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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먹고사니즘은 안녕하신가요

젊은 예술가들의 질문이 모이는 프로젝트 공간 ‘구탁소’

‘뭐 먹고 살지?’ 오래된 불황과 저성장 속에 많은 이들이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일 것이다. 예술가들에게 이는 더욱 절실한 물음이기도 하다. 작업실 한 켠에 커뮤니티 공간을 꾸린 ‘구탁소’의 세 동갑내기 작가들은 그 질문을 프로젝트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던지고 있다. 예술가라는 직업이란, 그리고 직업의 예술적 가치란 무엇일까, 라고.

 

동갑내기 세 작가가 모였다. 2014년 5월이었다. 작업실을 찾던 이들에게 이슬람사원 근처 한남동은 임차료가 저렴하면서도 세 사람 모두에게 접근성이 좋은 동네였다. 몇 년 새 유동인구가 크게 늘어난 우사단길은 수년 전까지 회화 작가들이 작업실을 찾아 모여들었던 곳인데, 임차료가 오르자 작가들은 근처 골목 안쪽이나 도깨비시장 쪽으로 더 내려가 자리를 잡고, 공방 등 판매를 겸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이들이 새로 들어와 지금의 우사단길을 형성했다고 한다. 설치미술(김민경, 송민정)과 영상작업(김민경), 장난감 제작(김현주)을 하는 세 작가의 자리는 시장 쪽이었다. 10년 가까이 비어 있던 낡은 공간을 그들은 품을 들여 살뜰히 손봤다. 10년 만에 세입자를 찾은 주인아주머니는 지하 공간도 쓰지 않겠냐고 권하셨다. 공간이 넓어졌다.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어졌다. 전에 이곳에 세탁소가 있었다기에 공간 이름을 ‘구탁소’로 지었다. 작가들의 작업실이자 프로젝트·전시 공간인 구탁소는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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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터인 작가(김수연)와 식물 연구원(한지수)이 함께한 ‘3월의 직업예술’ 전시 장면. / 구탁소의 전시공간은 구조가 독특하고 곳곳에 자투리 공간이 숨어 있어 전시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을 활용하곤 한다.

예술가의 직업에 대한 고민이 응축된 ‘직업예술 프로젝트’

“매달 아티스트 한 명의 전시를 하자.” 작가들은 약속했다. 쉽게 하면 안 될 약속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그러나 젊은 작가들에게는 꺼내고 싶은 이야기가, 구탁소 지하에는 매력적인 구조의 공간이 있었다. 작년 가을, 그들은 가장 현실적이면서 묵직한 질문을 프로젝트를 통해 던져보기로 했다. 친구들과 모여 어떤 대화를 나누다가도 ‘기-승-전-뭐 먹고 살지’로 수렴되던 때였다. 예술가도 직업이라 할 수 있을까,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그들의 일에 얼마나 만족하고 예술에 대해 얼마나 이해할까, 직업도 예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등. 작가들은 ‘직업’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직업예술 프로젝트’를 구체화했다. 그 결과 한 달에 작가 한 사람과 다른 직업 종사자 한 사람이 만나 서로 예술과 직업의 관계에 대해 소통했고, 그 결과를 매월 마지막 주 구탁소에서 전시를 통해 공유하기로 했다. 그렇게 2015년 1월부터 12월까지 꽉 채워 기획한 예술가-직업인 라인업은 지난 1월부터 차근차근 활동을 진행했고, 이 ‘빡센’ 프로젝트는 현재 중반을 막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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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가(김웅현)와 디자이너(권소연)가 함께한 ‘4월의 직업예술’ 전시물.

