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의 '새로운 시도'는 계속된다
강운구 작가는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에서 지난 30여 년간 우뚝한 보루 구실을 해온 노장이다. 1962년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 이래 사진기자와 출판사진가 등으로 활동하며 1970~90년대 신라의 불국토 경주 남산과 산업화 시대 사라져간 나라 안 곳곳의 농촌, 산촌 풍광과 서민들의 삶을 앵글에 다져 넣었던 그는 시대와 현실의 냉정한 기록자로서 성가를 쌓았다. 연출하지 않고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스트레이트 사진의 본령을 지키며 지금껏 수도승처럼 현장을 천착해온 작가의 작업들은 후배 사진가들에게 범접하기 어려운 전범이기도 했다. 찍는 것을 적는 것으로 보고 기록자의 원칙을 강조하는 그의 사진 세계에는 세간의 예술가들이 내뱉는 전위와 파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평소 말하듯 ‘새로운 시도’가 있을 따름이다.
휴대폰 카메라로 ‘주워 담은’ 신작들
11월 25일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렸던 그의 7번째 개인전 <네모 그림자>는 강운구 사진의 ‘새로운 시도’가 어떤 의미와 성격을 지녔는지를 되새김질하게 된다. 2008년 같은 곳에서 열린 개인전 <저녁에> 이후 9년 만의 신작전이었다. 그는 지난 10년간 돌아다닌 세상 곳곳의 풍경 속에 깃든 다기한 네모꼴과 그의 그림자, 발을 비롯한 그의 몸을 “주워 담았다”고 말한 신작들 속에서 풀어냈다. 특유의 집요한 관찰과 엄격하고 치밀한 구성의 미학이 소재와 촬영 방식의 변화 속에서도 어떻게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경지로 관철되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땅의 시간, 디지털 경배, 고 디지털, 방황일기, 여러 네모, 네모 그림자의 6개 섹션으로 나뉘어 내걸린 출품작은 120점에 달한다. 네모꼴의 프레임이 유난히 도드라지는 세계 각지의 자연, 문명의 풍광을 배경으로 그의 그림자와 발끝이 도처에서 어슬렁거리거나 삐어져 나오는 작품들이다. 서울의 보리밭과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의 포스터 붙은 거리에서, 유럽의 미술관 외벽과 터키 아나톨리아 언덕에서, 러시아 흑토의 풀밭 위에서, 절친했던 지인 한창기의 전남 보성 무덤가 뒤편에서 그의 그림자는 출몰한다. 이렇게 찍은 작업들의 80%가 이른바 ‘폰카’로 불리는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결과물들이다. 필름 촬영, 막장 같은 현상실 작업을 고집해온 왕년의 강운구를 떠올리는 이들에겐 이런 신작들이 파격으로 비칠 만하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기존 작업들을 통해서 확고한 개성으로 각인됐던 몇 가지 작업 스타일에서 벗어났다. 일부 필름 작업들이 있고, 표면적으로도 아날로그 필름 작업과 거의 구분되지 않지만, 출품작의 대부분은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뿐만 아니라 1987년 출간된 그의 명작 중 하나인 <경주 남산> 외에는 거의 작업하지 않았던 컬러 사진들을 다수 내놓았다. 작품의 배경에도 그간 선보여온 국내의 산하와 문화유산, 사람들의 풍정을 넘어 세계 곳곳의 다채로운 자연과 인간, 문명의 자취들을 끌어들였다. 그러니까 온 세상의 네모와 그림자를 흑백, 컬러, 아날로그, 디지털 사진들로 보여주려 한 노년의 변화한 시각적 욕망을 담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전시장 첫 방 들머리부터 그의 작품은 ‘새로운 시도’들의 일면을 드러냈다. 첫 작품인 2017년 서울 연작은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면서 보리가 패어 여물기까지의 모습과 이를 지켜보는 작가의 길쭉한 그림자를 컬러로 담아냈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포스터 앞을 지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속 장면으로 촬영한 폰카 작업들, 국내 각지의 산야와 집들의 네모진 공간 탐색 작업들이 뒤를 잇는다. 더 안쪽의 여러 방들에는 유럽과 이란, 터키, 그루지아 등의 문화유산과 자연을 기행한 작품들이 들어서 있다. 과거 국내로 공간을 한정하고 엄정한 필름 촬영으로 일관했던 그의 작업과는 결이나 소재 등에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다큐 사진에서의 엄정한 작가주의를 강조했던 과거 지론에 갇힌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영혼으로 세계 곳곳의 풍경을 관조한 작업들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다양하게 다른 주제로, 편하게 나아가고 싶었어요. 폰카가 주는 굉장한 자유로움이 있어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년 전부터 폰카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믿고 쓰기 시작했지요. 거리를 맞추고 조리개를 조절하고 셔터 스피드를 바꾸는 것조차 조작으로 느껴질 정도로 간편했어요. 누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폰카를 실험하면서 느낀 건 너무나 간편하고 자유롭기 때문에 함몰되면 아무런 작품이 안 되겠다는 것인데, 그래서 어떤 제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떤 콘셉트가 있어야 한다, 그 콘셉트에 맞는 것을 제안해 찍어야겠다는 거였지요.
