은 철공소의 사장이 되어 사진을 찍던 20대의 나를 기억한다. 찍을 당시엔 의식하지 못했던 시대적 요소들이 버내큘러(vernacular)로 드러나보인다.

사진작가 이한구가 기록한 청계천

20여 년 청계천 풍경에서 변하지 않은 하나, 사람

엊그제도 청계천에 나갔다. 이제는 그 옛날 삼일고가가 허공에 그렸던 선을 산책로와 물줄기가 지상보다 낮은 지표면에 매끈하게 그리고 있다. 그 매끈한 선 뒤안에, 이제는 불안한 청계천이 남아 있다. 평생 그곳이 일터요 삶터인 줄 알았던 이들이 정주처를 떠났고, 낡은 골목과 건물들은 개발의 구호 앞에 쓸쓸하고 초라하다. 이렇게 청계천은 변했지만, 전혀 변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철공 부품들이 휴대폰으로, 비디오테이프가 DVD로, 그 공간의 구성품들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청계천을 살아 꿈틀대게 하는 동력은 사람이고, 생에 대한 여전한 의지와 운동성은 이제나 저제나 변함없다. 그것이 내가 찍은 2013년의 청계천 사진을 1992년의 사진 사이에 슬며시 끼워 넣어도, 시간성을 알 수 없이 일관되게 보이는 ‘무엇’일 것이다.

 

긴 세월을 청계천과 잇대어진 채 살다보니, 어쩌면 나라는 한 사진가도 여러 잡다한 청계천의 구성물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 다른 사진가가 사진기를 들고 청계천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내 모습을 찍었다면, 내 사진 속의, 눈발 속에 밥상을 이고 배달 가는 식당 아주머니나 부품을 들고 선 철공소 청년처럼 그 공간 안에서 썩 자연스러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니, 청계천은 곧 나의 삶이기도 하다.

 

글. 사진 이한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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