지금까지 설치미술가와 아르바이트생(2월), 페인터와 식물연구원(3월), 일본화 화가와 서예가 겸 대학박물관 계약직원(5월) 등 흥미로운 예술가-직업인의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구탁소의 세 작가는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필요할 때 개입하고 커뮤니케이션을 도우며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한다. 5월에 진행한 일본화 화가(아다치 쇼헤이)와 대학박물관 계약직원(이종은)의 프로젝트 전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회사>에서는 관객이 가상의 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체결하는 체험을 마련했다. 관객은 ‘신선하다’ 했지만 근로환경, 계약조건 등이 명시된 현실의 계약서를 보며 작가들은 생각이 많아졌다.

“한 번쯤은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작가에겐 근로환경이나 정해진 급여라는 게 없잖아요. 그런데 그런 부분은 고민하지 않는 게 예술가들에겐 오히려 당연시되는 것 같아요.”(김민경)

젊은 작가의 고민이 읽힌다. 거의 모든 것이 금전적인 가치로 환산돼 ‘돈이 없으면 꿈꾸기도 어려운’ 시대에 유독 예술 활동에는 합당한 가치를 지불하지 않는, 사회의 이중적인 면모에 대한 고민이다.

“전시가 진행되면 큐레이터, 디렉터, 설치를 도와주는 사람 등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임금을 받는데, 정작 전시의 주체인 작가만이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해요. 그게 당연시되고 있고요.”(송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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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직업예술’ 전시에서는 관객으로 하여금 가상의 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체험을 제공했다.

‘기-승-전-먹고사니즘’의 작은 돌파구

구탁소는 사실 최근 미술계의 경향을 다루는 글에서 적지 않게 언급되는 곳이다. 그 경향이란 젊은 작가들이 직접 공간을 마련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교류의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반지하, 교역소, 800/40, 300/20 등이 구탁소와 함께 언급되곤 한다. 이런 흐름도 젊은 작가들의 고민에서 나온 일종의 자구책으로 볼 수 있다. 이미 형성된 판에 편입되기보다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작품을 직접 관객에게 꺼내 보이기 위해 이들은 공간을 마련한다. 물론 공간을 운영해서 수익을 기대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기금에도 지원해봤지만 차라리 운영비를 최소화해서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상태로 가야 원하는 방식의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초기에 하고 싶었던 방식과는 거리가 멀어질 거예요. 일부 ‘대안공간’들이 그랬던 것처럼요.”(송민정)

여기에는 아이러니도 있다. 정작 그 공간에서 전시를 여는 창작자에게 ‘작가비’를 지급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구탁소의 세 작가는 그 미안함을 전시 오프닝 때 음식을 준비해 나누는 것으로나마 채우려한다. 점점 모든 게 자본 중심으로 재편되는 시대에 젊은 작가들은 그들만의 힘과 생각으로 예술을 하고, 말한다. 역시 ‘기-승-전-먹고사니즘’의 대화를 나누면서.

 

직업예술 프로젝트의 하반기에는 안무가와 플로리스트(7월), 일러스트레이터와 도예가(9월), 설치미술가와 문학비평가(11월) 등의 프로젝트가 남아 있다. 프로젝트는 하면 할수록 더욱 예측할 수 없기에 더 기대하는 즐거움이 있다고 세 작가는 입 모아 말한다. 구탁소의 전시 공간은 1층 작업실에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나온다. 가파른 이 동네 지형의 특색 덕에, 지하 전시 공간은 또 다른 지상을 마주하고 있다. 생각지 않은 공간이 위아래에서 유기적으로 숨 쉰다. 오래된 건물이기에 손이 많이 갔지만 예상치 못한 공간은 손본 이들에게 예술에 대해 새롭게 고민할 기회를 주었다. 그 기회는 이 공간을 찾는 다른 작가와 관객의 몫이기도 하다. 이들의 남은 직업예술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길 권한다. 내 일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 질문하는 이들에게, 예술가의 직업적 가치에 의구심을 품은 이들에게, 혹은 그저 도깨비시장 길에 있는 공간이 궁금한 이들에게, 구탁소는 어지간하면 열려있다.

 

글 이아림 | 사진 제공 구탁소(Gutakso, www.facebook.com/Gutak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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