1970년대 이래 수십여 차례의 전시를 치렀고, 10여 권의 사진집, 산문집을 펴낸 작가는 몇 해 전부터 사진가로서의 의무 복무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국내와 세계 곳곳을 마음 편하게 유랑하면서 폰카로 찍어보니 사진이 더 흥미롭게 다가오더라고 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진을 구분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다만 ‘무엇을 주워 담느냐’가 중요해졌다”는 게 그의 말이다.
폰카 작업은 강운구 작가가 진작부터 해온 작업이다. 전시도록 사진집 서문에 직접 쓴 글을 보면, 2013년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렸던 제리 율스만과 매기 테일러, 주명덕 작가와의 4인전 <넷이서 하나>가 계기가 됐다. 디지털의 가능성을 유심히 관찰해왔던 그는 당시 전시에서 폰카로 작업을 해 출품하곤 그 매력에 빠지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때 그는 “큰일 났다. 폰카에 빠졌다”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통찰했다.
이젠 나와 대상 사이에는 기계도 기술도,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주워 담아야만 할 어떤 이삭과 조우했을 때, 그냥 그것에 맡기면 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경배할 때 맨손을 모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는 두 손 사이에 디지털이 있다. 이제야 깨달았다. 모든 사진은 오마주이며 경배이다. (<넷이서 하나> 전시도록 중)
1. 달성, 대구, 2012 ⓒ강운구. 2. 포르부, 스페인, 2013 ⓒ강운구. 3. 서울, 2012 ⓒ강운구. |
네모와 그림자에 주목하다
작가는 그 전시 뒤로 지금까지 본인 사진의 6~7할은 폰카로 이 세상에 경배한 것이었다고 했다. 전시에서는 그 폰카의 작업을 더욱 확장해 국내의 풍경과 풍속은 물론 세계 곳곳의 사람 사는 모습과 도시, 촌락의 시설물, 땅바닥까지 두루 포착한 작업들을 선보였다.
그렇게 촬영한 출품작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 네모와 그림자다. 세상에서 가장 지배적인 형태인 네모꼴의 윤곽에 주목하며 그 윤곽에 들어선 작가 자신의 그림자를 담은 작업들이 수두룩하다. 작가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곳곳의 산야와 농촌의 집, 이란과 터키, 에티오피아의 랄리벨라 암굴성당, 서울과 벨기에, 러시아의 땅바닥, 풀밭, 도로의 진행로 표지 등에서 눈에 불을 켜고 네모진 이미지들만을 찾았고, 이를 방랑자의 발길 앞에 부각시켰다. 심지어 사랑하고 아꼈던 후배 사진가 고(故) 권태균의 49재 마지막 기일에 홀연히 연기 속에 태워진 영정사진을 보곤 진짜 중의 진짜 프레임을 찾았다며 연신 셔터를 눌렀던 결과물도 다른 풍경사진과 함께 나와 있다. 네모는 뷰파인더에서 피사체를 포착할 때 가장 기본적인 틀이다(사진기 자체도 네모진 기계가 아닌가.). 그림자는 카메라를 이용해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 된다. 그런데 왜 새삼 네모와 그림자에 주목하게 되었을까.
네모는 우리말로는 틀이고 영어로 하면 프레임이지요. 모두 사진하고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 자체가 카메라의 프레임이고, 어떤 카메라도 삼각형이나 원형 프레임은 없어요. 전부 네모 틀로 세상을 포착합니다. 이 세상은 전부 네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네모 아닌 것들은 아주 특별한 것들이고 정상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에요. 그 안에 있는 틀을 한 번 포착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자동 발생적으로 세상에 흩어진 프레임들을 내 프레임 안에 잡아넣자, 이게 가장 큰 콘셉트였지요.
그렇다고 너무나 빤한 네모를 잡으면 작품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인가 재미있는 요소를 넣어야 하고 생각과 경험을 녹여서 이야기와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 작가는 세상을 규정하기 전에 이미 세상 자체는 사각의 틀 안에 있는 운명임을 직시한다. 그래서 그는 신작들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세상의 굉장히 많은 틀 가운데서 내 사진 틀의 프레임에 알맞게 주워 담은 것들”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흐름에서 네모와 그림자라는 형식에 이어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바로 디지털 경배라는 내용상의 화두다. 전시의 두 번째 장 자체는 첨단 디지털 기술로 자연과 예술을 숭배하고 이미지를 전유하는 디지털 경배의 양상들을 부각시킨 내용들로 이어져 있었다. 네팔 포카라에서 히말라야 산록의 푸른 아침 하늘을 보며 손을 들어 경배하듯 찍는 사람들의 손과 거기에 들려진 폰카들, 암스테르담 릭스 뮤지엄에서 렘브란트의 대작 <야경꾼>을 폰카로 찍는 관객들의 손들, 르네 마그리트의 유명한 중절모 쓴 남자의 그림을 윤곽채로 본뜬 벨기에 브뤼셀 마그리트 뮤지엄 숍 거울 앞에서 디지털을 숭배하는 자신의 손과 몸을 내비친 작가의 모습 등이 보였다. 모두 폰카 특유의 정교한 화질과 해상도가 돋보이는 작품들인데, 작가나 미술관 쪽의 설명이 없다면 그냥 아날로그 사진이나 디지털 카메라의 결과물로 봐도 진배없을 정도다.
이 연속되는 경배 사진들의 세부를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된다. 그는 2011년 레이너 소피아 미술관의 피카소 대작 <게르니카> 앞에서 폰카 촬영에 열을 올리는 관객들을 라이카의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다. 그런데 작품의 세부를 보면, <게르니카>에만 초점을 맞춰 디지털 경배를 하는 관객들의 뒷모습은 흐릿하고 손의 윤곽만 비교적 또렷해 보일 뿐이다. 반면 그로부터 2년 뒤 폰카로 찍은 암스테르담 릭스 뮤지엄의 렘브란트 대작 <야경꾼> 앞에서 폰카를 들이미는 이들의 모습은 그림과 함께 모두 해상도가 생생하다. 작가는 이런 일련의 연작들을 통해 폰카가 지닌 생동감과 이미지적 장점들을 교묘한 편집으로 드러내 보여주려 했다.
전시 후반부 4~6장은 찍힌 배경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이 나치의 마수를 피해 도망쳤다가 입국이 좌절되자 자살한 비운의 장소인 프랑스 접경의 스페인 마을 포르부에서 작가는 2013년 사진을 찍었다. 그곳에 자리한 대니 카라반의 <파사주>란 설치 작품에서 작가가 그림자를 남기며 찍은 <포르부, 스페인, 2013>은 매우 인상적이다. 급경사 절벽에 설치된 위태로운 계단 설치 작품의 입구에 선 작가의 그림자는 죽음의 공포에 절망했던 벤야민과 정서적으로 하나가 되고 싶은 심정을 드러냈다.
물러남의 완곡한 암시
여러모로 서사와 서정, 산문과 운문,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를 오가며 재미있는 사진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작가의 사진에 불러일으키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시는 그가 견결하게 지켰던 스트레이트 사진의 원칙을 고수한다. 새롭게 변모하되 자신이 고수해온 금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어쩌면 신작들의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전혀 가공하지 않는다. 아날로그 사진을 찍고 현상할 때의 눈썰미와 작업의 긴장감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폰카와 디카를 작동시키며 의도적으로 찍을 거리를 만들지 않고 기다리는 자세를 지킨다. 이를 두고, 작가는 전시도록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디지털 사진이 경박해 보인 것은 사람들이(작가들이) 경박하게 해서 그런 거였고 알맞게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막장’에서 몇 십 년 동안 단련된 눈으로 디지털 기술을 통제하고 조절해서 마침내 내 눈에 맞는 톤의 사진이 나오게 할 수 있었다.”
자세히 보면 전시에 나온 사진의 규격은 세 가지로 정해져 있다. 8×10, 11×14, 20×24in가 그것이다. 카메라도 35mm 필름 카메라와 6×7판 필름 카메라 그리고 35mm 디지털 카메라와 폰카로 종류를 정하고선 여기저기 많이 널린 묘한 네모 틀을 주워 담았다고 한다. 폰카, 디카로 찍은 것은 후배와 함께 작업하되 후보정 작업을 전혀 하지 않고 크기만 조정했다. 디지털 시대라고 사진 크기를 휑하니 키우고(작가는 ‘디지털 뻥튀기’라고 부른다.) 가볍고 경박한 이미지를 담아내는 것을 싫어하기에 그럴 소지를 줄 연출을 하지 않았다. 원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심지어는 3~4년을 기다려 같은 장소에 가서 찍고 또 찍었다. 아날로그의 마인드로 디지털을 재생해낸 것이다. 그는 “한 작가가 과거 스타일과 결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작들을 내놓았지만, 과거와 결별하지 못해 미적미적하는 저의 태도도 보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폰카와 디지털, 네모와 그림자, 컬러 등의 형식적 틀이 전시의 특성을 표출하는 전부는 아니다. 전시의 여러 의미망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다. 사진은 과거의 시간을 고정해주는 매체이기에 언제나 죽음과 사라짐의 잔상을 간직한다. 그러나 강운구 작가는 전시에서 이 시간성을 강조된 네모꼴 공간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의 차원으로 부각시켰다. 어느덧 노령에 접어든 자기 자신의 물러남에 관한 정직한 고백을 털어놓는 것이다. 이를 짐작하게 하는 사례가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12컷 연작 <2015-2016년 서울>이다. 서울의 어느 숲에 있는 컨테이너판 같은 금속판 위에 계절의 변화와 함께 나무숲의 그림자가 스쳐간다. 그것이 컷 시퀀스가 되어 흘러가는데, 정작 작가의 그림자는 10번째와 11번째 사진에 나타났다가 마지막 12번째 사진에서 사라진다.
사진집 서문에 실린 글 제목이 ‘내려가면서’입니다. 완곡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퇴장하면서거든요. 마지막 12컷 사진들도 그런 의미를 담지요. 그렇게 내려가는 시점을 자기 스스로가 인식하기는 어려워요. 이번 전시에서 그 시점을 내 스스로가 인식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완곡한 암시로서 말이지요. 출품작들 풍경 곳곳에 내 그림자가 비치지요? 옛적엔 무심코 지나치고 아무런 감회가 없었는데 지금 이 나이가 되니까 ‘아 여기는 마지막이다, 내가 언제 다시 오겠느냐, 이 장면하고 영원히 하직이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내 흔적을 남기고 싶어져요. 적어도 내가 여기 왔었다는. 그게 좀 슬프지만, 나이에 따라서 묻어오는 생각이니까요. 다행히도 그걸 내가 알고, 스스로가 내려가는 것을 인식했다고 말하고 싶었죠. 사실 그걸 모르는 사람들 많아요. 심지어 자기가 노인인 줄 모르는 이들도 많고요. 하하.
나이 70을 예로부터 종심(從心)이라고 한다. 중국의 성인 공자는 <논어> ‘위정’ 편에서 자기 삶을 돌아보며 70 나이를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바를 좇더라도 결코 법도를 어기지 않았다는 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고 일컬었다. 어떠한 욕망을 부려놓아도 도덕과 법도와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자유인의 세계다. 칠순의 나이를 넘긴 이 원로작가는 이제 그 종심의 허허로운 경지 속으로 성큼 발을 내딛었다.
글 노형석 (한겨레 기자), 사진 최성열, 사진 제공 한미사진미술관